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를 어떻게 가르쳐야 잘 가르치는 것일까?
< 황희상, 안산푸른교회, 「지금 시작하는 교리교육」 저자 >
“제대로 된 교리교육만이 성도의 삶을 올바로 바꾸는 유효한 방법”
교회에서 교리를 가르쳐야 되느냐 마느냐, 이것은 그야말로 우문이다. 교회에서 가르치는 모든 것이 사실은 교리이다. 설교 안에 교리가 녹아있고, 모든 성경공부에도 이미 해석의 틀이 있다. 그것이 교리이다.
기왕 교리를 잘 가르칠 바에, 정확하고 체계적이고 전통적인 교리교육 커리큘럼을 확신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교회 교육은 기본적으로 교리 교육을 기초로 두어야 하고, 교리 교육은 기본적으로 교리문답을 커리큘럼으로 삼아야 한다.
많고 많은 프로그램 중의 하나로 교리문답을 생각해서는 큰 일이다. 왜냐하면 체계적인 교리교육으로 생긴 신앙적 지식은, 단순히 교회생활에 ‘익숙한’ 신자들의 연약함에 비할 수 없는 단단함을 주기 때문이다.
무엇을 믿는지 왜 믿는지도 모르면서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교회에 그저 앉아만 있다가는, 언젠가 큰일을 치른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때문에 아름다운 체계성으로 가득한 교리문답의 풍성함으로 교회교육 커리큘럼을 속히 재편하지 않으면, 기독교는 본질의 개념이 없이 명분으로 그치는 종교가 될 것이다.
교리를 가르치려면 성경 지식만 많이 쌓아두어서는 안 된다. 구슬을 제대로 꿰어야 한다. 우선 가르치는 자가 최소한의 ‘논리 훈련’을 해야 한다. 성도를 주체적인 신앙인으로 교육하려면, 생각하는 힘을 자꾸 길러주어야 한다. 신앙의 뼈대가 잘 세워질 수 있도록 체계적이며 논리적인 교리교육이 필요하다.
나아가 교리를 외우도록 하지 말고, ‘생각하도록’ 해주어야 한다. 학생들의 질문에 ‘대답이 되는 대답’이 필요하다. 좋은 교사는 좋은 대답을 해주는 교사인 바, ‘좋은 대답‘이란 ‘모면하려는’ 대답이 아니라 정확한 원리에 따르는 해결이 되는 대답이어야 한다.
논리와 논증으로 교육하라는 이야기는 아주 상식에 속하는 말이지만, 안타깝게도 교회 교육에서는 대단히 낯선 주장이다. 논리와 논증은 “왜 그러한가?”를 자꾸 묻는 것이다. 교리적 진술에 대해 무턱대고 그런가 보다 할 것이 아니라, 왜 그렇게 믿어야 하는지 되묻도록 해야 한다.
그동안 교회 교육은 대체로 이와 같은 방식을 취하지 않았었다. 지식을 전달하고 그것을 스펀지처럼 잘 흡수하기만을 바랬다. 또, 그래야 착한 학생이라며 좋아 했었다. 그래서 우리는 대체로 어떻게 반응했던가? 이유를 묻지 않고 그냥 “아멘!” 하지 않았던가?
그 결과 교회에서 “왜 그러한가?”를 묻는 사람이 이제는 거의 없다. 성경대로 살아야 한다고 말하면 “그렇지, 당연하지”라고 받아들인다. 그 자리에서 왜 꼭 성경대로 살아야 하느냐고 묻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그것을 묻는 것이 사실은 지극히 정상적인 사고 과정인데도, 교회에서 그런 질문을 하면 그 사람은 좀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거나, 심지어 믿음이 없는 사람으로 여기기도 한다. 바로 이런 현장에서, 교회교육이 와르르 망가져가고 있었던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물어보는 질문이다. 교회에서도 이 질문을 하도록 해야 한다. 묻고, 그 답을 찾도록 하는 것이 교육이다. 거기에 대답을 주는 것이 교회이다. 그 대답이 바로 ‘교리’이다. 의사가 병 고칠 준비를 완벽히 마치고 병원을 여는 것이 마땅하듯, 교회도 이미 대답을 가지고 있어야 마땅하다.
또한 교리는 삶으로 나타나는 고백이어야 한다. 교리교육은 단순히 지식을 가르치는 것이 결코 아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곧 ‘하나님을 사는 것’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전인격적이고 실천적인 지식이다. 이 지식은 필연적으로 삶의 개혁과 변혁을 가져온다. 신앙이 삶으로 증명되듯이, 교리가 곧 삶이라는 것을 증명해주어야 한다.
그러나 이처럼 교리가 삶이라는 이야기는 많이 하지만, 거기에도 ‘왜 그러한가’에 대한 답이 없으면 허무한 구호에 그치고 만다. 그저 근거 없이 우기는 것이 아니라, 증명이 필요하다. 증명이 없는 교육은 헛될 뿐이요, 이것 또한 허상이다.
결국 제대로 된 교리교육은 성도의 삶을 바꾼다. 그의 두 눈동자의 초점을 하나님께로 돌리게 하고, 고정시키게 하고, 감탄하게 하고, 무릎 꿇게 한다. 그것이 교리교육의 지향점이다.
그 결과 어떻게 되겠는가? 교리는 그것으로 타인을 비판하고 정죄하는 것이 아니다. 교리를 배운 맨 처음 반응은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그분의 사랑에 ‘감격’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교만함과 죄성은 쉽게 그 길로 가지 못하게 한다.
배우는 자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감사가 터져 나오는 것, 이것이 모든 교회에서 교리교육이 성공했느냐 실패했느냐를 가늠하는 지표이다. 교리교육의 궁극적인 목표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고, 하나님께만 감사드리기 위함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