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적 편견의 극복 _성주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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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적 편견의 극복

성주진 교수/ 합신 구약신학

편견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은 없는 줄 압니다. 편견은 의식세계 속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어서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이 편견에 따라 생각
하고 판단하며 행동하게 됩니다. 성화의 과정을 밟고 있는 성도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다양한 편견 때문에 성장의 경험과 자유의 누림에 제약을 받는 것
이 사실입니다.

극복하기 힘든 편견중 하나는 지역적 편견입니다. 출신지 하나로 한 사람
의 인격과 능력을 도매금으로 판단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갈릴리 출신이
라는 이유로 배척을 당하는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도 지역적 편견의 피해자들
입니다. 아직도 선거할 때마다 지역적 편견을 부추기고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
다는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입니다.

정치적 편견은 정치적인 해석의 틀을 들이대고 지지하는 정당에 따라 사람
을 판단하게 합니다. 한나라당을 찍은 사람은 무조건 수구적이고, 민주당을 
찍은 이는 무조건 진보적이라고 단정한다면, 이는 정치적 입
장에 대한 편향
적 시각을 인간이해의 기초로 삼는 일입니다. 성도들이 교회 안에서 정치적 
성향의 다양성을 용납하지 못한다면 복음의 보편적 가치가 손상을 입게 될 것
입니다.

나름대로 소중한 개인적 체험이 특정한 성경해석과 결합될 때에도 고치기 
힘든 신앙적 편견이 생길 수 있습니다. 방언운동이 한창일 때, 어떤 사람들
은 방언을 못하는 다른 교인들을 무시하고 방언을 못 하는 교역자의 설교는 
들으려고도 하지 않은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해석과 체험이 상승적으로 결합
되어 생긴 편견이 잘못된 행동으로 나타난 경우입니다.

구속사적 경륜에 대한 이해가 없이 방편을 목적으로 생각하는 경우에도 심
각한 신앙적 편견이 나타납니다. 유대인의 이방인에 대한 율법주의적인 편견
이 대표적입니다. 이 편견은 얼마나 뿌리가 깊은지 사도인 베드로조차도 처음
에는 이방인에 대한 신앙적, 민족적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편견은 방치하면 약화되기보다는 더욱 강화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자기 생각과 맞지 않는 일이 일어나면 ‘이 경우는 예외야’ 하고, 어쩌다가 자
기 생각에 맞는 일이 생기
면 ‘그러면 그렇지’ 하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분명
한 것은 이러한 편견이 극복되지 않으면 믿음과 사랑의 진보가 심각하게 제한
을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편견을 극복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베드로의 편견을 깨
기 위해서 이적을 동원하기까지 하셨으니까요. 그러나 자유케 하는 진리를 소
유한 성도가 여전히 편견에 얽매어 산다면 진리가 아닌 것에 종속되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성도는 편견 가운데 안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편견을 극
복하고 자유케 하는 진리 가운데 살도록 부름받은 존재입니다. 비록 고통이 
따를지라도 말입니다. 

편견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진리를 대면하는 일이 우선적입니다. 편견을 가
진 사람일수록 자기 견해를 확신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오직 진리
의 말씀에 노출될 때에만 자기의 생각이 얼마나 잘못된 것임을 깨달을 수 있
습니다. 믿음의 길로 들어선 나아만(왕하5)도 ‘씻어 깨끗케 하라’는 엘리사
의 말씀에 직면했을 때에야 그가 가진 사회적, 종교적, 민족적 편견이 드러났
습니다. 

다음으로는 믿음의 순종이 필요한 줄 압니다. 나아만은 정
서적으로나 인식
적으로 자기의 편견이 완전히 극복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어렵사리 말씀에 순
종했습니다. 이 때에 하나님은 그를 고쳐 주셨고, 그는 편견에서 자유로워졌
습니다. 선포된 진리에 대한 순종은 편견을 극복하는 좋은 방법입니다.
편견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겸손하게 다른 사람의 충고에 귀를 기울일 필요
가 있습니다. 나아만이 편견 때문에 지체하자 애가 탄 부하들이 상식적인 말
로 권면했습니다. 나아만은 그들의 말을 따랐습니다. 겸손한 경청으로 얻어
진 건전한 균형감각의 회복은 편견의 극복에 도움을 줍니다.

믿음을 가진 후에도 어떤 편견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나아만의 신관이 
그 시대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것도 한 예입니다. 이방인의 구원에 대한 편
견에서 벗어난 베드로도 또다시 이방인 문제로 바울의 책망을 들어야만 했습
니다. 성화의 길을 마칠 때까지 성도는 이렇게 편견과 싸워야 할 것입니다. 
믿음의 행로에 진리에 대한 지속적인 인식의 개혁이 요청되는 이유가 바로 여
기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