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난 복사기 _이창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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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장난 복사기

 

< 이창주 목사 · 하나비전교회 >

 

 

교회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알게 된 목사님을 통하여 복사기 하나를 얻었다. 그 목사님이 자기 교회에 새로운 복사기를 구입하면서 안 쓰게 된 복사기가 있다면서 내게 주신 것이다. 감사히 받아 주보나 교육 교재를 제작하는 등 요긴하게 사용하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1년이 채 못 되어 고장이 나고 말았다. 아쉬운 마음에 인근 수리점을 찾아가 복사기를 고쳐줄 것을 요청했지만 약속만 하고는 오지 않았다. 그 후에도 두어 번 찾아가 수리를 요청했지만 여전히 오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수리점이 문을 닫고 다른 가게가 차려진 것을 보았다. 아마도 가게를 정리하는 단계였기에 그랬던 것 같았다. 나는 하는 수 없어 그 복사기를 고장 난 채로 목양실 한 구석에 버려두고 스캐너와 컴퓨터 프린터를 이용해서 복사를 하였다.

 

그러던 얼마 후 서울에 계신 어머님께서 교회를 찾아 오셨다. 우리와 함께 예배를 드린 어머님은 “우리 교회에서는 커다란 TV가 있어서 여기에 찬송가 글씨가 크게 나와서 이를 보며 찬송을 부른다”고 말씀하시며 대형 TV를 사라고 150만원을 헌금하고 가셨다. 그런데 TV보다는 유용성면에서 프로젝터가 훨씬 좋겠다고 생각하여 프로젝터와 함께 이동용 스크린을 샀다.

 

하지만 프로젝터를 설치하려고 할 때에 이것을 올려놓을 테이블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마침 고장 난 복사기가 있어 이것을 끌어다가 그 위에 프로젝터를 올려놓으니 아주 적당한 높이와 넓이가 되었다. 이후 지금까지도 매 주일마다 고장 난 복사기 위에 프로젝터를 올려놓고 찬송을 부르거나 성경을 함께 읽는 등 아주 요긴하게 사용하고 있다.

 

그러던 중에 복사기를 주셨던 목사님 부부를 만났다. 그 목사님은 내게 준 복사기를 아직도 잘 사용하느냐고 물으셨다. 난 얼마 사용하지 못해 고장이 나서 사용하고 있지 못한다고 말하자 두 분은 실망하는 모습을 지었다. 아마도 자신들이 좋은 것을 주지 못한 것에 대하여 미안한 마음을 가진 것 같았다. 그러자 나는 “목사님! 비록 복사기는 고장이 났지만 프로젝터 받침대로 잘 사용하고 있습니다”고 말씀을 드렸다.

 

며칠 전에 사용하고 있는 프로젝터와 그 받침대인 고장 난 복사기를 치우면서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처치 곤란이었던 이 복사기가 이렇게 소중히 쓰일 줄이야, 바로 이것 아닐까? 지금 나의 모습은 아무 쓸모 없이 고장 난 복사기 같을 지라도 주님께서 나를 택하시면 나도 소중하게 쓰일 수 있지 않을까? 전능하신 주권자이신 주님께서 원하기만 하신다면 얼마든지 가능할거야. 이제부터라도 열심히 나 자신을 준비하노라면 주님께서 나를 더욱 소중하게 사용하실 거야.”

 

목회를 하고 있으나 성도들은 좀처럼 늘지 않고, 얼마 안 되는 성도들마저 주일 예배에 지각하거나 결석하는 등 낙심케 하는 상황들이 수시로 일어난다. 그럴 때면 ‘내가 지금 목회를 제대로 하는 건가? 기업체의 직원들이 나이 들고 입지가 줄어들면 조기 명퇴하듯이 나도 그래야 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비록 우연한 기회를 통하여 든 생각이지만 이는 주님께서 나에게 주신 말씀으로 믿어진다. 지금의 나는 고장 난 복사기 같은 상태일지 모르나 전능하신 주권자이신 주님께서 나를 이끄시면 지금보다 더 소중히 쓰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미래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아마 지금 주님께서는 어떻게 하면 우리를 보다 더 유용하게 사용하실 계획을 갖고 있을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낙심할 것이 아니라 주님의 용도에 쓰임 받을 수 있도록 더욱 힘써 경건의 훈련에 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