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 주권과 지식과 거룩과 영광(제2장 2항)
< 김병훈 목사, 화평교회, 합신 조직신학 교수 >
“하나님의 절대주권은 구원 받을 자를 선택하는 ‘예정’에서 드러나”
제2장 2항에서 신앙고백서가 고백하는 하나님과 관련한 명제들 가운데 이번에 살필 것은 이러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것들에 의하여, 그것들을 위하여, 그것들에게로 행하시는 최고의 주권적인 권세를 그것들에게 대하여 가지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눈 앞에서 만물은 드러나며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지식은 무한하며, 무오하고, 피조물에게 의존하지 않으며, 하나님에게는 그 어떤 것도 우연적이거나 불확실한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모든 계획들과 그의 모든 일들과 그의 모든 명령들에 있어서 지극히 거룩하십니다. 하나님은 천사들과 사람들과 다른 모든 피조물에게서 예배와 섬김과 복종 등 무엇이든지 받기에 합당하시며, 그것들에게 요구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이 명제에서 고백하는 중심 주제는 하나님의 주권성과 지식과 거룩과 영광입니다.
본 항목은 먼저 하나님의 주권을 더할 수 없이 분명하게 선언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스스로 기뻐하시는 뜻대로 무엇이든지 행하실 수 있는 권세를 가지고 계십니다. 이 고백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 가운데 가장 으뜸가는 것입니다. 만일 어떤 이가 하나님을 인정하고 예배한다고 말하면서도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대한 고백을 부인한다면 그는 적어도 성경에 따른 기독교 하나님을 믿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성경의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며 만드신 만물을 그의 뜻대로 다스리시는 절대적 주권을 가지신 유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어떤 다른 모든 존재들이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다만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향하여 절대적인 주권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신앙고백은 이 주권에 대하여 ‘최고’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그 절대성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고백한다는 것은 피조물에게 있어서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요? 이 질문에 대해 가장 적절한 답이 욥의 입술을 통해 나옵니다. “하나님이 빼앗으시면 누가 막을 수 있으며 무엇을 하시나이까 하고 누가 물을 수 있으랴”(욥 9:12). 욥은 여기서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뜻을 저항할 수 없는 피조물에게 행하시는 하나님의 전횡을 지적하며 이에 대한 사람의 무력감을 한탄하는 것이 아닙니다.
욥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할 뿐만 아니라 그러한 주권의 절대적 의로움을 또한 의심치 않습니다. “…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을지니이다(욥 1:21; 참조, 단 4:25). 욥이 말한 바대로 하나님의 절대 주권은 마땅히 찬송을 받기에 합당하실 뿐입니다.
여기서 유의하여야 할 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절대 주권을 가지신 분으로 만물을 그의 기쁘신 뜻을 따라 창조하시며 섭리하시는 분이시지만 결코 전횡적으로 악을 행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물론 엘리후가 나중에 욥을 향하여 말한 바와 같이 하나님은 사람에게 대하여 일일이 하신 일에 대해 설명이나 이해를 구하셔야 하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말에 대답하지 않으신다 하여 어찌 하나님과 논쟁하겠느냐”(욥 33:13). 하지만 오직 자신이 기뻐하시는 뜻에 따라 행사를 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은 또한 하나님의 완전한 성품에 일치하기 때문에, 결코 하나님의 지혜와 선하심과 거룩함에 어긋나는 법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관련한 이러한 특성은 구원을 받을 자를 선택하시고 그렇지 못한 자를 유기하시는 하나님의 ‘예정’에서 잘 드러납니다. 아담의 타락 이후로 사람들 모두가 예외없이 영원한 진노 아래에 있는 죄인들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가운데서 어떤 이들에게는 영생의 구원을 주시고, 다른 어떤 이들에게는 멸망의 형벌을 내리시는 절대 주권에 따른 예정을 하셨습니다.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롬 9:13).
하나님께서는 그의 절대적인 주권에 따라서 모세에게 이르신 바와 같이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십니다(롬 9:15). 이러한 하나님의 선택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에 의한 것이지만, 하나님의 선택은 두 가지 점에서 결코 불의한 주권적 전횡이 아닙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죄인들 가운데 구원에 이를 자를 선택하실 때, 하나님은 심판자로서가 아니라, 마치 토기를 자신의 뜻에 따라서 귀히 쓸 그릇이나 천히 쓸 그릇으로 만들 권한을 가진 토기장이(롬 9:21)와 같이, 만물을 자신의 뜻대로 목적에 따라 정하여 만드실 권한을 가진 만유의 주재로서 예정의 선택을 하시기 때문입니다. 토기장이가 불의하지 않듯이, 하나님도 또한 불의하지 않은 것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어떤 죄인들을 선택하여 그들을 의롭다하실 때와 관련한 것으로, 하나님께서는 선택한 죄인들을 의롭다하실 때 그리스도의 대리속죄 형벌을 전제로 하시기 때문에 결코 그의 선택을 실행하심에 있어서 불의하지 않으십니다. 또한 선택을 받지 못한 죄인들을 벌하실 때 하나님은 오직 그들이 범한 죄로 말미암은 형벌을 내리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불의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주권은 절대적이며, 또한 항상 거룩하며 의롭습니다.
하나님에게 최고의 절대 주권이 있음을 천명한 신앙고백서는 이어서 하나님의 지식의 절대성을 고백합니다. 우선 하나님의 눈을 속이거나 눈에서 벗어나는 일은 있을 수 없음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지식은 무한하며 완전하기 때문입니다.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히 4:13).
아울러 하나님의 지식은 무한하며 완전하므로 또한 오류가 없습니다. 불완전하며 유한한 정보로 인하여 나타나는 것과 같은 지식의 오류란 하나님에게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렇듯이 하나님의 지식이 무한하며 완전하고, 그렇기 때문에 또한 오류가 없다는 사실은 장차 만물을 벌거벗은 것처럼 다 드러내시며 결산을 받으실 때, 만물에 향한 하나님의 심판이 항상 의롭다는 사실을 또한 말해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