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녀석의 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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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녀석의 변심

정창균목사 / 본보 편집위원, 새하늘교회

저의 막둥이 아들이 세 살이었을 때 저는 온가족을 이끌고 유학을 떠났습니
다. 제 아들 녀석은 일곱 살, 여덟 살이 되면서부터, “나도 아빠같은 목사님
이 되겠다”고 서슴 없이 자기 의지를 밝히곤 하였습니다. 제 아버님의 극심
한 반대 가운데서 신학교를 간 저는 “저놈이 목사가 된다면 그것도 감사한 
일이다. 반대하거나, 은근히 말리거나 하지는 않겠다” 하고 혼자 생각하였습
니다. 그러나 아이의 그 말을 하나님께 대한 무슨 서원이라도 되는 것처럼 심
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저 아이가 나중에 마음이 변하면 큰일 날 일
이다 하는 식의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말하는 대로 결국 목사가 되
면 감사한 일이고, 세상 물정을 알아가면서 도중에 마음을 바꾸어 목사가 되
지 않는다 해도 그것도 감사할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너는 배속에 있을 
때부터 주의 종으로 드리기로 할머니가 서원을 하였다. 그러니 너는 어떤 일
이 있어도 목사가 되어야 한다”거나, “너는 어릴 때
부터 목사가 되겠다고 
했으니까 목사가 되지 않으면 큰일 날 수 있다”는 식으로 협박을 하면서 마
음이 변하여 목사되기 싫어하는 아이를 심히 괴롭게 하는 부모들을 가끔씩 보
았기 때문에 저는 제 아들 녀석을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후 저는 공부를 마쳤고, 서울에 있는 교회의 부름을 받고 그 아이가 열살
이 되던 해 여름에 돌아왔습니다. 위의 누나 둘은 당장 돌아올 형편이 못되
어 그해 연말까지 그곳에서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도록 남겨놓고 저희 부부는 
아들 녀석만 데리고 돌아왔습니다. 누나들 없이 혼자 있으면서도 이 녀석은 
한국 생활에 잘 적응하면서 오히려 재미있어 하여서 부모인 저희 부부의 마음
을 안심시켜주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우리 셋이서 비탈 길을 걸어서 집에 
돌아오는데 이 아이가 불쑥 한마디를 던졌습니다. “저 목사 안 될 거예
요!” 한국에 돌아와서 몇달이 지난 그해 늦가을 어느 날 초저녁 이었습니
다. 저희 부부는 느닷없는 녀석의 불만과 투정이 어린 한 마디에 놀란 표정으
로 물었습니다. “왜?” 진지하게 묻는 엄마 아빠에게 아들 녀석은 숨돌릴 틈
도 없이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을 
날렸습니다. “마음대로 가족도 만날 수 없
는 목사를 내가 왜 해요?”

이리저리 물어보며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나름대로 사연이 있었습니다. 
이제 갓 부임해 온 저는 교인들을 익히고, 신속한 교회 적응을 위하여 곧 가
을 대심방을 시작하였습니다. 밤 늦게 집에 들어오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엄마 아빠가 심방으로 매일 밖에 나가 있는 동안 아들 녀석은 거의 매일 집
에 혼자 있어야 했고, 밥은 라면을 끓여먹기가 일쑤였습니다. 한국에 돌아오
기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었습니다. 온 가족이 둘러 앉아 예배드리
고, 대화하고, 산보하고, 가족이 자주 외출도 하고, 캠프도 가고, 음식도 함
께 만들어 먹고하던 그 시절과는 갑자기 판이하게 달라진 가족생활에 이 아이
는 엄청난 충격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아빠가 목사님이기 때문에 그렇게 단란
한 가정생활이 이루어지는 줄 알았다가, 아빠가 목사이기 때문에 언제나 이렇
게 혼자 있어야 된다는 정반대의 현실에 이 아이는 큰 충격을 받은 것이었습
니다. 밖에 나가서 같이 놀 친구가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재미있는 비디
오 테이프를 재미있게 볼 만큼 한국말이 익
숙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렇다
고 아무데나 재미있는 곳 마음대로 찾아다닐 만큼 길이 익숙한 것도 아니었습
니다. 그 후 아들 녀석은 엄마와 단 둘이 있을 때, 눈물을 뚝뚝 떨구며 말을 
했습니다. “엄마, 나도 참을 만큼 참았어요. 이건 너무 하는 것 아니예
요?” 그때 그 아이는 초등학교 3학년 이었습니다. 

그렇게 마음을 바꾼 그 사건 이후 아들 녀석은 중학교 2학년을 끝마친 지금까
지 다시는 “아빠 같은 목사가 되겠다”는 말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중학교
에 들어간 이후, 과학고에 가겠다는 말로 목사가 되겠다는 말을 대신하고 있
습니다. 아이와 다정한 대화를 나눌 여유도 없이 바쁘기만 한 목회가 정말 잘
하는 목회일까요? 자기의 가정을 희생시킬수록 목회에 헌신된 목사라는 옛 생
각은 정말 맞는 것일까요? 내일은 돌아온지 6년만에 처음으로 온가족이 영화
관람과 캠프를 가기로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