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적이지 않은 보편교회_이윤호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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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델베르크<34>

보편적이지 않은 보편교회

이윤호 장로/‘선교와 비평’ 발행인

54문> “거룩한 보편적 교회”에 관하여 당신은 무엇을 믿습니까?
답>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의 처음부터 마지막 날까지 모든 인류 가운
데서 영생을 위하여 택하신 교회를 참된 믿음으로 하나가 되도록 그의 말씀
과 성신으로 자신을 위하여 불러모으고 보호하고 보존하심을 믿습니다. 나
도 지금 이 교회의 살아 있는 지체이며 영원히 그러할 것을 믿습니다.

우리가 거룩한 보편교회를 고백할 때 ‘보편’이라는 단어를 정확히 이해하
기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것의 사전적 의미는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
에 따라 여러 가지로 적용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보
편’이라는 단어를 쓸 때 그것은 특별하지 않고 일반적이며 한 곳에 제한되
어 있지 않고 널리 통용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느슨함의 의미가 함
축되어 있는 듯합니다.

‘보편’이란 말에 스스로 속지 말아야

이러한 사전적 의미로 보편교회를 이해할 때 우리는 각각의 교회들이 표방하
는 이런저런 주장들을 모두 어우르는 커다란 울타리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이것은 신앙의 모양과 색채가 현저히 달라 보이더라도 모두 기독교라는 하나
의 이름으로 묶어줄 수 있는 유연성 있는 울타리입니다. 이러한 울타리를 점
점 넓혀가고 그 속에 있는 각양 교회들을 통일시켜 나가려는 노력이 오늘날 
교회일치 운동이라는 이름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교회 일치운동은 각각의 교회들이 가지는 차이점보다는 공통점 즉 보편성을 
찾으려는 시도입니다. 서로의 차이점을 앞세운다면 논쟁과 갈등이 뒤따를 
뿐 하나로 연합되는 교회란 기대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서로의 모습
에서 공통분모를 찾아 나가다보면 서로를 인정하고 화합할 수 있을 것입니
다. 
오늘날 이러한 움직임은 몇몇 분야에서 상당히 성공적인 듯합니다. 특히 복
음을 전파하는 선교현장에서 교회가 연합하는 현상은 두드러집니다. 추진하
는 목표가 동일하다면 교단 교파에 관계없이 서로 연합하는 것이 선교의 효
율성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세계의 

온 교회가 하나로 연합해 나갈 때 기독교의 위상은 훨씬 높아질 것입니다. 
세상은 교회를 훨씬 좋게 생각할 것입니다. 교회는 이 세상에서 더 많은 일
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교회일치를 위한 노력이 교회일치를 깨뜨릴 수 있을 것입니다. 왜
냐하면 교회 일치의 문제는 공시적 관점과 더불어 통시적 관점에서 다루어져
야 하기 때문입니다. 공시적 관점에서의 일치가 우리 시대에 지역적으로 흩
어져 있는 교회들의 일치를 의미한다면, 통시적 관점에서의 일치는 우리 믿
음의 선조들의 신앙과 우리 교회의 신앙을 동일하게 하는 일치를 의미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현대의 교회들이 서로를 인정하고 양보하여 나름대로 하
나의 교회를 이루었다 하더라도 앞선 믿음의 선조들의 신앙과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면 교회의 일치는 심각하게 손상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고백하는 보편교회는 흔히 말하듯 그리 보편적이지 않습니
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이 말하는 바, 교회는 하나가 되어야 하지만 그것
은 반드시 ‘참된 믿음’이 전제되어야 하며 ‘말씀과 성신’이라는 방편을 
통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는 
참된 믿음만을 지키되 참되지 않은 믿
음은 배격해야 하며, 말씀과 성신을 통하여 교회의 정체성을 수립해 나가되 
인본주의적이고 세상 중심적 사고를 교회에서 가려내야 하는 결코 보편적이
지 않은 보편교회인 것입니다.
참된 믿음 안에서 하나로 성장해 가야할 보편 교회에 관해서 성경은 하나의 
그림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건축물의 그림입니다. 튼튼한 기
초 위에서 건물의 모양이 견고하게 이루어져 가고 있는 그림입니다. 건물에 
부속된 한 부분이 아무리 아름다운 모양을 하고 있다 하더라도 만약 기초와 
기둥에서 이탈한다면, 그것은 건축물과는 아무 상관없는 별개의 조형물에 지
나지 않을 것입니다. 
성경은 이 기초를 사도와 선지자들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와 선지자들
이 건물의 기초라는 말은 그들의 계시적 말씀이 그 건축물, 즉 교회를 지탱
하고 있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우리 시대의 교회 일치는 지붕을 이루는 기
와 한 장 한 장을 서로 견고하게 이어 나가는 것에 비유할 수 있을 것입니
다. 그것들이 잘 어우러져 아무리 아름다운 기와지붕의 모습을 갖추었다 하
더라도 그 자체가 건물에 유익일 수 없을 
것입니다. 오직 그것이 기초와 기
둥 위에 올바로 연결되어 있을 때, 그것은 보편교회라는 건축물에 속한 소중
한 지체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교회는 사도적 복음 위에 서 있어야

그러므로 개혁주의 교회가 거룩한 보편교회를 고백할 때 무분별한 교회일치
를 추구하기보다 그것을 위한 철저한 신학적 검토를 선행해야 할 것입니다. 
사도적 보편교회와의 일치를 깨뜨리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개혁주의 교회가 
거룩한 보편교회를 고백할 때, 부흥이라는 옷을 입힌 교회확장을 추구하기
에 앞서 교회의 고백을 조심스럽게 검토해야 할 것입니다. 사도적 기초에 근
거한 보편교회의 살아있는 지체로 이 땅에 존재하기 위해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