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과 맨 얼굴_성주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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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과 맨 얼굴 

성주진 교수<합신구약신학>

영국 빅토리아 여왕 시대에 이상한 그림이 유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 그
림에는 커다란 눈이 하나 그려져 있는데, 보통 ‘하나님은 나를 보고 계신
다’는 표제를 달고 있습니다. 

이 그림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옵니다. 어떤 사람이 그림이 
걸려 있는 방에서 며칠 동안 묵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은 그림이 너무 신경
이 쓰인 나머지 그 앞에서는 도저히 옷을 갈아입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큰 눈이 자기의 벗은 몸을 보지 못하도록 그림을 뒤로 돌려놓고서야 옷을 
갈아입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 사람과도 같이 우리는 하나님 앞에 벌거벗은 느낌을 가질 때가 있습니
다. 온갖 죄와 허물이 드러나고, 치사하고 더러운 인격의 부분들이 여지없이 
노출될 때, 우리는 그 사람처럼 ‘하나님, 잠깐만 보지 마십시오’라고 그림을 
돌려놓고 싶은 심정이 됩니다. 그러나 그게 어디 생각같이 되어야 말이지
요. 그렇다고 대책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은 가면을 만들어 냈습
니다. 가면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다른 사람을 만나게 해 주는 편리한 도구입니다. 이 요술 같은 가면은 인류
의 ‘위대한’ 발명품이 아닐까요? 

사실 가면은 인생들에게 숨쉴 공간을 마련해 주는지도 모릅니다. 어떤 사람
은 도덕의 가면 뒤에, 어떤 사람은 권위의 가면 뒤에, 어떤 사람은 아부의 가
면 뒤에, 그리고 어떤 사람은 황금의 가면 뒤에 숨어 자신의 진면목을 감춥니
다. 그리고 자기가 만들어 낸 이미지를 통하여 다른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이러한 가면들은 일견 사람들이 소중히 여기는 프라이버시를 지켜 줍니다.

종교적인 사람들도 하나님 앞에서 가면을 씀으로써 자신의 참 모습을 숨기
고 하나님에게 잘 보이려고 부단한 노력을 기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값
비싼 많은 예물을 종교적 방패로 삼고 그 뒤에 숨어살기를 좋아했습니다. 바
리새인들은 율법적인 공로의 가면을, 도덕적인 사람들은 선행의 가면을 통하
여 거룩하신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대면을 피하려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현재
의 자기 모습으로는 하나님을 만날 
자신이 없다고 느낄 때마다 각종 가면을 
만지작거립니다. 

사실 ‘이 모습 이대로’ 하나님을 대면하기가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요? 루터
는 의로우신 하나님이 두렵기만 했습니다. 그는 죄인을 의롭다고 하시는 은혜
의 하나님을 만난 후에 이렇게 회고하였습니다. ‘아, 나는 하나님을 미워하였
다. 공의의 하나님을 미워하였다.’ 하나님을 미워할 수밖에 없었던 루터의 절
규는 의로우신 하나님을 그대로 대면하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가를 
잘 보여줍니다.

좀 이상한 말 같지만, 사랑의 하나님이라도 대면하기가 쉽지 않은 것 같습
니다. 요나 같은 선지자도 사랑의 하나님을 피해 도망을 쳤으니까요. 요나가 
원한 사랑은 자기가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고 자기가 미워하는 자를 미워하
는, 그런 종류의 사랑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수까지도 사랑하시는 하나
님의 사랑의 깊이와 폭을 감당할 수 없었던 그는 차라리 하나님 앞에서 도망
치는 길을 택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그분의 사랑의 온전성 가운데 만나
는 일은 평생의 과업일 것입니다.

그런데도 아버지 하나님은 자기를 피하는 자녀들, 가지각색
의 가면을 쓴 자
녀들을 뜻밖의 장소에서 만나 주십니다. 정직하게 하나님을 대면하려고 몸부
림치는 성도들은 말할 것이 없고요. 하나님은 십자가 위에서 가면 뒤에 숨은 
큰 죄인을 용서해 주시고, 십자가 밑에서는 가면 벗은 지친 영혼을 만나 주셨
습니다. 

십자가에서 우리는 우리의 존재 자체를 크게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만나게 됩니다. 십자가 그늘 밑에는 가면을 벗어던진 채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르는 감격과 환희가 있습니다. 이렇게 확인된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모
든 것을 숨김없이 내놓게 만듭니다. 이것이 우리가 누리는 교제의 친밀함입니
다. 

나 같은 죄인을 만나시려고 낮은 곳으로 임하시는 하나님의 신비로운 임재
의 방식은 내가 뒤집어 쓴 두꺼운 가면을 쓸모 없게 만드는 은총의 정점입니
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숨은 곳까지 찾아오신 아빠의 사랑을 확인한 아이
처럼, 온갖 가면을 벗어던진 맨 얼굴로 기쁨의 환호성을 마음껏 내지를 수가 
있습니다. ‘아빠가… 나를…. 사랑…. 하신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