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인도하는 묵상칼럼(63)| 이율배반二律背反_정창균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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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율배반二律背反

 

< 정창균 목사, 합신 교수 ,남포교회 협동목사 >

 

 

“교회는 어떤 좌절의 상황에서도 넘어지지 않아”

 

 

사도 바울이 바나바와 함께 첫 전도여행을 떠나 루스드라에 머물고 있을 때였습니다. 하루는 말씀을 전하다가 귀를 기울여 듣고 있는 지체장애인 한 사람을 기적을 행하여 고쳐주었습니다.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여서 자기 발로 걸어본 적이 없는 사람을 고친 것입니다. 이 사건을 본 무리들이 경의에 찬 소리를 지르며 모여들었고, 그곳에는 일시에 큰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신들이 오셨다! 신들이 사람의 모양으로 우리 가운데 오신 것이다!”

 

바나바는 제우스신이고, 바울은 헤르메스신이라고 그들은 확신하였습니다. 바울은 신이 아니었지만, 신이나 할 수 있는 일을 한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그러자 외곽지역에 있던 제우스신을 섬기는 신당의 책임자가 무리를 이끌고 소와 꽃다발을 가지고 바울과 바나바가 머무는 집 대문 앞에 와서 이 두 신에게 제사를 하려 하였습니다.

 

이것을 알아차린 바나바와 바울이 옷을 찢으며 무리 가운데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들이 지른 소리의 내용은 이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짓을 하는가? 우리도 너희와 똑 같은 사람이다. 너희에게 복음을 전한 것은 다른 신에게 제사하는 헛된 일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였다!”

 

바울과 바나바가 당혹스러워하는 것은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섬기는 그 짓을 못하게 하려고 복음을 전했는데 복음을 전한 결과로 오히려 이런 짓이 일어나고 있다는 그것이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즉석에서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자세히 설명하여 자기들에게로 집중되어 있는 사람들의 시선을 하나님께로 옮겨 놓기 시작합니다. 이 사건은 바울과 바나바가 “겨우 무리를 말려 자기들에게 제사를 못하게 했다”(18절)는 말로 결말을 맺고 있습니다.

 

목회자들은 자칫하면 헛된 일을 멈추게 하려고 시작한 일로 오히려 헛된 일을 조장하는 결과를 초래할 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제우스신을 섬기는 일을 그만두고 하나님을 섬기게 하라고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과, 은사와, 큰 교회를 가지고 제우스신을 섬기는 일을 그만 두고 목회자 자신을 섬기게 하는 일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휩싸일 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존 스토트는 『설교자란 무엇인가』라는 책에서 신격화된 대접을 받고자하는 목회자의 잘못된 풍조를 강하게 경고합니다. 그는 지극히 부당하고 어울리지 않는 존경이 오늘날 일부 교회 지도자들에게 돌려지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하나님께만 합당한 경의를 교회의 고위 성직자에게 돌려서는 결코 안된다고 단언합니다. 그는 설교자를 칭송하는 회중, 그리고 사람들로부터 그러한 칭송을 은근히 기대하는 설교자는 모두 하나님을 모욕하는 자들이라고 단정지어 말합니다.

 

설교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면서 동시에 사람들의 종이라는 것이 스토트의 입장입니다. 스토트는 설교자의 능력의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루면서 설교자는 능력의 소유자가 아니라 능력의 통로라고 주장합니다. 설교자는 능력을 소유한 자가 아니라 능력이 필요한 자일 뿐입니다. 능력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그리고 성령 안에 있으며 설교자가 이 능력을 힘입고 능력의 통로가 되기를 기대할 수 있는 조건은 거룩함과 겸손이라고 스토트는 결론 짓습니다.

 

이 나라의 어떤 목회자들에게는 “어떤 수를 사용해서라도” 교인들을 말려 자기들에게 제사하듯 하는 일을 못하게 하는 일이 가장 시급한 일로 여겨집니다. 루스드라의 사람들이 바울과 바나바에게 했듯이 교인들이 경의에 찬 눈으로 목회자 자신에게 시선을 집중하고, 자기 앞에 쩔쩔매며 엎드리는 것을 마치 자기의 목회능력인 것처럼, 자기의 영력인 것처럼 보란 듯이 과시하고 즐기는 것은 하나님의 종인 목회자가 할 일은 아닙니다.

 

더우기 교인들이 자기를 그렇게 신처럼 높이며 대해주기를 은근히 기대하거나, 심지어 은연 중에 그것을 조장하는 못된 짓을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이율배반입니다. 그것은 교인들에 대한 인간적인 예의도 아닐 뿐 아니라 하나님께로 가야 될 것을 가로채는 반역이기도 합니다.

 

교인들이 목회자에게서 몇 가지 특이한 행적과 수완을 본 결과로 ‘우리 목사님이야 말로 제우스신이고 헤르메스신’이라는 식의 생각으로 그렇게 높이고 대접하는 것인지, ‘목사님은 성경이 말씀한대로 우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는 분’이므로(히 12:17) 순종하고 복종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목회자를 존경하고 높이는 것인지 잘 분별해야 합니다.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는 말씀에 대한 순종으로 그렇게 목회자를 높이고 따를 때에도, 여전히 우리가 그들 가운데 뛰어들어가서 외칠 말은 그것입니다.

“나도 여러분과 똑 같은 사람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