된장 가족_윤순열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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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장 가족

 

< 윤순열 사모, 서문교회 >

 

 

“구제 시장에서 값싸게 명품 구입하는 것도 일상 행복 중 하나”

 

저는 항상 아기자기하게 꾸미기를 좋아하는 스타일입니다. 그래서 집안 구석구석에 장식품이라던가 화분을 놓아야 마음에 안정감을 느낍니다.

 

패션에도 유난히 관심이 많습니다. 비록 제 몸매가 받쳐주지 못해도 언제나 최선의 신경을 씁니다. 아이들을 키울 때도 최대한 예쁜 스타일로 꾸며주려고 무던히도 애를 많이 썼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목회자의 아내로서 아름답고 우아하게 살아가기란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려는 것처럼 힘이 들고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동대문 시장에 가서 옷감을 끊어다가 직접 옷을 만들어 입혔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양재를 배운 적은 없습니다. 저의 옷 만드는 기술은 저만의 특유의 기법일 뿐입니다. 우선 헌옷을 뜯어서 분해합니다. 아이 옷을 만들 때는 아이 옷이 본이고, 제 옷을 만들 때는 제 옷이 본입니다.

 

그 본을 따라서 재단을 한 후 유행에 따라 바지 통을 넓혔다 줄였다 하거나 옷 길이를 짧게 했다 길게 했다 하면서 옷을 만들면 멋진 스타일로 바뀌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딸을 키울 때는 공주처럼 예쁘게 꾸미면서 키울 수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제가 가난한 목회자의 아내로 살면서 터득한 저만의 지혜입니다.

 

백화점에 가서는 쇼핑을 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스타일이 예쁜가 하고 유행을 살피기도 하면서 멋진 옷이 있으면 스케치를 하면서 저만의 디자인을 구상하며 아이쇼핑을 맘껏 즐기고 오는 것입니다.

 

집안 장식품도 모두 손수 만들었습니다. 커튼은 아이보리색 면실을 한 타래 사다가 한 가지 뜨는데 한 달씩 걸려 뜨개질해서 거실 커튼, 주방 작은 창 커튼, 다용도실 출입문 커튼, 식탁보 거실 탁자보 등을 덮어놓으니 유행도 타지 않고 멋진 장식이 되었습니다. 12년이 지난 지금도 전혀 유행에 뒤지지 않는 우리 집을 보고 오시는 분마다 놀라움을 금치 못합니다.

 

침실 역시 최대한 로맨틱하게 꾸며놓고 싶어서 커튼은 아이보리 톤의 기계수를 놓은 망사 커튼으로 만들었습니다. 낡은 이불을 화려한 침대 이불로 교체하려니 너무 고가여서 낡은 이불 위에 작은 꽃무늬의 퀼트 천을 끊어다가 씌워놓으니 근사한 침실로 바뀌었습니다.

 

화장지 커버는 못쓰게 된 퀼트가방을 잘라서 원판을 만든 후, 가장자리 레이스 장식은 딸아이가 버리려고 내놓은 블라우스 레이스를 잘라서 사용하니 너무도 멋진 장식으로 바뀌어 방마다 배치해 놓았습니다. 이렇게 해놓으니 썰렁한 분위기의 집안이 따뜻하고 아늑한 분위기로 바뀌어 훨씬 포근하게 느껴집니다.

 

지난 크리스마스 때는 별로 비싸지 않은 퀼트 천을 끊어다가 꽃무늬로 된 붉은 색, 초록색, 아이보리색 3가지를 섞어서 작은 트리를 만든 후 그 속에 솜을 집어넣고 팽팽하게 한 후 끝에는 금방울을 달아 크고 작게 만들어 놓으니 너무도 멋진 나만의 트리 장식이 되었습니다. 방마다 달린 문에는 길고 부드러운 버드나무 가지를 꺾어 둥글게 원을 만든 후 가에는 예쁜 장식 꽃을 달아 멋지게 만들어 달아놓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동대문 시장을 단골처럼 드나들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중대한 발견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날도 시장을 갔다가 길을 잘못 들어서 엉뚱한 곳을 헤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곳에 허름한 옷들을 무더기로 쌓아놓고 파는 큰 가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는 허름한 옷들 사이로 윤기가 나고 럭셔리해 보이는 옷들이 사이사이에 보였습니다.

 

호기심이 발동한 저는 옷들을 살피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상표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닥스, 버버리, 빈폴 등등 말로만 듣던 상표들이 구겨진 옷들 사이에서 빛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곳은 수입 명품 구제 가게였습니다. 그곳의 역사는 60년이나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미국에서 우리나라에 구호물자가 들어오던 것을 이곳에서 판매하던 역사가 오늘날에는 현대인들 기호에 맞는 명품수입 구제 상으로 바뀌어 명맥을 이어 오고 있는 곳이라고 하였습니다. 많은 멋쟁이들이 이곳에 와서 물건을 사서 입고는 유명 백화점에서 사 입었다고 허세를 부리는 곳이라고 상인이 말해 주었습니다.

 

60년 역사가 있지만 별로 알려 지지 않은 곳인데 그 이유는 사 입은 사람들이 알리지 않고 쉬쉬하면서 자기들만 이용하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물 만난 고기처럼 옷을 고르기 시작하였습니다. 남편 콤비, 아이들 리바이스 청바지, 순모스웨터 캐시미어 반코트 등은 최고급 수준이었지만 값은 어마 어마하게 저렴하였습니다. 사고 싶은 것 마음껏 샀지만 값은 10만원 내외였습니다. 꾸미기 좋아하는 저에게는 아들도 저를 닮아 분수를 모르고 꾸미기 좋아하여 저를 힘들게 하였는데 그야말로 굉장한 발견이었습니다.

 

그 후부터 우리 가족은 구제명품 가족이 되었습니다. 그런 우리를 보고 딸은 된장 가족이라고 놀려댑니다. 그러나 저는 감사하며 행복합니다. 비록 유행이 지나 버리고 남이 입다 버린 옷들이지만 저는 딸과 함께 이곳에서 쇼핑을 하며 행복을 느낍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온 나라가 명품 병에 신음하고 있습니다. 비쌀수록 더 잘 팔린다는 명품 어린아이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명품에 아우성입니다. 평생 동안 얇은 지갑과 허덕거리며 생활하는 목사의 아내로서 제 손으로 명품을 한 번도 구입해 본적이 없지만 제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져 본적은 없습니다.

 

명품가방 하나에 최하 60만원 내지는 300만원을 호가하는 가방을 들고 옷 하나에 몇 십 만원, 몇 백 만원 하는 옷을 어떻게 사 입을 수 있을까 저는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 제가 비록 돈이 많아진다 해도 그런 옷이나 신발 가방 등은 사 입지 않으리라 결심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