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델베르크<46>
성찬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이윤호 장로_‘선교와 비평’ 발행인
“실제로 주님의 몸과 피에 참여하는 삶 살아야”
75문>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이루신 단번의 제사와 그의 모든 공효에
당신이 참여함을 성찬에서 어떻게 깨닫고 확신합니까?
답> 그리스도께서는 나와 모든 성도에게 그를 기념하여 이 뗀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시라고 명령하시고 또한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첫째, 주님의 떡이 나를 위해 떼어지고 잔이 나에게 분배되는 것을 내 눈으
로 보는 것처럼 확실히, 그의 몸은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드려지고 찢기셨으
며 그의 피도 나를 위해 쏟으셨습니다.
둘째, 그리스도의 살과 피의 확실한 표로서 주님의 떡과 잔을 내가 목사의
손에서 받아 입으로 맛보는 것처럼 확실히, 주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
의 몸과 흘리신 피로써 나의 영혼을 친히 영생에 이르도록 먹이시고 마시우
실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
이 로마제국 치하의 교회는 큰 핍박 아래 있었습니다.
기원년 무렵 로마에서는 오랫동안 유지해 오던 공화체제가 붕괴되고 혼란한
시기를 지나 황제가 제국을 지배하는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교회가 태동해
서 자라나기 시작한 것 역시 이 무렵이었습니다. 로마의 황제는 신(神)으로
여겨졌습니다.
핍박 아래 있었던 초기성도들
수백 년 간 공화체제에 익숙해 있던 로마사회에 황제의 권위를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황제를 신격화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었는지 모릅니다. 혹은 혼란
을 제대로 수습하여 국가의 체제를 더욱 견실하게 만든 지도자를 로마 시민
스스로가 신으로 받들었는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이제 로마제국의 모든 사람
들은 황제를 신으로 섬겨야 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제1계명을 어긴다는 이유로 황제숭배를 거부했습니다. 로마당
국은 국가의 권위에 순응하지 않는 기독교인들을 억압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처럼 로마시대의 교회가 당한 핍박은 황제숭배 거부와 이에 대한 제국의 대
응으로 이루어진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박해의 원인을 한마디로 단언하는 것은 무리일 것 같습니다. 그 밖
의 박해
원인들이 다양한 방면에서 발견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중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민간에서 일어난 반기독교 감정입니다. 유명한 역사가 유
세비우스와 같은 사람들도 생생하게 기록했듯이 기독교인들이 공중목욕탕과
시장과 거리에서 쫓겨나고, 매를 맞고 모욕을 당했으며, 약탈을 당하고 돌
에 맞는 일들도 빈번히 일어났습니다.
일반 시민들이 가지고 있던 반기독교 정서는 당시에 떠돌던 유언비어를 통해
서 잘 알 수 있습니다. 그 중 가장 널리 퍼진 것들 중 하나는 기독교인들이
사람의 몸을 나누어 먹고 피를 마시는 야만적 의식을 행한다는 것이었습니
다. 이러한 소문은 비밀리에 모인 기독교인들이 예배 때 그리스도의 살을 떼
고 피를 나누었던 성찬의식이 잘못 와전된 것입니다.
이러한 소문을 모를 리 없었던 교회는 이에 대한 합당한 답변을 제시했을 것
입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 밖의 사람 중에도 기독교인들의 집회를 조사하여
소문과는 달리 그것은 엄숙한 모임과 검소한 만찬임을 확인한 이들이 있었습
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소문이 폭넓게 확산된 데는 교회에 대한 뿌
리깊은 반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교회의 박해는 실제로 성찬에서 비롯되었을지 모릅니다. 성도가 성찬
의 외형적 참여에 머무르지 않고 이 성례의 은혜를 삶의 열매로까지 계속해
야 할 의무를 다했을 때(대요리문답,175), 세상 사람들은 그들은 미워했을
지 모릅니다.
로마는 다신교적 사회였습니다. 황제숭배를 부정하지 않는 한 어떠한 신앙
도 배척당하지 않았습니다. 민중들의 생활은 언제나 다신교적 분위기에서 이
루어졌습니다. 극장의 공연도, 운동장의 경기도 종교적 축제와 관련되어 있
었습니다. 여행자와 병사들이 그들의 안전을 신에게 의탁하는가 하면 농부들
은 풍작을 위해 신들에게 비를 간구 했습니다.
자연히 종교와 관련된 생업도 적지 않았습니다. 물건을 만드는 일도, 가축
을 기르는 일도, 심지어 무역을 하는 일도 그들의 이방 예배와 얽혀 있는 경
우가 비일비재했습니다. 로마의 다신교적 종교생활은 사회, 문화 그리고 경
제적 영역에까지 미치고 있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모일 때 주의 만찬을 나누었습니다. 눈앞에 보이는 떡과 포도
주가 직접 떼어서 분배되는 것처럼 그리스도는 실제로 우리를 위해 찢기셨으
며 우리 역시 이 사건에 실제로 참여한다
는 것을 나타내는 성찬이었습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하는 성도들이 이교적 풍습에 젖어있는 로마문
화와 어울릴 수 없었을 것입니다. 비록 그들의 손가락질을 받는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또한 성찬에 참여하는 성도들은 떡과 포도주를 실제로 입을 통해 먹고 마시
는 것처럼,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주님께서 공급하시는 양식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고백해 왔습니다. 하늘로부터의 영양분을 공급받고 사는 성도들이 이방
종교의 우산 아래에서 양식을 구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비록 경제적 궁핍
을 겪는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다신교적 사회에서 이러한 배타적인 기독교
에 대한 민간의 반응은 미움이었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는 일 년에 수 차례씩 성례를 거행합니다. 이 거룩한 예식
이 형식화 되어버리지 않았는지 반성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로마제
국 치하의 기독교인들은 사람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신다는 오해를 받으며 세
상으로부터 미움을 당했습니다.
박해 아래 있는 참 성도의 길
그 소문이 와전된 것이라 하더라도 우리 신앙의 선조들은 실제로 주님의 떡
을 떼고 잔을 나누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것이 교회가 박해를 당한 이유입니
다. 우리에게 성찬은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한 번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