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색깔론’  성주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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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색깔론’ 

성주진 교수/합신 구약신학

오래 전에 검은 풍선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납니다. 조지라는 청년이 길거리
에서 풍선을 팔고 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한 소년이 매대에 달린 빨강, 노
랑, 파랑 풍선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소년이 묻습니다. “아
저씨, 검은 색 풍선도 뜰 수 있나요?”

조지는 잠깐 생각한 후에 부드럽게 대답했습니다. “물론, 검은 풍선도 뜰 
수 있단다. 풍선을 뜨게 하는 것은 풍선의 색깔이 아니라 그 안에 있는 기체
이기 때문이지.” 짐작하신 대로 소년은 흑인이었습니다. 어려서부터 비자발적
으로 학습된 열등감은 그의 자존감을 짓눌러 너무도 당연한 사실까지도 의심
하게 만들었습니다. 

사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상처받은 흑인 소년과 같은 착각에 빠져 있습니
다. 사람을 ‘뜨게’ 하는 것, 인생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색깔’이라는 착
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직업의 색깔, 학벌의 색깔, 돈의 색깔이 행
복을 보장해 주는 
줄로 알고 여러 색깔을 바꿔 칠하고 덧칠하고 염색하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그러나 풍선을 뜨게 하는 것이 색깔이 아니라 속에 있는 기체인 것처럼, 인
생의 참 행복을 보장하는 것은 겉모습과 조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뿐임을 
모르는 그리스도인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속 사람이 새로워질 때에만 
우리네 인생은 비로소 ‘뜰’ 수 있습니다.

오직 은혜로, 추락한 인생이 비상하는 인생을 산 대표적인 예가 므비보셋입
니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추락하는 날개에 
비상하는 힘을 공급하십니다. 그가 다윗의 왕궁에 들어가 왕의 식탁에 참여하
도록 초청 받은 사실이 그 증거입니다. 

다윗은 므비보셋의 색깔에 대하여 전혀 개의치 않았습니다. 어떤 조건도 달
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므비보셋에게 저는 다리를 고쳐오라고 하지 않았습니
다. 봐줄 만큼 걷는 법을 배워오라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은혜는 불가능한 것
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저는 다리 그대로 오라고 부르십니다. 은혜의 나라는 
색깔이라는 조건에 따라 초청 여부를 결정짓지 않습니다.

다윗이 보인 하나님의 
은혜는 므비보셋을 왕의 식탁에 앉힌 일에서 잘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그가 이렇게까지 ‘뜬’ 것은 오직 왕의 언약적 호의에 의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가장 존귀한 자리에 올
려놓으셨습니다. 사람의 가치는 질그릇 같은 인간의 조건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질그릇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몽땅 연필로도 우등생은 100점 짜리 답안지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처럼, 하
나님은 몽땅 연필 같은 우리를 사용하셔서 당신이 기뻐하시는 인생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보잘것없는 악기라도 대가의 손에서 아름다운 선율을 만들어
내는 것처럼, 나 같은 사람도 하나님의 손에 잡혀 있으면 천상의 소리를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위대성이 감동적으로 그려진 또 다른 예는 다윗의 식탁인 
줄 압니다. 그 자리에는 은연중 황태자임을 내세우는 암논, 아름다운 용모를 
뽐내는 압살롬, 지혜로 유명한 솔로몬, 용맹스런 장수 요압, 제갈공명 뺨치
는 아히도벨, 그리고 굴지의 재산가 바실래가 자리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
러나 므비보셋에게는 자랑할만한 것이 아
무 것도 없었습니다. 수치스러운 과
거, 상처와 회한 그리고 원망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모든 것을 온통 바꾸어 버렸습니다. 이전에 므비보
셋의 성치 못한 다리는 하나님과 사람에게 버림받은 표가 되었습니다만, 이제
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자랑하는 표가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절
름거리는 다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소망의 근거가 되었습니다. ‘잘난 사람만
이 왕의 식탁에서 식사를 하는 것이 아니구나. 왕족이 아니라도, 왕의 원수
의 집안이라도, 절름발이라도, 왕의 은혜를 받을 수 있구나. 왕의 식탁에 초
대받을 수 있구나.’ 

다윗이 표방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이렇게 은혜의 왕국입니다. 만일 은혜의 
왕국에 들어와 있으면서도 색깔을 바꿔 칠하기에만 분주하다면 이는 하나님
의 은혜를 헛되이 받는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같이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베풀리라’는 중심으로 산다면 은혜의 왕국은 더욱 확장되고 주님은 더
욱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