시베리아에서 온 편지/운전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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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이야기
장창수 목사

운전 자세가 그 나라 국민의 민도(民度)를 반영하며 정치 수준을 대변(代
辯)한다고 말한다. 일리 있다. 러시아인들의 운전 자세를 보면 한국의
60-70년대 버스나 택시 운전기사들이 생각난다. 예전 한국에서 대형 버스
운전자들이 대로에서 다른 버스보다 먼저 가려고 경쟁하듯 위험하게 운전
하였다. 러시아인 운전자에게도 이런 모습이 보여진다. 그리고 러시아 사람
들도 한국인 못지 않게 끼여들기를 잘 한다. 우리와의 차이는 러시아인들
이 사과할 줄 모른다는 것이다. 그들의 철면피 성향은 우리의 오리발 수준
을 넘는다. 흙탕물이 고여 있는 도로를 무작정 세게 달려 반대편에서 오는
차에 흙탕물 세례를 준다. 그러나 이들은 여유 있게 유유히 사라진다. 이런
러시아인의 운전 자세를 보면 땅의 크기에 비해 러시아인의 마음이 좁고
여유가 없다는 느낌을 받는다. 구소련 당시 러시아인들은 한국 민간 여객
기가 항로를 이탈한 것을 알면서도 두 차례나 공격해서 격추시켰다. 그 이
후 배
상이라는 단어도 언급할 수 없었던 것은 러시아인들의 이런 성향(性
向)이 그대로 노출된 것이리라.
러시아인들은 운전하면서 후퇴를 모른다. 가다가 길이 막히면 그 옆으로
길을 만들며 계속 나간다. 주말 농장에 갈 때 가끔 길이 막히는 경우를 만
난다. 그러나 반듯이 그 옆 어딘가에 다른 길이 있었다. 한국인들도 가는
길이 막히면 어떻게 해서든지 앞으로 나가려고 한다. 후퇴를 모른다는 점
에서 훌륭하다. 그러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반칙도 할 수 있다는 사고가
여기 보인다.
러시아 도로에는 중앙선이 보이지 않는다. 추운 겨울과 더운 여름 때문에
도색한 중앙선이 봄이면 이미 지워져 있다. 그리고 여름이 거의 끝나 가는
가을쯤에서야 중앙선이 다시 보이기 시작한다. 재정이 빈약해서인지 아니
면 행정력이 미약해서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이 때문에 운전자들은 거
침없이 중앙선을 너머 재빨리 앞서 갈 수 있다. 그러므로 맨 뒤차가 맨 앞
으로 달려나가 일등이 될 수 있다. 신호를 대기할 때 맨 뒤차가 중앙선을
너머 앞차의 앞에 서거나 아니면 신호가 바뀔 때쯤 중앙선을 너머 가장 먼
저 앞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교통법은 분명히 있지만 무용하다.
그렇다고 이를 무시하면 교통 순경에게 걸려 벌금을 낼 수 있다. 법이 있
지만 없기도 하고 없으면서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 러시아의 오늘날 모습
이다.
러시아도 한국과 비슷하게 운전 기술을 보고 면허증을 발급한다. 이런 이
유 때문에 러시아의 교통 사고율도 한국 못지 않게 높다고 생각된다. 거의
매일 도로에서 교통 사고 차량을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에서나 유럽
에서는 인명을 존중하는 자세가 면허증 발급 기준이다.
한국에서 교통 사고가 나면 자신의 잘못을 알면서도 먼저 큰소리쳐야 한다
고 말한다. 우리 나라 정치도 그렇다. 잘못했음에도 청문회에서 잘못을 시
인하고 사과하는 정치인이나 기업인은 하나도 없다. 소위 한국인의 오리발
이다. 그러나 러시아인에게도 오리발은 있다. 1990연초부터 러시아에는 수
많은 은행과 채권 회사들이 생겼다. 그리고 이들은 고리(高利)를 약속하며
국민들이 소유한 채권을 긁어 보았다. 개방 후 러시아 정부는 채권 형식으
로 국민들에게 정부의 재산을 분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날 은행들
은 갑자기 파산했고 사주(社主)는 예금
과 채권을 해외로 은닉시킨 뒤 도망
치곤 했다. 지금까지 어느 하나 시원스럽게 해결된 것은 없다. 어디서나 힘
없는 국민만 항상 손해보기 마련이다. 유감스럽게도 이들은 오리발도 내밀
지 않았다.
요즘 한국에서 이런 유사한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 파이낸스 회사가 높은
이자를 약속하고 예금을 유입한 후 사장이 마음대로 자금을 인출하여 사용
했다. 러시아와 한국 기업인들의 사기 수법이 너무나 비슷하다. 한국은 아
직도 이런 사기(詐欺)가 먹혀 들어가는 허름한 나라는 점에서 러시아와 비
슷하다. 일인 체제의 경영과 정치가 낳은 산물(産物)이다. 이런 체제로 한
국과 러시아가 어떻게 21세기를 대비할 수 있겠는가?
한국이나 러시아에서 왜 정치 분야가 안정적이지 못한 이유를 알 것 같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 자세는 무단정치나 독재정치로 반
영된다. 상황에 따라 자신을 위해 편리하게 운전하는 국민들 가운데 정치
지도자가 배출되기 때문이다. 민주화를 위해 투쟁했다고 주장하는 한국 정
치가들도 이런 범위를 넘지 못한다. 이 점에서 한국이나 러시아는 서로 난
형난제(難兄難弟)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