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 콤플렉스_성주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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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 콤플렉스 

성주진 교수/ 합신 구약신학

상당수의 성도들이 전도하지 못한다는 심리적 부담감을 안은 채 살아가고 있
습니다. 조사에 의하면 신자가 가장 활발하게 전도하는 시기는 믿기 시작한 
처음 몇 해 동안이라고 합니다. 이 시절에는 구원의 감격과 전도의 열정이 넘
치는 데다가 불신자 친구들의 호기심도 한몫해서 비교적 쉽게 전도를 할 수 
있지만, 신앙연륜이 쌓이고 교회직분을 맡게 되면 대체로 교제의 폭이 좁아져
서 전도의 기회가 줄어들고 전도의 열정도 식어지는 것이 현실이라고 합니
다. 

이와 같은 통계에 비추어 보면 초신자보다는 집사님이, 집사님보다는 장로님
이, 그리고 장로님보다는 목사님이 전도할 기회가 적은 것으로 생각할 수 있
습니다. 물론 객관적인 통계수치나 개인적인 처지가 전도하지 못했다는 막연
한 죄책감을 완전히 없이해 주지는 못하기 때문에 전도 콤프렉스는 여전히 마
음 속에 남아 있게 됩니다. 바쁘게 살아가다가 전도하기로 마음을 먹었던 병
상의 친지가 어느 날 갑자기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에 느끼는 죄책감은 
오래 지속될 것입니다. (물론 그 분이 내가 이전에 전도한 사람에게 다시 전
도를 받아 죽기 전에 신앙을 고백하고 세례를 받았다면 감사와 기쁨이 넘칠 
것입니다.)

은밀한 전도 콤플렉스에 사로잡혀 하나님의 말씀을 전체적으로 균형 있게 보
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보통 복음전도를 소
위 지상명령과 동일시합니다. 그러나 이 ‘지상’이라는 말에 함축된 의미가 뜻
하지 않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이 표현이 다른 명령을 상대화함
으로써 이 명령만 지키면 주님의 다른 명령은 무시해도 좋다는 암시를 줄 수 
있습니다. 전도는 반드시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나 유일한 일은 아닙니다. 
전도를 한다고 다른 일에 대한 책임이 면제되는 것도 아닙니다. 이 점이 정리
되지 않으면 전도 콤플렉스는 전도 콤플렉스대로 남고, 다른 일은 다른 일대
로 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지상명령 외에 ‘지상’이라는 말이 붙은 또 다른 명령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
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명하는 지상계명입니다. 이 두 ‘지상’의 관계는 어

떤 것일까요? 우리가 전도의 지상명령을 앞세워 이웃사랑의 지상계명을 경시
하거나 혹은 반대로 할 수 있을까요? 전도명령을 ‘지상’명령이라고 이해하고 
배타적으로 적용하게 되면 우리는 이웃사랑의 지상계명을 전도명령에 종속되
는 것으로 보거나 전도명령을 실천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생각할 우려가 있습
니다. 

지상명령과 지상계명의 관계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 추론할 수 있
다고 봅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은, 존 스톳트가 지적한 바와 같이, 강도상해자
를 치료한 후에 후속조치를 위해 필요한 돈을 남겨 놓았지 전도지만 달랑 남
겨 놓고 떠난 것이 아닙니다. 치료하기 전에 전도해야 한다거나, 치료한 직후
에 전도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는 있지만, 그렇게 하는 것만이 지상명령에 대
한 지혜로운 순종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잘못하면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칠 
수도 있습니다.

복음주의는 과거 사회복음주의와의 치열한 논쟁과정에서 얻은 상처 때문에 
이웃사랑의 범위와 내용을 매우 협소하게 정의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불신자
에게 전도하는 것을 사실상 이웃사랑의 유일한 내용으로 규정하는 경우가 그

습니다. 이는 지상계명을 지상명령으로 환원시킨 격입니다. 분명한 것은 이
웃사랑의 지상계명은 전도 이상의 포괄적인 사랑을 요청하고 있다는 사실입니
다. 지상명령에 대한 오해 때문에 이웃사랑에 포함된 책임을 거부하게 되면 
주님의 말씀을 핑계로 또 다른 주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는 우를 범하게 될 것
입니다. 

이렇게 전도 콤플렉스는 지상명령의 관점에서뿐만 아니라 지상계명의 관점에
서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전도가 모든 계명을 대체하지 않
기 때문에 전도했다고 해서 할 일을 다한 것처럼 생각할 수 없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웃을 구제하는 것이 곧 전도라고 생각할 수도 없습니다. 전도
의 지상명령과 이웃사랑의 지상계명은 보완적인 것이지 배타적인 것이 아닙니
다. 그리고 지금은 기독교에 대한 낮은 호감도를 고려할 때 전도를 위해서라
도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지상계명의 실천에 더욱 힘써야 할 때인 
줄 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