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 예정의 목적과 방식<제3장 7항>
< 김병훈 목사, 화평교회, 합신 조직신학 교수 >
3장 7항: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기뻐하시는 대로 긍휼을 베풀기도 하시고 거두기도 하시는 자신의 의지의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경륜에 따라서, 자신의 피조물에 대한 자신의 주권의 영광을 위하여 인류 가운데 나머지 사람들을 간과하고, 그들의 죄로 인하여 그들로 하여금 수치와 진노를 받도록 기쁘게 작정하시므로 그의 영광스러운 공의를 찬미하도록 하셨습니다.”
“선이란 원하시는 바를 행하실 수 있는 전능하신 주권자가 행하시는 모든 것”
제7항에서 교훈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류 가운데 일부를 선택하여 그의 영광스러운 은혜를 찬미하도록 하신 것처럼, 나머지 인류를 선택에서 간과하시고 또한 죄로 인해 영원토록 심판을 받도록 하심으로써 그의 영광스러운 공의를 찬미하도록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유기 예정의 목적과 방식을 교훈합니다.
인류 가운데 일부를 선택한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선택하지 않은 대상이 남기 마련입니다. 그 대상을 향한 하나님의 작정을 가리켜 선택과 반대가 되는 유기라고 말합니다. 유기의 예정은 하나님께서 영원하며, 불변하는, 가장 자유로운 목적에 따라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공의와 자유와 권능을 나타내 보이시기 위하여, 죄 가운데 남겨진 자들을 영원토록 저주하시기로 작정하신 것을 뜻합니다. 신앙고백서는 유기의 목적에 대해서 자신의 주권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함이라 말하며, 또한 그의 영광스러운 공의를 찬미하도록 하는 데에 있음을 고백합니다.
이러한 유기 예정의 목적은 유기 예정의 방식과 관련하여 두 가지를 교훈합니다. 하나는 유기의 소극적 측면으로 간과하시는(preteritio) 방식이며, 다른 하나는 유기의 적극적 측면으로 미리 정죄하시는 선(先)정죄(predamnatio) 방식입니다. 신앙고백서는 이 두 가지 방식들에 대해서 “인류 가운데 나머지 사람들을 간과하고, 그들의 죄로 인하여 그들로 하여금 수치와 진노를 받도록 기쁘게 작정하시므로”라고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소극적 방식으로 간과하신다는 고백이 의미하는 바는 두 가지 내용을 갖습니다. 첫째로 선택의 예정을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긍휼을 베풀지 않으시며 또한 구원의 은혜를 베풀지 않으심을 뜻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일반적인 섭리에 의하여 이들에게 하나님의 호의를 베푸는 것조차 거두시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의인과 악인에게도 해와 비를 차별없이 나누어 주시며, 또한 도덕적 또는 시민적 선을 행하도록 호의를 베풀어주십니다.
둘째로 유기 예정된 자들을 부패한 죄인의 비참한 상태에 그대로 내버려두심을 뜻합니다. 그리하여 이들은 선택의 예정을 받은 자들과는 달리, 구원의 방편을 따라 행하지를 않고 자신의 부패한 성품에 따라 죄를 범하기를 기뻐하며 죄로 인한 비참한 상태의 삶을 살게 됩니다. 즉 이들은 회개의 부르심에 응하지 않으며, 그리스도의 속죄의 은혜를 믿고 의지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거룩한 법도에 따라 살아가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이처럼 유기된 자들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죄를 범하며 살다가 마침내 죽어서 영원한 정죄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여기서 유의할 점은 유기된 자들이 죄를 범하는 까닭을 그들이 유기된 자로 예정이 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해서는 옳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이들이 죄를 범하는 까닭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구원의 은혜를 주시지 않으시고, 그들을 부패한 죄인의 비참한 상태에 내버려 두었다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죄를 범하는 것은 그들 자신의 부패한 성품을 좇아 자유의지에 따라 스스로 자원하여 행한 결과일 뿐입니다.
따라서 죄의 책임을 하나님께 돌릴 수가 없으며, 또한 영원한 정죄의 심판을 하나님의 탓으로 돌려서도 안 됩니다. 이것은 마치 병자의 질병을 고치지 않은 의사에게 질병의 자체의 원인을 돌릴 수가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범하도록 이들에게 어떤 사악함을 주입하거나 부추기시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그들에게 부패한 성품을 거슬려 죄악을 범하지 않을 수 있게 하는 구원의 생명력을 주시지 않으셨을 뿐입니다. 유기된 자들로 하여금 죄를 범하도록 하려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지 않으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기억해 두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하나님께서 구원의 은혜를 주시지 않으신 것과 관련하여 결국 유기된 자들의 죄의 원인은 하나님께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감히 비난의 말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구원의 은혜를 모든 사람들에게 주셔야만 하는 의무를 지신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의 은혜를 어떤 이들에게 베풀지 않으신 것은 결코 불의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의 비난은 결코 성립이 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주장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올바른 고려를 전혀 하고 있지를 못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20장의 포도원 품꾼의 비유를 통해 교훈을 주셨습니다. 그 비유 가운데 주인은 나중에 온 자들에게도 하루 품삯을 줍니다. 이에 대해 일찍 와서 일한 자들이 불평을 하자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마 20:13-15).
하나님께서는 무엇이든지 자신이 원하시는 바를 행하실 수 있는 전능하신 주권자이십니다. 그리고 그가 행하시는 바는 바로 선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