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창조 <제4장 2항> _김병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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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창조 <제4장 2항>

 

< 김병훈 목사, 화평교회, 합신 조직신학 교수 >

 

 

4장 2항: “하나님께서 다른 모든 피조물들을 만드신 후에 이성적이며 불멸하는 영혼을 가진 사람, 남자와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형상을 따라 이들을 지으셨으며, 지식과 의와 참된 거룩함으로 충만케 하시고, 이들의 심령에 하나님의 법을 기록하셨으며, 이들에게 그것을 성취할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들의 의지의 자유로움에 따라 행하도록 허용이 되었으나, 자유의지는 변화를 받기 마련이므로, 죄를 범할 가능성 아래에 있었습니다. 자신들의 심령 안에 기록된 율법에 덧붙여, 그들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것을 지키는 한, 그들은 하나님과 교제를 하는 가운데 행복하였으며 피조물들을 다스렸습니다.”

 

“하나님 외에 땅에 속한 그 어떤 것일지라도 사람에게 행복 주지 않아”

 

이번 호에서는 본 항이 교훈하는 다섯 가지 사항 가운데 지난 호에서 살펴본 두 가지 사항에 이어 남은 세 가지 사항입니다. 세 번째 내용은 사람은 임의로 사는 자율적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시고 바로 사람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는 명령을 주심으로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 할 규범을 주셨습니다. 신앙고백서는 이처럼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금하신 것에 덧붙여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심령 안에 율법을 기록하여 놓으셨음을 고백합니다. 이것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와 관련한 금지 명령은 사람이 지켜야 하는 규범을 대표적으로 상징함을 뜻합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와 관련하여 일반적으로 갖는 궁금증은 그 나무가 어떠한 나무이며,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라는 이름이 뜻하는 바는 무엇인지, 그리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는 금지 명령을 주신 까닭은 무엇인지 등과 관련한 것들입니다.

 

우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어떤 나무인지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습니다. 성경이 이에 대해 아무런 실마리를 주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사과나무인 듯이 아담과 하와가 유혹을 받는 그린 그림을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에 대한 근거를 아가서 8장 5절 “… 사과나무 아래서 내가 너를 깨웠노라”에서 찾기도 합니다만 이것은 올바른 주석의 결과가 전혀 아닙니다. 흥미롭게도 라틴어로 악 또는 불행을 의미하는 단어나 사과나 실과를 뜻하는 단어가 모두 말룸(malum)이라는 동음이어이기 때문에 이러한 그림이 널리 퍼졌을 것으로 추측이 됩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와 관련하여 유의할 점은 그 이름이 나무 자체가 선악을 구별하는 나무라는 것을 말하는 것도 아니며 혹은 그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그 자체로 선악을 구별하는 능력이 주어진다는 것을 말하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어떤 이는 그 나무의 열매를 먹는 날에 아담과 하와의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신다고 말한 마귀의 말(창 3:5)을 근거로 열매 자체에 이러한 능력이 있다고 말하지만 이는 마귀의 거짓된 미혹을 그대로 진실로 인정하는 잘못된 해석입니다.

 

올바른 해석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라는 이름을 ‘결과적’으로 그리고 ‘성례전적’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결과적’이라는 말은 아담과 하와가 실제로 그 열매를 먹은 후에 순종의 선과 불순종의 악이 어떻게 다른지를 실제로 경험하게 됨으로 인하여 당하게 될 결과, 즉 명령에 불순종함으로 얼마나 많은 선을 잃어버렸으며 얼마나 비참한 처지에 빠지게 되었는지를 알게 될 것임을 미리 말하여 준다는 사실을 반영합니다.

 

‘성례전적’이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이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는 금지명령으로 인하여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선악의 순종과 불순종을 시험하는 상징을 갖는다는 점을 반영합니다. 만일 금지 명령을 지켰더라면 하나님께 온전한 사랑의 순종을 드러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를 지키지 않음으로써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고 자신의 의지를 하나님의 뜻보다 앞세우는 악을 드러내고 말았음을 볼 때, 상징성을 갖는 성례전적 의미를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17세기 개혁주의신학자 튜레틴(Francis Turretin)에 따르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결과적’이며 ‘성례전적’이라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이러한 금지명령을 주신 이유와 관련하여 다름과 같은 교훈들을 이해할 수 있게 합니다.

 

첫째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도록 한 금지 명령은 하나님께서 만물을 다스리시는 분이시며 사람은 그의 주권 아래 순종하며 살아야 하는 존재임을 교훈합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통치를 가리키는 외적인 상징을 두심으로써 불순종이 범한 죄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드러내줍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금지명령은 사람이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으며 이와 관련하여 책임을 져야 하는 존재임을 말합니다.

 

넷째로 비록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가 실제로 먹음직하고 보암직도 하고 탐스럽기도 하더라도 그것처럼 땅에 속한 것이 사람에게 행복을 주는 것이 아님을 교훈합니다.

 

끝으로 다섯째로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는 일이 최고의 행복임을 알고 다른 모든 일에 앞서 하나님을 섬기기에 힘을 다하여야 할 것임을 교훈합니다.

 

이러한 교훈들은 바로 신앙고백의 본 항목에서 교훈하는 네 번째 내용을 확인하여 줍니다. 곧 사람이 하나님과 교제를 하며 피조물을 다스리는 행복을 누리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법과 명령을 지킬 때에라야 이루어지는 일이라는 사실입니다.

 

아담과 하와에게 주어진 에덴동산은 육체의 삶에 최고의 평안을 주는 곳이며, 지극히 기쁜 즐거움으로 가득 찬 곳이며, 번민과 고통은 존재하지 않는 곳입니다. 어떤 죄책도 없으며, 수치스러운 어떤 것, 두려워 할 어떤 것도 없으며, 어떤 분노나 영혼을 괴롭힐 어떤 것도 없는 곳입니다. 그러하기에 하나님께서 최초에 아담과 하와에게 주신 에덴동산은 지상의 낙원이었습니다.

 

그러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와 관련한 금지 명령과 관련한 교훈을 통해서 신앙고백서는 아담과 하와가 누리는 참된 행복이 이러한 외적인 환경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에 순종하는 데에 있음을 고백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