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창균 칼럼
우리가 함께 있다는 사실의 감격
사람이 사무치게 그리운 처지에 있어보지 않은 사람은 내 곁에 사람이
있다는 사실의 감격을 알지 못합니다. 내가 다른 사람 곁에 있어 줄 수 있
다는 사실의 은총을 감사할 수도 없습니다. “사람이 사람 없으니 못살겠
습데다.”며 옛날 미국 유학시절에 사람들이 다 떠나버리는 방학 때면 너
무나 사람이 그리워 혼자서 도서관 밖에 나가 왁왁 소리를 질러보곤 했다
던 박윤선 목사님의 생각이납니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사람을 사귀며 사는 것도 보통 감사한 일이 아닌데,
하물며 한 성령을 받아 같은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고, 같은 영원한 나라
에 대한 소망을 갖고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잠시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그
그리스도 때문에 함께 사귀고 한 장소에 모이는 것은 사실 보통 감격스러
운 일이 아닙니다. 기독교가 한창 핍박을 받았을 때, 그리스도인들은 물고
기 표시를 암호로 삼아서 서로 그리스도인인 것을 표시하고, 그것이 확인
되면 얼싸안으며 좋아하고 서로의
만남을 감격스러워 하던 때가 있었습니
다. 그 시절의 그리스도인들은 생명을 내걸지 않고는 서로 만나거나 사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다른 그리스도인과의 사귐을 위해서 기
꺼이 그 생명을 내걸곤 하였습니다. 사실, 지금도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갇히거나, 고립되거나, 따돌림을 받으며 같은 그리스도인들과의 눈에 보이
는 만남과 사귐을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세계 도처에 수없이 많이
있습니다. 지난 해 겨울 중국 땅 어느 골방에서 제가 만났던 강건너(북한)
에서 온 한 그리스도인은 말했습니다. 그곳에서는 믿는 형제들이 다리 위
같은 데서 몇명씩 웅크리고 앉아서 카드놀이를 하는 체 하면서 서로 만나
는데, 그러다가 다른 사람이 오면 카드놀이 하다가 싸우는 것처럼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딴청을 피우고, 그 사람이 지나가면 다시 믿는 자의 교제를
은밀히 나누는 식으로 만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 가운데서 함께 살 수 있다는 것이 결코 당연한
일이 아닙니다. 본회퍼가 말한대로 믿는 무리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
씀과 성례전을 중심으로 보이게 모일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
의 은총입니
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다 이 은총을 누리며 사는 것도 아닙니
다. 그런데도 그 축복을 날마다 누리는 사람은 그것을 예사로 넘겨버리기
가 일쑤입니다. 심지어는 귀찮아 하고, 지겨워하기 까지 합니다. 그러나 그
리스도인이 몸으로 옆에 함께 있다는 것은 신자들에게는 비할 수 없는 기
쁨과 힘의 원천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낯선 두 사람이 만나서 대화하다
가 한쪽이 신자임을 밝히면, “나도 믿어요!”하면서 아주 반가와 하고, 금
방 친해지고, 오랜 친구로 보일 만큼 격의 없이 대화를 주고 받는 모습을
자주 보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같은 신자 정도가 아니라, 같은 교회 회
원인데도 이러한 모습을 보기 힘든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주일마
다, 그리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서로 만나고 사귀는 것이 결코 당연한
일도, 한없이 계속되는 일도 아닙니다. 그것은 다만 큰 은총일 뿐입니다.
본회퍼가 쓴 그리스도인의 서로 사귐에 대한 절절한 글을 읽으면 마음
이 뜨거워집니다. 그는 다른 그리스도인들로부터 단절되어 감옥에 외롭게
갇혀 있다가 히틀러의 교수대에서 사라져간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말했습
니다.“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살 수 있다는 것은 결코 당연한
일이 아닙니다….하나님의 은총입니다.” 사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자
유롭게 눈에 보이는 교제 공동체를 이루며 서로 만나고, 사귄다는 이 사실
은 얼마나 큰 은총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오늘날 얼마나 되는 신자들이 이
은총을 은총으로 알고 살고 있는 것인지, 때로는 두려운 생각이 들기도 합
니다. 우리 주위에 언제라도 서로 얼굴을 대할 수 있는 또 다른 그리스도
인들이 이렇게 있다는 것은 다만 큰 은총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잠시 우리
에게 주어진 한시적 기회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