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아비에게 물으라!” 신명기 32:7
< 정창균 목사, 합신 설교학 교수, 남포교회 협동목사 >
“한국 기독교는 다시 ‘성경 기독교’(Bible Christianity)로 돌아가야”
초기 한국기독교의 가장 두드러진 특성 가운데 하나는 외국 선교사가 입국하기 전에 이미 성경이 먼저 번역되고 보급되었다는 점입니다.
개신교 선교사가 최초로 한국에 들어온 것은 1884년이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어 성경 번역은 그 이전에 만주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후에 일본에서도 이루어졌습니다.
1882년에 누가복음, 1883년에 마태복음과 마가복음 그리고 사도행전이 인쇄되었습니다. 1887년에는 신약 전체를 번역하여 3천부를 출판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로스 번역본”(Ross Version)입니다. 일본에서는 이수정이 누가복음을 번역하였고, 1885년 초에 미국성서공회에서 천부의 번역판을 인쇄하였습니다.
만주에서 성경번역에 참여한 한국인 번역자들은 그 이후 위험을 무릅쓰고 성경을 국내에 들여와 열성적으로 보급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경말씀을 전파하는 일에도 힘을 쏟았습니다.
영국성서공회 한국지부가 1896-1940년까지 한국에서 반포한 성경은 총 2,062만여 권으로 매년 458,255권이 반포된 셈이며, 미국성서공회(ABS) 한국지부가 1901-1919년까지 한국에서 반포한 것은 총 266만권으로 매년 140,455권을 반포한 셈입니다.
한국의 성경 반포사업이 그렇게 활발하게 일어나게 된 데는 권서인들의 활동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이들은 성경을 짊어지고 전국 방방곡곡으로 돌아다니며 그것을 보급하고, 그 내용을 전하기 위하여 전적인 희생을 감수하였습니다.
1940년까지 영국성서공회 한국지부의 성경보급의 약 85%가 권서인들에 의해 이루어졌고, 1913-1918년의 미국성서공회 한국지부 성경보급의 약 98%를 권서인들이 감당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성경 번역과 보급을 통하여 한국 최초의 개신교 신자들은 처음부터 자기의 언어로 직접 성경 말씀을 접할 수 있었으며, 성경을 가지고 전도하며, 교육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성경은 한국교회 역사의 첫 순간부터 매우 중요하고도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사실은 한국기독교가 성경 중심의 성격을 가진 기독교로 정착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한국교회에서 차지하는 독특한 위치를 목도한 선교사들은 한국기독교인들을 “성경을 사랑하는 그리스도인”(Bible-loving Christian) 혹은 “성경을 사랑하는 사람들”(Bible Lovers)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기독교를 “성경 기독교”(Bible Christianity)라고 부르곤 하였습니다.
선교사들이 도착하자마자 곧 사역의 열매를 거둘 수 있었던 것도, 이후의 한국교회가 그렇게 지독한 핍박 가운데서도 그렇게 힘찬 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것도 성경중심의 그 체질 때문이었습니다.
성경을 읽어보고 싶은 열심이 국문공부 운동을 일어나게 하였습니다. 성경을 배우고 싶은 열정이 성경을 집중적으로 공부하는 ‘사경회’(査經會)라는 이름의 성경공부운동을 일어나게 하였습니다.
평양의 사경회에 참석하기 위하여 교인들은 압록강 변에서 300리 길을 걸어서 왔고, 전라도의 목포, 무안 지방에서 걸어오기도 하였습니다. 어떤 자매는 머리에 쌀자루를 이고 300마일을 걸어왔고, 다른 이들은 거기에다 아이들까지 업고 왔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손에는 손때 묻고 닳아빠진 성경책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실들을 조목조목 밝혀주신 이만열 교수님의 지난 학기 강의안을 읽으며 저는 여러 번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세계가 주목하고 부러워하는 한국 교회의 주목할 만한 성장과 발전은 교회 초기부터 성경을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성경 중심의 교회로 세워졌기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것은 오랜 옛적의 추억이 되고 말았습니다. 설교는 무엇보다도 본문말씀을 선포하는 것이라는 설교의 본질에 입각하여 한국교회 설교 현실을 살펴볼 때 근래의 한국교회 설교가 보여주고 있는 압도적인 경향은 설교의 성경말씀 이탈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설교에서 성경이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거나, 급기야는 성경을 설교의 기본 텍스트로 삼지 않은 설교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아예 사용하지 않기도 하고, 성경을 잘못 사용하기도 하고, 성경을 남용하기도 합니다. 교회는 다양한 행사를 진행하는 행사장이 되고 말았습니다.
오늘 날 한국교회가 이렇게 힘을 잃고 교회 안팎으로부터 능멸에 가까운 심한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는 처지에 까지 이르게 된 것도 그 근원을 따지고 들어가면 강단에서 성경말씀을 제대로 선포하는 제대로 된 설교에 대한 집착을 포기하고 지내온 데서 온 묵은 후유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기독교는 “성경기독교”가 아니라, “성경을 덮어버린 기독교”라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초창기 한국교회의 그 능력과 그 위대함을 회복하고 다시 일어서기 위해서는 우리는 다시 그 역사를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때 무엇이 일어났었는가를 역사에 물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역사를 회복해야 합니다. 한국기독교는 선교사들이 그렇게 불러주었던 대로 다시 “성경 기독교”(Bible Christianity)로 돌아가야 합니다.
민족의 앞날을 염려하며 간곡하게 권면하던 모세의 마지막 설교 말미의 한 대목이 생각납니다.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네 아비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말하리로다”(신 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