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제2장 1항>_김병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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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제2장 1항>

 

 

< 김병훈 목사, 화평교회, 합신 조직신학 교수 >

 

 

“하나님께서 자신의 공의에 따라 행하시는 것은 마땅한 일”

 

제2장 1항에서 신앙고백서가 고백하는 하나님과 관련한 명제들 가운데 이번에 살필 것은 이러합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은 심판하실 때에 가장 공의로우시며 지극히 두려운 분이시고, 모든 죄를 미워하시며 죄를 범한 자를 결단코 벌하지 않은 채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이 명제에서 고백하는 중심 주제는 하나님의 공의로우심과 그의 심판입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하나님은 그 분 자체로 지극히 선하십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에서 하나님의 사랑, 은혜, 긍휼 등과 같은 여러 특성들이 비롯됩니다. 오늘 살피는 신앙고백서는 지극히 선하신 하나님이 또한 죄를 반드시 벌하시는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심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정녕 선하시며 은혜로우십니다. 그러나 만일 하나님은 은혜로우시기 때문에 죄에 대하여 심판을 행하지 않으신다고 생각을 한다면 그것은 은혜의 의미를 완전히 왜곡하는 것이 됩니다. 죄에 대한 심판이 없이는 결코 은혜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에게는 모순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그의 공의를 결코 부정하지를 않으며, 오히려 더욱 더 견고케 합니다.

 

은혜를 베푸심에 있어서 하나님의 공의는 조금도 손상을 입지 않습니다. 공의로운 하나님이 죄를 벌하시는 것은 필연적인 일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바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통해 확인이 됩니다. 왜냐하면 십자가 사건은 그리스도의 죽음이 곧 선택을 받은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요구되는 공의의 심판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은혜를 베풀기 위하여 공의를 세우신 것이 십자가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자들에게 은혜를 베풀기 위하여 공의에 따라 죗값을 자신의 아들에게 철저히 요구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죗값에 대한 만족이 없이도 죄를 사하시며 용서를 하실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은혜의 의미를 완전히 왜곡하는 것이 됩니다.

 

하나님의 의는 절대적인 측면에서는 하나님의 본성의 완전성을 반영하며, 상대적인 측면에서는 하나님의 뜻의 실현의 성격을 반영합니다. 절대적 측면에서의 하나님의 의란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품의 완전성을 올바르게 드러내심으로써 나타나는 의로우심을 말합니다. 반면에 상대적 측면에서의 의란 바로 피조물을 향한 하나님의 의를 말합니다. 이것은 절대적 측면에서의 하나님의 의에 기초합니다. 신앙고백서에서 언급하는 하나님의 공의와 심판은 바로 상대적 측면과 관련한 고백입니다.

 

하나님의 심판과 관련하여 신앙고백서는 모든 피조물을 자신의 뜻대로 다스리시는 통치적 권세를 가진 하나님을 고백하면서 이에 근거하여 특별히 죄에 대하여 징계를 행하시거나 심판을 행하시는 하나님의 형벌의 의(iustitia vindicatrix)를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미워하시며 죄를 범하는 자를 결단코 벌하지 않은 채 내버려 두지 않으신다는 사실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교훈을 합니다. 하나님은 결코 “악을 기뻐하는 신이 아니시며 악은 주와 함께 유하지 못합니다”(시 5:4). 이처럼 죄악을 미워하시는 하나님께서는 필연적으로 죄악에 대해서 형벌을 내리십니다.

“…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나 형벌 받을 자는 결단코 면죄하지 않고 아비의 악을 자여손 삼 사대까지 보응하리라”(출 34:7). 또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리라”(롬 2:5-6).

 

하나님은 거룩하신 성품에 따라서 죄를 미워하시며 또한 그의 공의에 따라서 필연적으로 벌을 내리시는 분이시므로 성경은 하나님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심을 교훈합니다. “…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공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창 18:25b). “… 내가 사람의 말하는 대로 말하노니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시냐 결코 그렇지 아니하니라 만일 그러하면 하나님께서 어찌 세상을 심판하시리요”(롬 3:5b-6). 그리고 “너희로 환난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환난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살후 1:6,7a).

 

이처럼 하나님께서 죄를 범한 자를 반드시 심판하신다는 교훈은 다른 몇 가지 사실들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각각의 사람의 양심이나(롬 2:14-15) 또는 율법에 담긴 도덕적 명령과 제사법 등이 그러합니다. 그 가운데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가장 분명하게 이 사실을 밝혀줍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벌을 내리시든지 그렇지 않든지 자신의 공의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어 그토록 잔인한 죽음을 당하도록 하신 까닭을 이해할 수가 없게 됩니다. 만일 그리스도의 죽음이 죄를 벌하시는 공의 때문이 아니라면 그리스도의 죽음은 오직 하나님께서 단지 그것을 원하셨기 때문이라는 것밖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죄인의 죽음조차도 기뻐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어찌 악인이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겔 18:23). 악인의 죽음이라도 기뻐하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죄가 없으시며 지극히 의로우신 그의 아들의 죽음을 기뻐하실 리가 없습니다.

 

그리스도는 단지 하나님께서 그의 죽음을 원하셨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의 공의를 이루시기 위하여 죽으신 것입니다. 그 공의가 바로 그리스도로 하여금 택자들을 위한 대리적 형벌의 죽음을 담당하실 것을 요구한 것입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롬 3:25a).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히 9:28).

 

어떤 이들은 혹 이렇게 이의를 제기하기도 합니다. 설령 하나님께서 죄를 벌하지 않으신다고 해서 하나님께 무슨 해가 되겠는가? 이러한 의문은 하나님의 공의의 속성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여 제기되는 것입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제정하시고 의와 선을 이루도록 명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죄를 벌하지 않으신다면, 모든 피조물을 의로 다스리시는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부인하시는 것이며 모든 피조물을 향한 통치적 권위와 부조화를 낳게 됩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공의를 베푸시는 것은 긍휼을 베푸시는 것과 실행의 방식이 다르다는 사실을 기억해 두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느 누구에게도 긍휼을 베풀어야할 의무를 지니고 계시지 않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풀지 않으신다고 하여 그 누구에게도 해가 되지를 않습니다.

 

긍휼을 베푸시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자유로운 뜻에 따라 행해집니다. 그러나 공의의 행사는 하나님께서 완전히 자유롭게 행하시는 것이면서도 또한 필연적으로 행하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각각의 사람이 행한 대로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도에 따라 보응하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스스로 정하신 법도를 보호하시는 것이며 자신의 공의에 따라 행하시는 마땅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에 속한 모든 성도는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고백할 때마다 죄를 벌하시는 하나님의 두려운 심판을 생각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 심판에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베푸신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은혜를 깊이 감사하여야 하겠습니다.

 

또한 죄에 대해서는 죽은 자요 의에 대해서는 산 자로서 죄를 가벼이 여기지 않고 그리스도를 본받아 살도록 성령님의 도우심을 더욱 더 의지하여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