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베스의 기도”  _성주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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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베스의 기도” 

성주진 교수/ 합신 구약신학

3년 전 한국교회에 소개된 ‘야베스의 기도'(브루스 월킨슨)가 여전히 성도들
의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상당수의 성도들이 이 기도문을 주기도문처럼 사용
하여 정기적으로 기도한다는 사실은 이 기도의 내용이 21 세기 그리스도인들
의 마음속에 상당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오랫동안 역대기의 
긴 족보 속에 감춰져 있던 기도(대상4:9-10)가 뒤늦게 각광을 받고 있는 셈입
니다. 

야베스의 기도는 먼저 기도의 중요성과 기도응답의 확신을 강조합니다. 야베
스가 존귀하게 된 것은 그가 믿음으로 기도했기 때문이고, 하나님이 신실하
게 응답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기도와 응답의 강조는, 포로에서 귀환한 유다
공동체에 기도의 활력을 불어넣고자 했던 역대기 저자의 의도와 일치합니다. 
따라서 무기력한 기도생활 때문에 하나님의 응답을 기대하지 못하던 사람들
이, 야베스의 기도를 통하여 구체적이고 적실한 기도를 배우고 드림으로써 신
앙생활
의 활력을 되찾게 되었다면 이는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야베스의 기도에는 또한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강조가 나타납니다. 야베스는 
그의 이름이 의미하는 바와 같이 고통스러운 탄생의 기억을 간직한 사람이었
습니다. 그러나 야베스는, 그의 이름에 내포된 과거의 질곡과 현재의 한계를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극복함으로써 억눌린 사람을 존귀한 자로 만드시는 하나
님의 능력을 체험하였습니다. 따라서 고통의 자리에서 신음하던 사람이 야베
스의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확신하게 되었다면 이 또한 매우 소중
한 일입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기도의 내용입니다. 이 기도는 일견 현대인들이 통
상적으로 추구하는 가치와 별반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복에 복을 더하
사'(풍성한 축복), ‘지경을 넓히시고'(확장되는 영역/비전), ‘주의 손으
로'(기적적인 능력), 그리고 ‘환난….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평안과 안전) 
등은 매혹적인 주제입니다. 게다가 야베스는 기도마다 ‘나'(자기사랑)를 빼놓
지 않았으며, 형제(들)보다 ‘존귀한 자'(부귀와 명예)가 되었습니다. 바르고 
균형 
잡힌 시각의 필요성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먼저 야베스의 기도를 창조주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라는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구약의 성도와 신약의 그리스도인이 생육하고 번성하며, 가족과 공
동체가 두루 안전하고 평안하며, 생업의 기반인 사업이 잘 되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이 주시는 복입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 힘쓰고 때로 하나님의 도우심
을 구하는 일 자체가 비난꺼리는 아닙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복이 죄인
을 불러 자녀를 삼으신 목적의 전부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본문은 주로 구원역사의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야베스가 구한 지경
(땅)의 확장을, 부동산의 축적이 아니라 하나님이 허락하신 기업의 누림이라
는 관점에서, 그리고 넓게는 약속의 땅에 세우신 하나님 나라라는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신약 성도에게 구약의 땅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
된 풍성한 구원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주기도문이야말로 야베스
가 드린 기도의 신약적 해석이요, 현대적 적용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 종말에 대한 전망이 추가되어야 합니다. 성도는 하늘과 땅의 시민권
을 동시에 가
진 존재이기 때문에, 하늘 본향에 대하여는 나그네입니다. 그리
스도인들은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면 모든 것을 더하시겠다는 종말론적 
약속을 믿고,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를 좇는 제자입니다. 이러한 측면은 야베
스의 기도에 잘 나타나지 않습니다. 따라서 야베스의 기도는, 하늘 본향을 바
라보는 나그네의 삶과 예수를 따르는 ‘모험적인’ 제자도를 위한 기도와 병행
되어야 할 것입니다. 

‘야베스의 기도’에 대하여는 양단간의 단정보다 균형 잡힌 평가와 지혜로운 
적용이 필요한 줄 압니다. 주기도문과의 관계 정립도 균형과 적용의 한 예입
니다. 야베스의 기도문은 어디까지나 보조적으로 사용되어야지, 주객이 전도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럴 때에야 하나님의 큰일을 이루려는 열망을 품은 그
리스도인들이 한시라도 궁극적인 목적을 잊지 않고, 주님의 나라가 임하는 은
혜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