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간의 영적 훈련, 그리고 <파브르 식물이야기>_추둘란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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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간의 영적 훈련, 그리고 <파브르 식물이야기>

 

 

< 추둘란 집사, 수필가, 홍동밀알교회 >

 

“거절 못해 시작한 번역, 영적 훈련 톡톡히 치르게 돼”

 

막바지 수정 작업이 진행될 즈음, 출판사의 편집부 담당자에게 말했습니다. “책이 술술 잘 읽혀요, 참 좋습니다.” 그 말은 들은 담당자가 의아해 하며 되물었습니다. “아니, 선생님. 이 책을 선생님이 써놓고는 지금 선생님이 감동하시는 겁니까?”

하나님을 안 믿는 담당자여서 그이에게는 다른 이유를 대었으나 나는 속으로 답했습니다.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쓰셨으니까 감동할 수밖에요’라고.

 

7년 전입니다. 후배 한 명과 출판사 직원이 찾아 와서는 번역을 의뢰하였습니다. <파브르식물기>는 불어로 된 책이지만, 영문으로 번역된 것이 있으니 그것을 번역하되 직역이 아니라 내용을 재구성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원래 거절을 잘 못하는 성격에다, 그이들이 그날 낮에 우리 고추밭에 올라가 고추 곁순을 따준 것이 고마워서 나는 얼떨결에 승낙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영문으로 된 책을 받아보니 내용은 대학 생물학 수준이요, 분량 또한 엄청나게 많았습니다. 어떻게 해서 초고는 완성되었으나 그것을 어떻게 다듬어야 할지 출판사도 나도 갈피를 잡을 수 없었습니다.

 

더욱이 그즈음 둘째아이를 출산하게 되었고, 늘 병원을 들락거리는 첫 아이 뒤치다꺼리까지 겹치면서 나는 모든 일에 의욕을 잃고 말았습니다. 남편은 남편대로 직장을 잃은 터라 매달 빚내기 바빴고, 아르바이트 삼아 산림조합 간벌작업을 다니게 되었는데 육체적으로 힘든 일을 하다 보니 짜증이 늘어갔습니다. 이렇게 생활이 복잡하니 번역이고 뭐고 다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일단 초고는 드렸으니, 나머지는 알아서 하십시오. 나는 이제 아무 것도 못하겠습니다”라며 출판사에 선언을 해버렸습니다. 그리고 6년 세월이 흘렀습니다. 완전히 포기하였기 때문에 언제든 계약금을 돌려달라고 하면 돌려줄 생각까지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작년 5월이었습니다. ‘경건의 삶’이라는 성경공부를 하면서 10년 계획을 세워가던 도중 이 책을 다시 쓰고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출판사에 전화를 했더니 담당자가 깜짝 놀랐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오늘내일 전화를 할 참이었다는 것입니다. 애초에 기획했던 것과는 다르게 방향을 좀 바꾸었고 그림 자료도 거의 완성 되었으며, 원고 내용을 추려놓았으니 이제 읽기 좋게 연결시키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일이 일사천리로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한 번도 시간 약속을 어기지 않고 꼬박꼬박 원고를 넘겨주었고, 6년 전과는 글솜씨가 크게 달라져 편집부에서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6년이라는 시간은 영적으로 갓난아이였던 저를 하나님께서 성숙시킨 영적 훈련의 기간이었습니다. 3년 동안 이루 말할 수 없는 환란 가운데 두더니 3년 동안 무조건 순종하게 하셨습니다. 목장예배가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하라 하니까 앞뒤 가리지 않고 했습니다. 원고 쓰느라 컴퓨터 만지던 그 손가락으로 목원들을 위해 생전 처음 하는 요리를 하기 시작했고 새벽에 기도시키니 기도했고 성경공부 단계별로 모조리 시키니 무조건 따라갔습니다.

 

그랬더니 나의 약한 부분이 어느새 다 바뀌어 있었습니다. 다운증후군 장애아인 첫아이와의 관계, 친정아버지와 풀리지 않았던 마음의 응어리, 도저히 손쓸 수 없을 정도로 심각했던 부부싸움, 다달이 빚만 쌓였던 살림살이까지 다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책을 다시 보게 해 주셨습니다. 이 책이 세상에 나오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라는 확신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곧 그것을 증거할 만한 큰 문제에 맞닥뜨리게 하셨습니다.

원작자인 파브르가 본문에서 자주 사용한 ‘창조’라는 말과 ‘창조주’라는 말을 편집부에서는 빼자고 요구하더니, 식물의 발생 연대를 나타내는 표를 만들면서 그 표의 해설 부분에 ‘진화’라는 말을 열 번이 넘도록 써놓았습니다. 설득도 하고 간곡히 부탁도 하였지만 물러서지 않는 그이들과의 논쟁 속에서 비로소 나는 하나님이 이 책을 번역하게 하신 이유를 알았습니다.

 

이같은 영적인 싸움이 있을 줄 아셨고 믿음으로 무장된 군사와 한마음이 되어 기도할 교회를 찾으셨던 것입니다. 그 군사가 6년 전 영적으로 아무 것도 준비되지 않았던 나였으며 그 교회가 홍동밀알교회였던 것입니다.

 

끝까지 물러서지 않는 출판사를 향해 목사님을 비롯하여 여러 성도님들, 목원들이 기도했고 “정 그렇다면 내 이름을 빼고 출판사의 이름으로 출간하세요. 인세도 받지 않겠으며 봉사한 셈 치겠습니다”라는 단호한 결정 앞에 극적으로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다시 <파브르 식물이야기> 표지를 들여다봅니다. 하나님이 다 이루시고도, 나를 어여삐 여기셔서 많고 많은 이름 중에 내 이름 석 자를 표지에 넣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포기하겠다던 그 인세를 세 배로 늘려주셨습니다. 애초에 한 권으로 기획했던 책이 청소년용 두 권과 성인용 한 권으로 늘어나게 된 것입니다.

 

원고를 쓰려고 컴퓨터를 켤 때마다 하나님을 의지했고, 하나님이 기회를 주셨노라고 여러 사람 앞에서 인정해 드린 것, 바로 그 당연한 것을 하나님은 기뻐하셨고 이와 같이 큰 복을 주셨습니다.

 

이제 <파브르 식물 이야기>는 세상에 나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이 높이 드러날 일만 남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