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관성에 담보잡혀 버린 타당성
남이사_일산은혜교회 청년부
“객관적으로 봤을 때’, ‘객관적으로 얘기하는데’, ‘객관적으로 생각해
봐’, ‘네 말은 너무 주관적이야.’
대화나 토론을 하다보면 흔히 듣게 되는 말들이다. 상대방이 먼저 이 말을
꺼내는 순간, 다시 말해서 객관성을 선점당한 나의 의견은 객관성이 결여된
말로 비 논리화 되어버린다.
요즘 들어 객관적 의견, 객관적 주장만이 타당하고 공정하다는 집단적 오류
의 홍수 속에 살고 있는 듯 하다. 실컷 대화하며 의견을 개진하다가도 ‘객
관적으로 생각해 봐라’는 말 한마디에 나의 의견은 아집이나 독선이 되어버
리고 마는 경험을 심심찮게 하고 있다.
의견의 타당성 여부는 객관성의 여부에 달려있다. 주관적이라고 낙인찍혀버
리면 그속에서 타당성이나 공정성은 더이상 찾기 힘들어진다. 주장의 타당성
이 객관성에 담보잡혀 버린 지금, 객관성의 선점이 토론의 우위와 직결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타당성을 찾으
려 하기보다는 객관성의 여부를 따지는 것이 우선이며, 근거
도 없는 객관성에 의해 주장의 가치가 결정되어 버리는 것이다. 필자가 정
말 안타깝게 여기는 것은 객관성이 타당성의 기준이 되는 것이 아니라 객관
성의 기준이 불분명함에도 불구하고 객관성을 남발하는 우리의 현실이다.
객관성의 기준은 무엇인가? 대세의 영향을 따르면 객관적인가? 다수결이 객
관적이라 할 수 있는가? 무슨 기준으로 객관성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는 것인
가. 토론이나 대화는 단순한 사실이 아닌 의견(의견이란 단어는 이미 주관성
을 내포하고 있다)의 교환이다. 주관적인 의견의 상호 개진속에서 충돌이 일
어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그속에서 객관성을 찾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
인 셈이다
객관성에 담보잡혀 버린 현실속에서 주관적이라는 낙인의 힘은 가히 절대적
이다. 주관적임을 인정하는 순간 토론은 종결을 고하게 된다. 항상 객관성
을 담고자 노력하며 객관적인 자세를 취하는 척하며 상대의 주장속에 객관성
이 결여되어 있다는 결정적인 증거를 찾아내기에 골몰해 있다.
주관(主觀)의 사전적 의미는 “① 여러 현상을 의식하며 사물을 생각하
는 마
음의 움직임. ② 자기만의 생각, 또는 자기만의 치우친 생각”이다. 한문을
풀어보면 주인 주(主), 볼 관(觀), 즉 주인의 입장에서 본 바를 의미하는 것
이다. 그리고 객관(客觀), “자기 혼자만의 생각에서 벗어나, 제삼자의 처지
에서 사물을 보거나 생각하는 일” 한문을 풀어보면 손 객(客), 볼 관(觀),
즉 손님의 입장에서 판단한다는 것이다.
제3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하는 문제는 차치하고서라
도, 제3자의 의미는 ‘나’와 ‘너’가 아닌 중립적인 위치를 의미하지 않는
다. 나와 너의 의견 사이에는 수없이 많은 또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다.
이 모든 것들을 제3자로 묶어낼 수 있는가?
자신의 의견과 제3자의 의견이 동일하다고 하는 얘기는 제3자에게 기대어 타
당성을 얻고자 하는 행위와 다름 아니다. 다시 말해서, 자신의 주관적 의견
과 일치하는 제3자의 의견을 빌려와 객관성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버리는 비
겁한 행위라 판단된다.
지금 필자가 쓰고 있는 이 글도 지극히 주관적인 이야기이며, 나 자신의 경
험과 나 자신의 생각으로 풀어나가고 있는 글일 뿐임을 밝혀둔다. 주관적이
라고 낙인찍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자 한다. ‘그래, 맞아 내 의견은 주
관적이야’라고 자신있게 얘기하고 싶다. 상대의 주관적인 의견과 충돌하는
부분을 통해 자신의 주장 속에서 찾게 되는 오류를 수정해 나가며 독선과 아
집에 빠지지 않을 정도의 주관성을 유지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