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 날개를 달다_ 김영자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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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날개를 달다

 

< 김영자 사모, 전 채석포교회 >

 

가난했지만 은퇴 후에 약속 지키게 되었다며 하얀 집 지어준 남편

 

아카시아 꽃이 산등성이를 따라 피어나는 5월 입니다며칠간 때 이른 여름 날씨로 앞뜰의 나뭇잎들이 축 늘어졌으나 이른 새벽부터 비가 오면서 생기를 띠고 푸르름은 더 청초한 빛을 자랑합니다.

남편이 목회를 은퇴한 후 새로 이사 간 곳은 마을에서 꽤나 떨어진 산골인데 눈앞에 펼쳐지는 신록의 그림은 날마다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새벽이면 산 아래 호수에서 피어오르는 물안개와새들의 지저귐신선한 맑은 공기이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여유로움 등 이 모든 것들을 한꺼번에 누리게 되었으니 분에 넘치는 호사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어제 저녁에는 후덥지근한 공기로 비가 올 것 같다면서 밖에서 비설거지를 했지만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면서 집 안 한쪽 어디선가 하고 비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남편은 높은 사다리를 집안으로 들여와서 지붕 밑을 점검하며 양푼 몇 개를 달라고 했습니다.

 

몇 년 전부터 은퇴를 준비하면서 작년부터 가야산 기슭에 둥지를 틀 것을 결정하고 집을 짓기 시작했습니다농촌의 현실을 보면서 남편과 같이 늙어 가는 성도들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였습니다한 해 한 해 성도들의 나이 들어 나약해지는 모습과 그들의 생활에 대한 염려그리고 그들 속에 있는 목사와 사모이기 전에 교회의 장래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불현듯 우리들이 사명감 대신 다른 이유 때문에 교회를 지키고 있는 삯군 목사는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많은 고민을 하였고좀 더 일찍 은퇴를 해야겠다고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한 달 재정도 어려운 농촌교회에서 은퇴목사를 생각할 수 있는 경제력은 전혀 없었습니다남편은 그 손에 망치 하나 다루어 보지 못했으나 13년 동안 어려운 교회에 시무하고 교회와 사택을 손수 건축하면서 어깨 너머로 배운 건축 기술이 목회 은퇴금이라 생각하며 그 모든 것들을 상쇄시켰습니다.

 

젊은 시절 캠핑을 좋아했던 우리 부부는 1차 지붕과 시멘트 바닥만 시공된 곳으로 이삿짐을 옮기면서 은퇴 후의 제2의 삶이 시작되었습니다한 곳에 짐을 쌓아 놓았는데박스에서 짐을 풀 수도 없었습니다화장실과 물이 있는 고급 캠핑장이라 생각하면서 날마다 한 곳 한 곳을 시공하면서 생활한 지도 한 달이 되었습니다방 하나가 완성되면 그곳으로 박스를 옮기면서도 그 동안 누려보지 못했던 참 행복한 시간들과 가슴 저 밑바닥에서 뜨거운 감사기도가 저절로 나왔습니다.

 

커튼도 설치되지 않은 방에서 밤에는 별빛과 달빛의 환함으로 잠을 설치기도 했고 일이 힘들어 그냥 종이박스위에 털썩 주저앉아 휴식을 취하면서 땀을 흘리며 날마다 조금씩 집 형태를 갖추어가는 모습을 보며 성취감에 기뻤습니다목수와 일꾼에게 일을 맡기지 않고 남편 혼자서 손수 모든 일을 감당하면서도 몸은 힘들지만 진정한 휴식의 단 맛을 맛보며 한 곳 한 곳 완성시켜가고 있습니다.

 

이곳은 인가와 조금 떨어진 곳이라 전화와 인터넷이 되지 않는 곳입니다정리되지 않는 다랑이 논과 제멋대로 자란 풀들이 오솔길을 덮지만 새벽에 일어나 창밖을 보면 호수에서 올라온 물안개와 사방의 산들이 내 품는 공기의 산뜻함에 머리가 맑아집니다.

 

이웃들의 눈치가 보여 크게 틀어 보지 못했던 작은 진공관 앰프의 볼륨을 높이면서 클래식을 듣기도 하고이사를 하면서 이리저리 굴린 낡은 피아노에서는 조율이 되지 않은 소리지만 그 서툰 피아노 소리를 듣는 남편에게는 난 피아니스트가 되기도 합니다.

 

남편은 아내를 위한 집을 짓는다고 합니다아내의 꿈을 이루어 주기 위해서 산 속에 하얀 집을 지어 놓고 그곳에서 음악을 듣고 글과 그림을 그리는 아내를 꿈꾸어 본다고 합니다결혼 약속할 때 가진 것이 몸 밖에 없던 가난한 청년이 그 약속을 은퇴 후에 지키게 되었다며 죽을 만큼 힘들고 피곤하지만 아내를 위한 것이기에 망치를 들고 걸어가는 모습에서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아이들 공부 때문에 외국에 나가 있는 며느리로부터 시아버지의 은퇴 소식을 듣고 전화가 왔습니다반가움에 울컥하며 한 동안 말문이 막혔는데 며느리도 나와 같이 울먹거리며 어머니인간은 모두 외로운 것이에요라는 위로의 전화 한 마디에 또 다시 힘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기러기 가족이 되어 떨어져있는 가족들을 생각하며 한참 어린 며느리도 많이 외롭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큰 아들이 남편의 손을 보며 아버지 손이 노동자의 손처럼 너무나 거칠다고 마음 아파하면서도 자랑스러워했습니다.

 

오랫동안 얼굴을 보지 못한 친구 목사님부부가 보고 싶다면서 이곳에 왔습니다이삼십 분이면 모든 가까운 읍내로 나갈 수 있지만 이곳은 산 속이라 생필품이 필요할 것 같다면서 마트에서 여러 가지물건을 사왔습니다심한 노동으로 살이 많이 빠진 남편을 보며 마음 아파하면서도 완성되어 가는 지붕 높은 하얀 집을 보며 감탄하면서 자네가 자랑스럽네’ 하면서 남편에게 힘을 주기도 했습니다.

 

여러 가지 씨앗을 사다 심은 곳에서는 다양한 먹거리가 식탁에 올라와 우리들을 기쁘게 하였고 그 먹거리들을 정으로 담아 보내었습니다친구 내외가 떠났으니 마트 대신 5일장을 기억하며 예쁜 옷 대신 몸뻬 바지와 장화그리고 낫을 사기위해 홍성 장에 나가 보려고 합니다.

수덕사가 있는 덕숭산과 가야산 기슭에 제2의 삶을 살기위해 둥지를 틀어 희망의 날개를 달고 남편이 손 수 지어준 집에서 남편이 좋아 하는 친구들에게 산나물 반찬으로 식탁을 준비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로 참 행복을 누리고 싶습니다.

    

* 채석포에서 온 편지는 앞으로 가야산 기슭에서로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