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인도하는 묵상칼럼 (37) 엄중한 명령과 간곡한 부탁_정창균 목사

0
29

본문으로 인도하는 묵상칼럼 (37)

디모데후서 4:1-5

엄중한 명령과 간곡한 부탁

정창균 목사_합신 교수,남포교회 협동목사 

“금기시되는 주제라도 과감히 설교해야”

오늘날 교인들이 교회에 와서 들어야 하는 메시지는 사랑과 위로와 격려의 
메시지이며, 그러므로 그들을 더 피곤하게 하거나 그들에게 부담을 주는 설
교를 해서는 안 된다는 이론이 팽배합니다. 

설교에 제한된 영역 없어

그리하여 죄를 지적하고 회개를 촉구하는 설교나 지옥에 대한 설교, 헌신을 
도전하는 설교 등은 교인들에게 부담을 준다는 이유로 금기시 되고 있습니
다. 
이 시대는 절대권위를 절대 거부하는 다원주의와 상대주의를 본질로 하는 시
대라는 인식을 근거로 가능하면 권위를 전제로 하는 메시지는 삼가야 한다
는 주장이 보편화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높고 거룩하시며 초월적이고 심
판하시는 엄위하신 하나님보다는 우리의 친구와 같고, 우리를 사랑하시며 
내 곁에 계시는 이웃 같
은 하나님을 선포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
다. 
물론 교인들은 강단으로부터 위로와 소망과 격려와 복된 메시지를 들어야 합
니다. 그러나 이 말이 곧 교인들이 듣기 좋아하는 말을 해주어야 한다는 것
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지옥에 대한 말씀과, 헌신을 도전하는 말씀
과, 죄와 회개에 대한 말씀과, 하나님을 두려우신 거룩한 하나님으로 선포하
는 말씀들이 그 자체로 그들에게 부담이 되거나 부담을 주는 것도 아님을 알
아야 합니다. 
교인들은 지옥을 말하는 설교를 싫어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옥설교를 지옥같
이 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헌신을 메시지로 하는 설교를 부담스러워하는 것
이 아닙니다. 헌신설교를 강도 만나 강탈을 당하는 것처럼 느껴지도록 하는 
것을 싫어하는 것입니다. 죄에 대한 설교를 싫어하는 것이 아닙니다. 죄에 
대한 설교를 협박과 공갈을 당하는 것처럼 위협적으로 쏟아내는 설교를 싫어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큰 죄인인가를 깊이 깨닫고 그분 앞에
서 통곡하며 회개할 때 비로소 가슴 깊은 곳, 영혼 깊은 곳으로부터 우러나
오는 해방감과 자유 그리고 깊은 평안
과 담대함을 드디어 경험하게 되는 것
입니다. 이것은 우리 자신의 경험에 의하여도 자주 확인되는 사실입니다. 
신앙의 양심은 죄의식으로 불안해하고 두려워하는 데도 교인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하여 죄와 회개의 메시지는 감추어버리고, 용서의 하나님이 계
시니 괜찮으며, 하나님은 당신을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주시고 사랑하시니 
담대하라고 외쳐대는 설교가 주는 것은 위장된 거짓 평화일 뿐이라는 사실
을 정직한 교인들은 머지않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권위와 초월성과 거룩성을 강조하거나, 경외와 두려움의 
대상으로서의 하나님을 설교하면 현대 교인들에게는 부담이 되고 저들의 꺼
림을 받을 수 있으니 하나님을 우리의 친구, 우리의 처지를 이해하고 동정하
시는 분, 우리 안에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 위로의 하나님으로만 설교하
여 교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고 안심시키는 데에 주력하려는 것은 자기 스스
로 속는 어리석은 시도일 뿐 아니라 진리에 대한 왜곡과 실용주의에의 편승
이기도 합니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를 마무리하면서 하는 말은 “말
씀을 선포하라”(Preach 
the Word)는 한 마디였습니다(2절). 이것은 하나님
과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그리고 그분의 재림과 그의 
나라를 내세운 엄중한 명령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죽음을 의식하는 사람이(6
절)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내놓는 마지막 간곡한 부탁이었습니다. 
사도가 그렇게 엄중한 명령과 간곡한 부탁으로 “말씀을 선포하라”고 하는 
중요한 이유는 “이 세대가 말씀 듣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었습니다(3
절). 이 세대가 부담스러워하고, 이 시대의 흐름에 맞지 않는 말씀을 설교하
지 말아야 한다는 우리의 생각과는 정반대의 논리를 사도는 펴고 있는 것입
니다. 

감성만 자극하는 설교가 문제

오늘날의 설교자들에게는 성공적인 설교를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금기시되어 
있는 여러 주제들을 과감하게 설교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