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의 포교전략과 교회의 대응_이재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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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의 포교전략과 교회의 대응

 

< 이재헌 목사, 새과천교회, 총회다종교문제연구위원장 >

 

이슬람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우리 가까이 있어

 

기독교 역사 속에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이후에 로마제국에서 기독교가 공인되기 까지는 약 300년의 시간이 걸렸다대부분의 유럽이 기독교화 되는 과정은 무려 2천년 가까운 시간이 소요 되었다.

 

중동과 중앙아시아북아프리카와 소아시아의 많은 기독교 지역들이 이슬람 지역으로 되기까지는 불과 백년도 걸리지 않았다놀랍게도 유럽이 비기독교화의 과정을 겪은 시간은 40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이를 두고 유럽의 역사적 세속화(Historical secularization)라고 부른다.

 

이것은 유럽만이 아니다유럽아프리카 그리고 미주 대륙까지 거세게 불어 닥치는 비 기독교화(De-Christianization) 혹은 반 기독교화(Anti-Christianization)의 파도는 이미 파도의 수준을 넘어 쓰나미에 가깝게 무차별적으로 세계를 삼켜오고 있다.

 

여기에 우리나라도 예외가 되지는 않는다세계적으로 유래 없다고 할 만큼 빠른 속도로 정착하고 부흥한 한국교회라고 하지만 이미 이슬람의 정착과 포교의 수준은 이를 뛰어넘을 기세다.

 

1955년 전쟁 시기에 유엔군의 일원으로 첫발을 내딛은 무슬림은 조용히 잠복하는 모습으로 있다가 이제 포교 50년을 넘어서면서 서서히 그 기지개를 켜고 있다우리나라에 거주하는 무슬림의 숫자가 25만을 뛰어 넘었다는 이야기는 이미 오래 전의 이야기가 되었다.

 

OIC(Organization of the Islamic Conference, 이슬람 회의기구)에 속한 57개국 출신 외국인의 수는 10만 명을 뛰어 넘었다이들 대부분이 무슬림이라는 것을 초정해 보면 우리나라에 체류 중인 무슬림의 수효는 훨씬 더 많을 것이라는 것이다결국 이들을 중심으로 한 이슬람의 종교적 영향은 우리 사회 깊숙이 그 뿌리를 내리고 있는 셈이다.

 

수년 전 총칼 없이 유럽은 이슬람화의 과정을 겪게 될 것이며그 기간은 수십 년이 채 되지 않을 것이다고 공언했던 리비아의 카타피의 말이 새삼 무겁게 다가오면서 이 말이 비단 유럽만을 향한 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무엇이 이토록 빠르게 이슬람의 성장이 가속화 되게 하였는가?

 

다양한 이유와 상황을 논할 수 있겠으나 가장 중요한 한 가지는 그 포교의 기본적인 방법과 사고에 있다고 보여 진다한마디로 우리 기독교의 선교와 이슬람의 포교는 본질적인 차이를 가지고 있다.

 

기독교적 선교의 개념은(특별히 보수진영에서는하나님의 선택에 근거한 믿음의 고백과 이로 인한 개인의 회심그리고 영혼 구원이라는 초점을 가지고 있다하지만 이슬람의 선교는 사회 전반적인 제도의 개혁곧 한 국가 혹은 사회를 그들이 주장하는 종교적 공동체로 만드는 것이다그래서 샤리아 법이 실현 가능하도록 하여 경제군사문화 그리고 정치적 체계에 이르기까지 전체를 통합하는 총체적 시스템 구축에 있다.

 

결국 이런 본질의 차이는 방법적인 면에서도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우리가 영혼 구원에 집중하고 있을 때에 그들은 이슬람화된 시스템 구축에 온 힘을 쏟고 있다결국 그들은 개인의 개종은 물론이지만 국제 결혼도시 건설금융 시스템 구축대규모 이민인구의 자연 증가무역의 증대교육과 문화그리고 정치 통합을 통한 이슬람화를 꾀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한 손에 칼한 손에 꾸란이라는 절대적인 독단적 사고를 가지고서이른바 성전(聖戰)이라고 부르는 지하드’(Zihad)의 명령 앞에서 포교를 위해서라는 얼마든지 거짓말도 용인되는 타끼야’(Taqiyya)교리를 사용하여 회유미소평화적 변장을 서슴치 않고 있다.

 

하지만 이를 대면하고 있는 우리 사회는 너무나 온화하고 조용하게 그리고 거부감 없이 그들의 체제 속으로 젖어 들어가고 있다마치 실험실 알콜 램프 위에 올려 진 그릇 안에서 물이 조금씩 따뜻해져 오는 포근함을 만끽하고 있는 개구리처럼 평화롭게 미소를 머금으면서 말이다.

 

피터 하몬드가 노예화테러리즘 그리고 이슬람이라는 책에서 발표한 무슬림 인구 증가에 따른 단계별 이슬람화의 기준이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오히려 더 적극적이고 신속하게 적용되어 가고 있음을 보게 된다.

 

무슬림 인구 1% 미만에서 보이는 평화의 종교로 가장하는 모습을 표면적으로는 가지고 있으면서 샤리아 법률의 뿌리 내리기를 위해 주변 상황을 만들어 가는 모습들이 보이는 것이 그것이다.

 

세계적으로 그 열정과 물량에 있어서도 뒤지지 않는 한국 교회의 선교 현실은 참으로 자랑스럽고 감사한 부분이다이제는 그 열정을 가지고 우리 안방을 주목해야만 한다등잔 밑이 어둡다는 우리 선조들의 훈계를 흘려보내지 말아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현실에 대한 바른 이해가 급선무일 것이다우리 곁에 들어 와 있는 무슬림들과 그들이 생명으로 여기고 있는 이슬람이란 종교가 어떤 것인가를 정확하게 이해해야 할 것이다.

 

분명한 것은 무슬림은 우리의 적이 아니라 형제들이다다만 그들이 믿고 있는 신앙은 우리가 가진 신앙과 형제가 될 수 없다문화경제정치의 커튼으로 가려진 막을 걷어내고 이슬람이라는 종교의 본 모습을 정확하게 보아야 한다.

 

그들은 이미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두텁게 자신들의 본질을 가리고 우리 곁에 와 있다그래서 쉽사리 보이지 않는 부분들이 너무나 많이 있다그러므로 성도들의 신앙을 인도하는 목회자들에게 간절한 마음으로 현실적인 상황을 직시하며 깨어나는 목자적 의식을 촉구한다.

 

무엇보다도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혼탁해진 영적인 혼란과 기준을 잃어가는 사회 윤리적 방황의 파도 속에서 우리 성도들이 길을 잃고 헤매지 않도록 해야만 할 것이다.

 

알지 못하여 의식 없이 휩쓸려 가는 실수와 죄를 범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이슬람의 실체와 그들이 지나 온 역사적 사실들을 가감 없이 보여주고 알게 하는 것이 현실을 방관함으로 우리 후손들이 겪게 될지도 모르는 진리를 떠난 암울한 영적 혼동을 막게 하는 최선의 수고이며 의무임을 직시하여야만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