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자들에 대한 자세
< 최에스더 사모 · 남서울평촌교회 >
동성애가 한국사회와 한국기독교내에 언제 어떤 식으로 주요 쟁점으로 떠오를 것인지 나는 꽤 오랫동안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었다.
대학생이 되어 성경을 자세히 읽고 공부하게 되면서 소돔과 고모라 성에 있는 롯을 구하기 위해 왔던 천사들이 그 성에 도착한 날 밤에 보게 된 그 일이 동성애와 관련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적잖이 충격을 받았었다.
이미 서구문화의 한 가지 코드로 널리 알려져 있었던 동성애였고, 성경에서 죄로 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창세기의 롯의 그 날 밤의 사건의 전말은 나와 시간적, 공간적으로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던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 나의 도덕적, 윤리적 감성에 너무나 큰 충격을 준 사건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동성애에 대해서 특별한 관심을 갖고 언제 내가 살고 있는 이 나라, 이 시대, 이 사회에 그 문제가 등장할 것인지 지켜보게 되었다. 어쩌면 기다리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참으로 어리석게도 기다리고만 있었던 것이다. 세상이 결국은 멸망으로 치닫게 되어 있다고 생각하며 일종의 종말론자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팔짱을 끼고 서서 혀만 차며 세상을 보고 있기에는 내가 속한 교회공동체의 입장이 많이 다급해져버렸다. 동성애자 차별금지 법안이 입법기관에서 통과되어 세워지면 이런 저런 일들이 벌어질 것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자니 이 일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동성애자들이 지목하는 그 종교란 바로 우리 기독교를 말하는 것이기에 왜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며, 왜 우리는 덜컥 가슴이 벌렁거리며 절대로 빼앗기지 말아야 할 것을 꼭 붙들고 있는 사람처럼 긴장해야 하는 것인가 고민하게 되었다. 고민을 좀 깊게 하자니 그들이 참으로 기독교를 오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우리들도 우리 자신을 제대로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나님께서는 동성애를 죄로 정하셨다. 분명한 사실이다. 레위기 18장 22절에 말씀하셨다. 동성애뿐만이 아니다. 보통 사람은 생각지도 못할 각각의 죄들이 줄줄이 나와 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순결하게 지키시고자 하나하나 다 짚어주시는 것 같다. 마치 이제 막 걷기 시작한 아기를 위해 조그만 물건에도 툭 하고 넘어질까봐 그 앞에 있는 이것저것을 다 치워주는 부모와 같은 모습이다.
구약에서 이렇게 지목하는 죄는 대부분 사형에 해당하는 죄다. 동성애도 마찬가지다. 여기까지라면 동성애자들이 교회를 비판할 만도 하겠지만 우리는 유대교도 아니고 이슬람교도 아니고 기독교다. 모든 죄인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구원을 얻는 기독교를 동성애자들이 배척하고 매도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죽어 마땅한 죄로 정해졌으나 그 죄를 지은 죄인을 위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날 때부터 동성애자이거나, 자라면서 형성이 된 동성애자이거나, 동성애를 혐오하는 사람이거나 상관없이 우리는 모두 죄인이었고 하나님과 원수였으나 그 죄인과 원수였던 우리를 위해서 사랑의 왕이신 예수께서 우리를 살려주시려고 이 땅에 오셨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
동성애자들을 교회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정죄하였는가? 의도적으로 불이익을 주었는가? 철저하게 따돌렸는가? 힘을 합하여 돌팔매질을 하였는가? 아니다. 그렇다면 동성애가 우리나라 문화의 전통과 사람들의 보통 정서에 참으로 가문의 영광이 되는 일인데도 유독 기독교만 찬물을 끼얹고 있는가? 동성애자의 부모가 느끼는 보람과 감사에 교회가 손가락질을 하였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동성애자들은 교회에 대해서 불만을 가질 이유가 없다.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믿는가에 대해서는 헌법이 그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동성애뿐 아니라 성경이, 하나님이 죄로 정하시는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우리는 우리 자신과 우리 다음 세대들에게 그것은 죄라고 가르칠 것이다. 헌법이 이것을 보장하지 않으면 기독교는 지하로 스며들거나 국경을 넘거나 죽음을 택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행하는 바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우리는 끝까지 용납하고 사랑하며 중보하며 헌신할 것이다.
예수님과 사도들의 가르침을 따르자면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것과, 가장 큰 죄인 성령을 훼방하는 자는 상대하지 말 것이 우리의 행함의 극한이다.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이다. 동성애를 죄로 보는 우리는 동성애자를 긍휼히 여기고 사랑하고 중보할 것이다. 죄를 미워하되 사람을 사랑하는 기독교를 향해 어떻게 손가락질을 할 수 있는가. 모르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근원적으로 원수 마귀의 궤계가 있겠지만 그들은 왜 모르고 있으며, 왜 못 보았단 말인가. 혹시 우리가 사랑하지 않아서는 아닐까? 우리와 조금만 달라도 정죄하기 바빴고, 미워하기 좋아하고, 따돌려서 내치기에 능했던 것은 아닐까? 원수는 내가 갚아줄 것이니 너희는 다만 사랑하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교회 안에 살아서 역사하고 있는가?
교회가 참 교회되지 않았는데, 기독교가 참 기독교답지 않은데 어떻게 세상을 향해 기독교는 이런 종교인데 너희가 오해하고 있는 거라고, 잘못 알고 있는 거라고 외칠 수 있단 말인가.
12월이다. 예수님께서는 의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말씀하셨다. 의인으로 칭함을 받고 있는 지금 우리에게도, 나아가 성경이 죄인이라고 하고 있는 저들에게도 예수님의 사랑은 절실하게 필요하다. 이 모든 일을 위하여 예수님은 오셨다.
유대 땅 베들레헴 어딘가 마굿간 구유 위에 강보에 싸여 저 높고 높은 별을 넘어 이 낮고 낮은 땅 위에 오셨다. 이 예수님의 사랑을 선물로 받는 성탄절이 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