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신론(理神論)적 사고에 대한 경계_이윤호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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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론(理神論)적 사고에 대한 경계

< 이윤호 장로, 선교비평 발행인 >

“하나님의 은혜가 차지해야 할 자리 점점 사라지고 있어” 

125문> 넷째 간구는 무엇입니까?

답>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로 이러한 간구입니다. “우
리의 몸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내려주시며, 그리하여 오직 주님이 모든 좋
은 것의 근원임을 깨닫게 하시고, 주님의 복 주심이 없이는 우리의 염려나 
노력, 심지어 주님의 선물들조차도 우리에게 아무 유익이 되지 못함을 알게 
하옵소서. 그러므로 우리로 하여금 어떤 피조물도 의지하지 않고 오직 주님
만 신뢰하게 하옵소서.”

흔히들 근대사회를 ‘이성의 사회’라 부릅니다. 모든 지식을 이성이라는 잣대
로 재검증하려는 욕구가 표출된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성적으로 납득
할 수 없는 내용이 있다면 그것이 아무리 보편화된 지식이라 하더라도 실제
적 사실로 받아들이기를 거
부하면서 말입니다. 

이성을 앞세우는 풍조 만연해

그렇다고 해서 중세사회에서는 이성이 완전히 짓밟혔다는 말은 아닙니다. 오
히려 로마가톨릭 신학은 사람의 이성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교회
를 지탱하는 많은 신학적 문제들을 건전한 이성을 통해서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이성적 논
리로 증명하려 했으며, 성찬의 신비를 철학적 논리로 설명하려 했던 것입니
다.

그러므로 근대사회를 ‘이성의 사회’라 부를 때는 이성을 의존하는 정도가 
그 이전과 비교해서 훨씬 커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중세 로마가톨릭 신학
에서 하나님의 계시와 사람의 이성 사이의 합리적 조화를 꾀했다면, 근대의 
이성주의에서는 사람의 이성이 하나님의 계시를 점점 대체해 나갔던 것입니
다. 

이러한 풍토 가운데 ‘이신론(理神論)’이라는 사상이 등장했습니다. 단어 자
체의 의미에서 드러나듯이 이것은 이성을 통해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얻으
려는 종교적 사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신론은 참으로 그럴듯한 이론입니다. 자칫 이러한 
생각이 매우 신앙적인 
것으로 비쳐질 수도 있습니다. 이신론자(理神論者)들은 우선 천지창조가 하
나님의 위대한 역사임을 칭송합니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우주의 ‘자연 질
서’에 대해서 주목합니다. 

자연의 질서란 다름 아닌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후 피조세계를 유
지하기 위해 섬세하게 만들어놓은 수단이라는 사실에 역점을 두었습니다. 이
러한 평범한 생각으로부터 그들은 전혀 어긋난 결론에 도달하고 말았습니
다. 즉, 천지와 질서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그 후 진행되는 역사 속에 섭
리하실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의 질서만으로도 세상
은 자체적 지속과 발전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신론의 팽배는 사람들의 가치관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특히 하
나님과 그의 피조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에 있어서 그러했습니다. 기본적으로 
자연 질서라는 것은 사람의 이성적 관찰과 탐구에 의해서 발견되고 인식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미세한 자연의 질서가 하나님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라면 그것들을 알아감으로써 하나님에 대한 지식도 하나하나 쌓아갈 수 있다
고 여겼던 것입
니다. 

자연적으로 사람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계시인 성경말씀을 제처 두고 이성의 
적절한 활용에 의해서 하나님과 세상을 알아가려는 태도를 가지게 된 것입니
다. 급기야 하나님의 섭리보다는 오히려 사람들이 발견해 놓은 자연적 질서
에 더 민감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어쩌면 현대를 살아가는 성도들도 이신론적 사고에 흠뻑 젖어 있는지 모릅니
다. 자연적 질서를 그저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하나님의 섭리를 사실적으로 
인식하지 못한다면 말입니다. 예컨대 생로병사(生老病死)는 자연적인 현상이
며, 그 현상을 잘 인지한 의학(醫學)에 따라 그것이 좌지우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일용할 양식을 얻는 것은 지극히 자연적 현상이며 그것
을 성실하게 활용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우리에게 공급된다고 생각합니다. 그
러는 사이 우리를 눈동자처럼 돌보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차지해야 할 자리
가 점점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이신론적 경향은 단지 자연현상뿐 아니라 사회적 통념에도 손길을 뻗
쳤습니다. 합리적 통념이 교회에까지 들어와 우리의 사고를 지배하기 시작
한 것입니다. 예컨대 조직을 제대로 정비
하여 체계화 하면 교회가 굳건하게 
되어 어떠한 시련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이성적 판단이 만연합니다. 
교회를 굳건케 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사역을 헤아리지 못한 채 말입니다. 

그 결과 교회의 긍정적인 모습을 세상에 많이 드러내고 그들의 필요를 채워
주면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칭송할 것은 당연지사(當然之事)라는 
이성적 판단이 만연합니다.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성령 하나님의 
사역을 간과한 채 말입니다. 

요리문답은 오늘 우리에게 이신론적 사고에서 속히 벗어날 것을 요구하고 있
습니다. 우리가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은 우리가 손수 일구어낸 양식이 아닌 
하나님의 따뜻한 손길에 의한 것임을 자각하도록 합니다. 

우리 교회가 한 걸음 한 걸음 진보하는 것은 우리가 고안해낸 아이디어와 거
기에 쏟아 부었던 노력이 아닌 하나님의 왕적 통치에 의한 것임을 인식하도
록 합니다. 

하나님의 왕적 통치 인정해야

우리가 교회를 개혁할 수 있다면 그것은 우리 자신의 치밀한 계산과 전투의
지를 가짐으로써가 아닌 하나님의 지혜를 간구함으로써 가능하다는 것을 고

백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