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신격(神格)에 몇 위(位)가 계십니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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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세형 목사

하나님의 신격(神格)에 몇 위(位)가 계십니까?
하나님의 신격에 삼 위가 계시니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신데(마
3:16-17,28:19,고후13:13,벧전1:2) 이 삼 위는 한 하나님이십니다. 본체는 

나요 권능과 영광은 동등이십니다(시45:6,사63:10,요1:1,10:30,14:16,17:5).

지난 번에는 삼위 하나님의 서로간의 관계에 대하여, 주로 아버지와 아들
을 중심으로 살펴 보았거니와 삼위일체 도리의 의의는 어디 있는가? 이를
부각시키기 위하여 질문을 한 가지 던질 필요가 있다. 그 질문은 “삼위일
체 교리가 유대교에도 있는가?”이다. 우리는 삼위일체 교리가 유대교에는
없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믿지 않는
다.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믿게 되면 하나님의 유일하심을 믿는 그들로서
는 삼위일체를 믿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는 삼위일체의 강조점이
제2위에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자기 계시에서 새
로운 사실을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 그가 하
나님이시라는 사실이다. 물론
그리스도 그가 하나님 되시는 사실에 대한 주장은 갑자기 튀어나온 화두가
아니요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줄곧 말해온 사실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미
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눅24:25), 또는 도
무지 믿지 않는(눅22:67) 어리석은 유대인의 입장에서 볼 때는 그리스도께
서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은 생소하고 당혹스럽고 심지어 참람하기까지 한
사실이다(요10:33). 그들은 하나님의 현존을 견디지 못하였기 때문에 자꾸
의혹을 가지고 그의 신성을 믿지 않았는지도 모른다(요3:20 – “악을 행하
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
까 함이요”). 그러나 약속된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이야말로 하
나님의 현저한 자기 계시이며 또는 자기 계시의 방도인 것이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
셨느니라”(요1:18) – 그렇기 때문에 이 계시를 믿지 않는 자는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인 것이다(요5:23).
또한 만일 유대인들이 구약성경을 진실로 이해했다면 그리스도의 자기 계

시로 더불어 구약성경이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신 사실을 확증한다고 인정하
게 될 것이었다. 이렇게 유대인들은 연역적으로도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시
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옳았지만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귀납적으로라
도 그리스도 자신의 신적 계시로 말미암아 그의 신성을 믿는 것이 마땅하
였다. 그리스도께서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고 말씀
하신 바와 같다(요14:11). 만일 그리스도의 신성을 믿게 되면 삼위일체의
큰 진리에 한 걸음 다가가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하나님은 옛 이야
기 속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 앞에 두려우신 주로 등장하게 되
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신 사실을 믿지 아니하고 어떻게 현존하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수가 있는가? 유대인들은 자기의 신성을 주장하는
그리스도를 배척함으로 말미암아 참으로 하나님의 실재와 다스리심을 믿지
않는 추상주의에 빠져서 사실상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가 되어 그를 순종
하지도 않았고 구원을 얻지도 못했다. 참으로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
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는”(요일5:12) 것이
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계시하는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가 그렇게도 중요한
것이다.
죄인들의 깨달음, 즉 자기들과 함께 사시는 예수 그가 하나님이시라는 깨
달음은 주 하나님을 바로 죄인들인 자기들 곁에 모신 결과를 초래하였다.
그리스도의 출현은 죄로 말미암아 눈이 어두워 마음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죄인들에게 진실로 하나님이 함께 계신 사실(하나님의 현존)을 증
거하고 말았다. 그래서 시몬 베드로는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
로소이다”(눅5:8) 하였고 후에 제자들은 그의 신성이 깨달아질 때에는 그
앞에 엎드려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고 두려움으로 경배하
지 않을 수 없었다(마14:33). 또한 백부장도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
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
겠사옵나이다”고 하였다(마8:8). 아! 하나님이 여기 계셨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두렵도다 이곳이여 다른 것이 아니라 이는 하나님의 전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창28:17). 그러나 죄인
들의 마음에 그의 신성이(주
되심이)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 된 것은 그의 부활로 말미암아서이다.
이제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신 것이다. 그가 지금 당장 나타나지 않아도
역사적인 사식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 재세시에는
그가 친히 이를 증거하셨거니와 이제 그가 승천하신 후에는 그와 함께 처
음부터 계셨던 성령과 그리고 역사적으로 그를 보았던 사도들이 그를 증거
하는 것이다. 우리는 성령과 사도들의 증거로 말미암아 예수의 증거 즉 하
나님의 현존을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예수의 증거는 단순히 지나가버린
역사적인 사실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현존하시는 하나님께
대한 생생한 증거인 것이다. 우리는 사람으로 오신 그리스도 그가 하나님
이시라는,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를 믿음이 없이 하나님의 현존을 진정으로
믿는다고 할 수 없으며 따라서 그리스도를 주 하나님으로 믿지 않고는 하
나님을 화해적으로 만날 도리가 없는 것이다(요14:6).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은 다만 두려우신 주 하나님의 현존에만 머
무는 것이 아니다. 동시에 그것은 자기 백성을 구속하시는 하나님의 자

의 계시인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언약의 실천으로서 순결하신 하나님께서
친히 자기 백성의 죄를 속하여 주시는 것이다. 이것이 그를 믿는 자는 멸
망치 않고 영생을 얻는다는 복음, 하나님 메시지인 것이다(요3:16). 복음의
요점은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하나님의 현존으로 영접하고 그 앞에 굴복
하여 하나님과의 화해를 구함으로써 죄사함을 얻고 영생의 약속을 받는 것
이다. 이것이 삼위일체 도리의 핵심적 의의이다. 삼위일체 도리에서 두드러
지는 것은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