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델베르크<52>
신중해야 할 교회의 권징과 해벌
이윤호 장로_‘선교와 비평’ 발행인
“시대적 용기 가져야 할 권징시행 주체들”
85문> 교회의 권징을 통해서 어떻게 천국이 닫히고 열립니까?
답> 그리스도의 명령에 따라, 그리스도인의 이름을 가진 자가 교리나 생활에
서 그리스도인답지 않을 경우, 먼저 형제로서 거듭 권고할 것입니다. 그렇지
만 자신의 오류나 악행에서 돌이키기를 거부한다면, 그 사실을 교회 곧 치리
회에 보고해야 합니다.
그들이 교회의 권고를 듣고도 돌이키지 않으면 성례에 참여함을 금하여 성도
의 사귐 밖에 두어야 하며, 하나님께서도 친히 그들을 그리스도의 나라에서
제외시킬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참으로 돌이키기를 약속하고 증명한다면
그들을 그리스도의 지체와 교회의 회원으로 다시 받아들입니다.
한부선(Bruce F. Hunt) 선교사는 우리에게 그리 잘 알려진 인물이 아닙니
다. 그의 한국교회에 대한 사랑이나 은퇴하는 순간까지 지속되는
일관된 선
교사역을 생각해 볼 때 오늘날 그의 이름이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것이 의외
입니다. 어떤 이유에서건 그는 합당한 역사적 평가를 받지 못한 것이 사실입
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교회의 권징과 적지 않은 연관이 있습니다.
잊혀진 인물, 한부선 선교사
일본이 한국교회에 영향을 미치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보겠습니다. 1938년
은 신사참배와 관련하여 일본당국과 한국교회의 희비가 엇갈리던 해였습니
다. 바로 이 해에 조선장로교 총회는 신사참배에 참여하기로 결정했기 때문
입니다. 교회에 대한 일본당국의 압력이 행사된 총회였습니다.
회의가 열리기 전에 이미 참석자들에게 회유와 압력을 가하던 일본경찰들은
회의가 열리는 동안 내내 그 진행 과정을 감시하고 있었습니다. 삼엄한 분위
기 속에서 신사참배를 허용하자는 동의안이 나왔습니다. 일본경찰들을 의식
한 듯 의장은 후속절차를 생략한 채 그 동의안을 가결시켰습니다. 어떤 이
는 안도감을, 또 어떤 이는 침통함을 느꼈을 것입니다.
결정의 부당성을 인식하더라도 무거운 마음을 억누르고 있을 수밖에 없는 상
황이었습니다. 그 때 “회장 규칙이요!”라는
외침이 있었습니다. 부당한 결
정에 대한 공적인 이의제기였습니다. 일본경찰은 곧바로 그를 붙잡아 회의
장 밖으로 끌고 나갔습니다. 그 외침의 주인공은 바로 미국정통장로교회
(OPC)가 이 땅에 보낸 선교사 ‘한부선’이었습니다.
당시 한부선 선교사는 만주에서 한국인들에게 복음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비록 장로교총회에서 신사참배에 참여할 것을 결정했지만 그는 권위에 복종
할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명백한 우상숭배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신사참배
를 반대하며 현세의 고난 가운데 그리스도인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성도
들에게 가르쳤습니다.
그와 함께 하던 신앙의 형제들이 작성한 ‘장로교인 언약’에서 배교의 시대
에 교회가 지녀야 할 사명에 대한 그들의 고백을 엿보기도 합니다. 이러한
한부선 선교사에 대한 노회의 반응은 제명이었습니다. 제명의 이유는 총회
가 신사참배를 거행하기로 결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불복할 뿐 아니라 그
것의 이단성을 교회에서 가르쳤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 일본경찰이 본국으로 철수하고 교회가 국가의 압제에서 벗어났을 때
교회는 심한 몸살을 앓게 되었습니다. 신사참배로
인해 고난을 당한 성도들
과 그것을 주도한 사람들 사이에 역사를 보는 시각이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
입니다. 그렇지만 대다수 성도들은 신사참배의 이단성을 인정하고 지난날의
잘못을 회개하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목회자들이 반성의 시간을 가졌으며 앞으로 그와 같은 배교적 행위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다짐하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장로교회는 반드시 해결
해야 할 문제가 있었습니다. 신사참배 거부를 이유로 제명된 성도들에 대한
적절한 절차가 그것입니다. 한부선 선교사와 같은 경우입니다.
교회는 신사참배가 우상숭배였음을 인식하고 있었으므로 한부선과 같은 이들
이 다시 교회와 연합하는 공적선언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결국 교회는 한부
선 선교사에게 ‘해벌’을 선언함으로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제명’ 상태로부터 ‘해벌’되었으니 이제 한부선은 교회와 협력하여 선교
사로서의 직무를 감당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보
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심각한 모순을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해벌’이라
는 법 절차가 가지고 있는 의미 때문입니다.
‘해벌’은 당사자의 행위가 실제로 범
죄행위였음을 기정사실화한 상태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럴 경우 ‘신사참배를 거부한 것은 분명한 죄이지만,
그동안 충분히 반성하고 죄로부터 돌이켰음을 인정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
었습니다.
해벌 조치가 아니라 그에 대한 제명 자체의 무효화를 이야기하는 성도들이
있었지만 총회는 처음의 ‘해벌’을 확인하는 것으로 이 문제를 종결하였습
니다. 이로써 한국교회는 교회가 파송하는 선교사들에게 한부선과 같은 정신
을 전달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교회의 권징은 단순히 교회의 질서를 유지하는 방편이 아니라 천국의 문을
열고 닫는 열쇠와도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의 선포, 성례와 더불어
권징은 참 교회의 표지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권징의 유무(有無)
자체가 표지일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권징을 시행하는 주체가 합당한 성경
해석과 시대적 용기를 가지지 않는다면 권징이 오히려 교회를 혼란하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권징은 참 교회의 표지
오늘 우리 교회는 권징을 성실히 이행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과거와 같은 일이 되풀이되거나 그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가 이루어지
지 않
는 한 올바른 권징을 기대하기 힘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