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장로교회는 신앙의 표준을 바로 가르치는가? _윤성목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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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장로교회는 신앙의 표준을 바로 가르치는가?

윤성목 목사

교회는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나이다”라고 신앙고백
을 한 백성들의 모임이다. 이 신앙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신다고 예수님은 약
속하셨다. 올바른 신앙고백을 떠나 올바른 교회를 기대할 수 없다. 
17세기 청교도 지도자 리차드 벡스터(Richard Baxter)는 사도시대 이후 교회 
역사상 가장 훌륭한 웨스트민스터 회의와 도르트 회의에 의해 제정된 개혁주
의 교리들을 귀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을 분명히 밝혔다.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 교회 중심이라는 개혁주의 교회(장로교)의 멋들어
진 표지 아래, 우리는 교회를 향한 뿌듯한 자부심을 가지고 신앙 생활을 한
다. 수많은 곳에 들어서 있는 교회에서는 시간마다 말씀이 선포되며, 사람들
은 말씀을 통해 진리로 역사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길 고대한다. 

오늘날 모든 교회(다수의 이단을 포함하여)는 하나님의 말씀 중심이라는 
은혜
로운 용어를 사용하여 사람들을 개교회로 이끌어 들인다. 그리고 ‘우리 교회
야말로 하나님의 말씀중심대로 사는 교회’라는 자부심과 자랑거리를 늘어놓는
다. 그러나 기독교에서 이단이라고 규정하는 집단에서도 그들은 ‘성경을 중심
으로 하여 하나님 말씀 중심의 삶을 살아간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우리는 
그들의 주장을 어찌 생각해야 할까? 우리가 성경 중심을 외침과 그들의 외침
의 근본적 차이는 무엇인가? 혹시 우리는 아무 근거도, 의미도 모른 채 단지 
우리가 정통 교회에 속해 있다는 사실만으로 “우리야말로 진리의 사수자요, 
성경 중심의 신앙관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할 수 있는가? 

오늘의 교회들을 돌아보며, 언제부턴가 잃어버린 개혁주의 교회의 역사적 전
통의 의미와 오늘 우리의 교회가 무엇을 회복해야 할 것인가를 살핌으로써, 
바른 신앙의 전제가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회복되길 소원한다. 

개혁 교회에 대한 역사적 이해 

1517년 독일에서 마틴 루터로부터 종교 개혁이 일어났으며, 그후 스위스에서
는 쯔빙글리가 1519년 1월부터 취리히에서 마태복음 강해를 시작하여 12일간 
r
성경 전체에 대한 강해를 시작하면서 취리히 개혁이 시작되었다. 쯔빙글리가 
1531년 10월에 카톨릭과 대항하다 죽게 되자 그후 불링거와 같은 훌륭한 종
교 개혁자가 이를 계승하여 유럽에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개혁은 계속 
번져갔으며, 이 영향 하에서 존 칼빈이 등장하게 되었다. 그는 성경에서 교회
에 관한 모든 것의 설명을 찾고자 하여 이를 통해 개혁을 추진하였다. 칼빈
은 교회의 여러 가지 규정이나 신앙의 도리를 성경에서 그 근원을 찾으려 하
였고 성경 중심의 철저한 입장에 서게 되었다. 

예를 들어, 칼빈은 개혁 작업을 통해 주관적 신앙고백에 기인한 가사의 찬양
을 배제하려는 노력을 했다. 예배 중에 시편이나 하나님의 구속을 찬양하는 
객관성 있는 내용을 가지고 찬양했던 흔적을 보게되며, 성경 아카데미를 세
워 유명한 개혁 신학자들을 길러 내었고(1559년 창설, 약 300여명 수학), 그
곳에서 칼빈은 주로 성경을 주석 하는 일을 담당하였다. 

결국 칼빈은 개혁 교회라는 특징을 띠고 유럽 전체에 영향을 끼쳤다. 특히, 
독일에서는 루터의 영향을 받고 루터에 의해 루터파가 생겼으나, 개혁파는 칼
빈에 와
서 시작되며 그러므로 개혁 교회라고 할 때에는 현재 우리나라에 있
는 감리교, 성결교 등 다른 교파들 즉, 개신교 아래 있는 교파 모두를 개혁 
교회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또한 개신교라고 말할지라도 개혁주의 교회는 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내용이 없고 껍데기만 있는 교회는 개혁주의 교회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결
국 개혁주의 교회는 칼빈의 개혁을 중심으로 그의 신학과 사상을 계승하는 입
장에 서 있는 교회다. 물론 그 내용은 역사를 통해 더 풍요하게 발전되었으
며 계승되어 왔다. 칼빈의 개혁은 모든 것을 성경에서 근원을 찾으려고 하였
으며 성경의 근원을 두지 않는 것을 철저히 배격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칼
빈주의가 곧 성경 중심의 개혁주의 신학이었음을 알 수 있다. 

신앙고백서에 대한 역사적 이해 

칼빈의 교회와 일치하는 그런 신앙고백서들이 칼빈 이후 계속하여 나타난다. 
그의 제자들이나 칼빈의 사상을 계승해 나가는 사람들이 교회를 세울 때에 전
통의 교리를 중시하였고, 또한 칼빈의 사상과 일치하는 신앙고백서들을 만들
고 그 법에 따라 교회를 이루려고 하였다. 여기서 한가지 기억해 
둘 것은 우
리 개혁주의(장로교) 교회가 신조로 삼는 것이 바로 이같은 신앙고백서라는 
점이다! 우리의 고백하는 신조는 신앙의 전제요, 매우 중요한 것이다. 따라
서 교회가 무엇을 믿고 어떻게 교회를 이루어야 할 것인가 하는 신앙의 도리
를 공적으로 고백하고 선언하는 작업은 매주 중요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의 
신조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성립 배경을 더 자세히 살펴보자. 

1643년 7월부터 영국의 개혁 신앙인들이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모여 그들의 신
앙고백서를 작성하고 그의 후손에게 가르쳐서 계승해야 할 문답서를 만들기
로 하였다. 그때 뛰어난 신학성과 경건성을 겸비한 신학자들은 오직 하나님
의 인도하심과 성경에 의해서만 신앙의 표준을 세우고자 하는 입장에서 고백
서를 작성하였고, 1647년에 결실을 보게 되었다. 이것을 작성한 사람들은 칼
빈의 신학과 그의 교리를 전수하고 그 사상들을 받아서 일궈 놓은 사람들이
다. 그러므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대소요리 문답서에는 개혁 교회가 
가지고 있는 신앙의 내용들이 잘 담겨져 있다. 오늘 우리 장로교 교회는 모
두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나 교리 문답서
를 주의하여 마음을 기울여 공부하
며 연구하며 가르쳐야 한다. 

역사 속에서 신앙고백서의 위치 

칼빈에 의해 종교 개혁이 일어나 칼빈의 사상에 ‘개혁’이라는 이름에 붙여졌
고, 이 개혁주의의 일맥은 칼빈과 칼빈 후의 개혁주의 신앙고백, 즉 17세기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교리문답서 그리고 도르트 신경들을 통해서 계승
되었다. 특별히 장로교에 잘 알려지지 않은 ‘도르트 회의’의 결정에 대한 중
요성과 그 내용을 안다는 것은 개혁주의 장로교 교회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
의 신학적 전제요, 더 이상 양보할 수도 포기할 수도 없는 신앙 고백의 결정
이다. 

도르트 신조는 한 시대에 사변적 신앙으로 그친 것이 아닌, 진리를 왜곡하며 
진리를 변질시키려는 무리에 대한 교리적인 투쟁의 결과로 얻어진 산물이다. 
이는 알미니우스의 신학이 칼빈의 신학에서 떠나 있다는 것을 인식한 고마루
스(Franics Gomarus)가 이의를 제기하면서, “신앙 자체가 예정의 결과이다, 
세계의 기초가 놓이기 이전부터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로 과연 누가 신앙을 가
질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하신 것이다”라고 주장한 것
이다. 결국 이 예정
론 논쟁을 통하여 알미니안 주의의 교리인 항변서(Remonstrant)가 정죄되었
고, 개혁주의 교회에서 구원론의 핵심이 되는 전적 타락(Total depravity), 
무조건적 선택(Unco-nditional election), 제한 속죄(Limited atone-ment), 
불가항력적 은혜(Irresistible grace), 성도의 견인(Perseverance of the 
saints)이라는 일명 튤립(TURIP) 교리가 세워진 배경이 되었다. 

이 도르트 신조는 한 마디로 말해서 ‘인간의 구원은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로 
된다’는 성경적 교리를 분명히 변증한 것이요, ‘구원은 하나님의 주권에 속
한 만큼 어떠한 인간의 조건과 노력으로 구원 얻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
나님에게만 의존한다’는 것을 천명한 것이다. 바로 칼빈의 기독교 강요에 나
타난 예정론의 입장을 다시금 정리케 된 것이고, 이 회의의 결정에 있어서 핵
심 내용들은 이후에 웨스트민스터 회의에서 그대로 이어져 내려오게 된 
다. 

결론적으로 개혁주의 교회의 정신은 교회가 성경에 근거해서 이루어 낸 신앙 
전통의 개혁되어진(Reformed) 신앙고백을 통해, 방향이 설정되고 교회의 행진
의 성격을 검토
하며 계속해서 개혁해 나가는(Reforming) 것이다. 

진정한 개혁주의 교회라 하기 위해서 

교회와 신학은 갑작스레 바뀌어지는 것이 아니다. 역사 속에 나타난 하나님
의 뜻을 드러내고자 하였던 사도신경과 325년의 니케아 신조(예수님의 신성
과 인성에 대한 문제로 아리우스의 도전을 받아 그 주장을 배격하고 삼위일
체 교리를 확립한 신조), 그리고 개혁주의 신앙의 영향을 받아서 계속 보완되
고 만들어진 벨직 신앙고백서,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웨스트민스터 신앙고
백서, 도르트 신조 등에 의해 그 정신과 신학과 신앙이 계승되는 것이다. 오
늘날도 우리 교회가 개혁주의 교회의 입장에 서 있는 교회라고 말한다면 그것
은 위에 열거한 신조와 신앙고백을 전제로 하여 하나님을 아는 지식 위에 서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개혁주의(장로교) 신앙은 어떤 전제와 기준에 서 있는가? 개혁
주의 신앙을 표방하던 우리의 선배들의 신앙과 신학을 저버리고, 아예 ‘개혁
주의를 포기하려는 조짐’이 보이고 있다. 그것은 이 시대의 정신과도 맞물려 
일어나는 반 개혁주의적 이탈 현상이다. 그것은 선교적 차원에서, 
복음주의권
의 영향으로, 많은 교회가 영혼 구원이라는 목표 아래 우리의 고백된 신앙과 
교리의 핵심 문제들을 변질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교회의 개교회주의
적 현상과 교회 부흥과 성장 원리로 오늘의 교회를 세우려는 목회자의 욕망 
때문은 아닐는지…. 이들은 전통적 개혁주의의 풍요로운 신앙고백들을 무시하
고 교회를 움직이려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외형적 성장이 있다 할지라
도,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존경의 대상이 된다 할지라도, 분명 진리
를 변질시킨 그들의 모습은 하나님 앞에서 인간 노력의 교만의 극치일 것이
다. 

하나님이 하시는 그 역사하심 속에 인간의 인본주의적 원리와 방법을 동원하
여 교회를 세우려는 것은, 참된 교회의 모습은 아닐 것이다. 물려받은 풍요로
운 전통의 내용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가르치지 못하고 있지 않는가! 진리
에 대한 바른 이해와, 진리가 왜곡되는 현상 속에 역사적 신앙 고백들을 우리
의 믿음의 고백으로 다시 회복함으로서, 어두워진 이 시대에 진리의 외침이 
우리의 마음속에 잔잔히 일어날 것을 원하는 바이다. 

서로가 자신의 주장을 향해 객관적 진리
라고 외침으로 진리의 기준이 허물어
졌다. ‘하나님의 말씀대로’라는 구호 속에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를 외칠지
라도, 그 의미와 전제는 신비주의요, 경건주의요, 합리주의로 세속화된 신학
과 신앙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분명한 입장은 역사적으로 
검증된 개혁주의 신앙과 신학의 전제가 우리의 신앙 전통에 전수·계승되었
고, 그 교리들을 전제로 하여 신앙의 고백들이 이루어져야 함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이것 역시 오직 하나님의 은총이 우리 가운데 임하심으로, 그 역사
적 신앙을 고백하고 연구하고, 그것을 계승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