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석포에서 온 편지아름다운 사람들
< 김영자 사모, 채석포교회 >
“오랫동안 기억해 주는 사람들 많이 있기를”
봄부터 가뭄을 비롯하여 여름의 살인적 무더위로 사람들을 지치게 하더니 연일 비가 내리면서 늦은 장마가 시작되었으며 태풍까지 덮쳤습니다. 이번 태풍은 그 어느 때보다 강한 세력으로 한반도를 강타한다는 뉴스가 시간마다 보도되고 있습니다.
이른 새벽의 동쪽 하늘에서는 오랜만에 햇살까지 비치고 창 너머 저 멀리 보이는 바다는 놀 하나 일지 않고 잔잔하며 풀벌레 소리 하나 들리지 않고 너무나 조용한 주변의 모습들이 앞으로 닥칠 태풍의 위력을 감지할 수 없기에 정적함이 오히려 사람들 마음을 불안하게 합니다.
동문가족수련회가 있었습니다. 태풍으로 인하여 장소가 변경되기는 했지만 오래 전에 계획된 모임이라 실행하기로 했나 봅니다. 여름휴가도 가지 않은 상황이고 오랜만에 보고 싶은 동문들의 얼굴들을 생각하면서 많이 망설였지만 모임에 갖다 오기로 했습니다.
금년 여름에 태안 지역에 집중호우로 많은 피해가 있었고 또 태풍 걱정으로 하룻밤만 같이 보내고 오자고 결정을 했습니다. 2년 전 태풍 곤파스로 말미암아 주변의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부러지고 넘어졌기에 많은 피해를 생각하며 거실 유리창에 테이프를 길게 붙여 가며 주변을 단단히 살피기도 했습니다.
많은 동문들이 각 곳에서 모여 그동안의 회포를 풀기도 하면서 밤을 새우면서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오랜만에 만났으나 엊그제 만난 사람들 마냥 금방 허물없이 두 다리를 쭉 뻗기도 하고, 비스듬히 눕기도 하면서 피곤한 눈을 깜박거리며 이야기에 열중이었습니다.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동문들이 참 아름답게 보였으며, 그 가운데는 진정한 친구들도 있으니 행복하고 성공한 삶이라고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밤을 하얗게 보내며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심한 바람과 쏟아지는 비 때문에 온통 마음은 채석포에 있었습니다. 일행들에게는 미만하지만 태풍이 가장 먼저 닫는 곳이 서해안 쪽이라서 아침을 먹고 서둘렀습니다.
방송을 들으니 강풍으로 인하여 서해대교를 통제한다고 했습니다. 내륙으로 심한 바람과 억수같은 비를 뚫고 무사히 집에 도착했습니다. 집집마다 창에 테이프를 붙여 놓은 모습에 웃음까지 났습니다. 어떤 집은 조그만 창에 두 줄의 테이프를 길게 붙이기도 하고….
한 바탕 태풍이 불고 지나간 자리는 소나무 가지가 꺾어지고 외등이 바람에 날아갔으며 창고 문이 떨어져 나가고 여기저기 태풍의 잔해들이 보입니다. 성도들이 걱정되어 집집마다 전화를 해보아도 전화가 불통이고 정전이 되어 온 천지가 깜깜했습니다. 곤파스 때보다는 태풍의 세력이 약한 듯 보이기도 했습니다.
바닷가에서는 크레인 2대를 이용하여 어선들을 모두 육지에 끌어 올려 메달아 태풍을 예방하기도 했습니다. 비닐하우스가 무너져 내린 정도는 기본이고 수확할 작물들의 피해가 많았습니다. 가뭄으로 인해서 고추가 다른 해보다 수확이 좋다고 생각했었는데 다섯 번은 따야 하는 것을 두세 번밖에 못 따고, 논에서는 벼가 다 넘어지고 밭에서는 콩과 깨의 수확을 하나도 못한다고 합니다. 어민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컨테이너가 바람에 넘어져버려서 사용할 수 없게 되기도 했습니다.
정전이 되어 깜깜한 암흑 속에 촛불을 밝혔습니다. 유리창이 덜컹거리고 쏟아지는 빗소리가 촛불과 어우러져 신비함까지 느끼면서 옛 생각들을 했습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고 집에 우물이 없어 공동 우물에서 물을 길러 먹고, 냉장고가 없는 그 시절에 먹다 남은 보리밥을 바구니에 담아 쉬지 않게 하기 위해서 기둥에 메달아 놓기도 했던 먼 시절을 남편과 같이 이야기를 주고받았습니다.
새 날이 밝았습니다. 흩어져 있는 주변을 정리하는데 태풍 피해가 없었냐면서 여러 곳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소중한 사람들은 자기가 만든다고 했는데 우리부부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을 알았습니다. 주위에서 걱정해주며 안부를 묻는 지인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선배 목사님 한 분이 이러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번 여름에 휴가를 같이 가자고 여러 목사님들에게 콜을 받으셨다고 하면서 ‘본인이 은퇴를 해도 지금과 같이 본인을 생각할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사모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합니다. 결혼 할 때 남편에게 “예쁜 여자이기보다는 나이 들어 아름다운 여자로 가꾸어 주기를 바란다”라고 했던 말이 기억납니다.
태풍이 물러갈 때 쯤 남편친구 목사님에게 “태풍후의 새로운 출발”이라는 메일이 도착했습니다. 또 다른 태풍이 나에게 올지라도 내 스스로 많이 인색했던 안부 전화 한마디가 상대방과 내 자신을 행복하게 해줄 것을 믿고, 늦었지만 이제부터라도 소중한 사람들을 내가 만들어 가는 아름다운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