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에 달린 옛사람_이윤호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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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델베르크<26>

십자가에 달린 옛사람

이윤호 장로_‘선교와 비평’ 발행인

42문>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는데 우리도 왜 여전히 죽어야 합니
까?
답> 우리의 죽음은 자기 죗값을 치르는 것이 아니며, 단지 죄짓는 것을 그
치고 영생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43문>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제사와 죽으심에서 우리가 받는 또 다른 유익은 
무엇입니까?
답> 그리스도의 죽으심의 공효로 우리의 옛사람이 그와 함께 십자가에 달리
고 죽고 장사되며, 그럼으로써 육신의 악한 소욕이 더 이상 우리를 지배하
지 못하게 되고, 오히려 우리 자신을 그분께 감사의 제물로 드리게 됩니다.

어릴 때부터 수차례 참석해 보았던 부흥집회들을 한번 떠올려봅니다. 그곳
에서 가장 많이 설교되어지는 내용 중 하나는 바로 옛사람이 죽고 새롭게 태
어난 성도의 삶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관심의 대상이었던 옛사람과 새사람

특히 예수님을 믿기 전 소위 나름대로 방탕했던 과거사를 가진 부흥사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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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자신들의 경험담을 늘어놓기 일쑤였고, 설교의 후반부에 가서 그것과 
대조적인 현재의 삶을 이야기 할 때 성도들은 큰 은혜를 받곤 했습니다. 옛
사람, 즉 예수님을 믿기 이전의 모습과 그 이후의 삶의 외형적 차이가 크면 
클수록 그것을 통해 그리스도의 은혜는 더 크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이
와 같이 방탕했던 과거와 도덕적으로 성숙해진 현재의 대조, 즉 개인의 경험
을 통해서 옛사람의 죽음과 새로운 삶을 이해하는 것이 보통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중에는 옛사람과 새사람 사이의 경험적 차이를 상대적으로 적
게 느끼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개혁주의 교회는 일생 동안 이러
한 방식의 대조가 두드러지지 않는 삶을 보편적으로 희망한다고도 할 수 있
습니다. 예컨대 우리는 교회의 언약 가운데서 태어난 자녀들에게 유아세례
를 베풀고, 그들이 언약의 백성답게 잘 자랄 수 있도록 교회교육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입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이 개혁교회의 어린이들에게 가르쳐지는 것도 자라나
는 어린이들로 하여금 개혁주의 신앙의 기초를 튼튼히 다지도록 하기 위함입
니다. 이처럼 어릴 때부터 신실하게 
하나님을 알아간다면 방탕했던 과거와 
그렇지 않은 현재 사이의 뚜렷한 경험상의 대조는 그들에게 그리 선명하지 
않을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옛사람의 죽음은 단지 우리의 경험을 통한 깨달음에 국한되지 않습
니다. 이제 막 태어난 어린 아이에게 유아세례를 베풀 때 이미 옛사람이 죽
었음을 고백하는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아직 가시적 죄를 범할 수 
없는 어린 아이에 대해서조차 옛사람의 죽음을 고백하는 것은 우리가 태생적
으로 짊어지고 태어날 수밖에 없는 근원적인 죄 때문일 것입니다. 
아담의 범죄에서 비롯된 이것은 우리의 경험으로는 결코 상상할 수도 측량
할 수도 없는 무서운 죄입니다. 이러한 죄를 지닌 우리의 옛사람이 그리스도
와 함께 장사지냈다는 사실을 우리의 일상적 경험을 통해서는 온전히 이해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만약 옛사람의 죽음을 우리 경험을 통해 깨닫는다면 요리문답 43문의 대답에
서 말하듯이 옛사람을 장사지냄으로써 ‘육신의 악한 소욕이 더 이상 우리
를 지배하지 못한다’고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과거
와 현재 사이의 도덕적 삶의 모양이 아무리 차이난다 하더라
도 시시때때로 
육신의 소욕에 의해 나약하게 쓰러지는 경험을 할 수밖에 없는 존재가 바로 
우리이기 때문입니다. 
과거와 현재에 대한 우리의 경험은 우리의 장래를 보장하기보다는 오히려 불
확실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옛사람이 우리의 상상이 미치
지 못하는 무서운 죄 가운데 있었지만 이제 우리가 그것의 지배로부터 벗어
났음을 담대하게 선언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의 백성을 구원하시는 하나님
의 약속 때문입니다. 
분명 우리의 옛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렸고 장사지낸바 되었습
니다. 그렇지만 우리 앞에는 여전히 육체의 죽음이 놓여 있으며, 우리가 사
는 동안 한순간도 범죄로부터 자유로운 수 없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
다(42문). 우리는 장래에 있을 죽음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일 만큼 성숙한 신
앙을 가지지 못한 것도 사실입니다. 
우리 각자가 걸어온 삶의 경험을 통해 우리는 부분적으로 옛사람의 죽음을 
깨닫고 우리 자신의 보다 성숙한 모습을 위해 노력할 수 있지만 한계에 부딪
히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약속이 있음으로 옛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 지낸
바 되었음을 확신하며 현재의 전투에 임할 수 있
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약속이 있음으로 육체적 죽음을 통한 그 나라로의 영
광스러운 참예를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확인되어야

그러므로 우리 옛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렸음을 아는 것은 우리
의 경험보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입니다. 옛사람의 죽음에 대해 
하나님이 약속하신 유익을 확신하는 것은 도덕적 성숙보다 오히려 그의 명령
에 대한 순종을 통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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