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아래서 춤을
<이영란 사모, 좋은소식교회>
“우리 가족이 경건한 백성으로 세워져 가는 것 감사해”
시월 한 달은 어린이 예배 때에 룻기 말씀을 전했다. 첫 시간에 “나오미가
며느리 룻과 함께 고향에 돌아온 때는 추수를 시작할 때였어요!” 하며 두
여인을 융판에 붙이는데 무척이나 설레었다. 앞으로 전개될 놀라운 은혜의
이야기 때문이었다.
나오미와 룻 이야기 전달해
네 번의 룻기설교를 마치면서 나는 지나온 세월을 자연스럽게 반추하게 되었
다. “너는 맏며느리로는 많이 부족하니 나는 이 결혼을 반대한다”고 하시
는 아버지 말씀에 크게 흔들렸지만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지금의 남편이
‘그 자격은 마음과 믿음에 있으니 내가 최적격’이라고 하였다.
결혼한 그 이후 25년의 세월동안 나는 아버지 말씀대로 맏며느리의 삶은 나
와 너무도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를 무척이나 좋아하셨던 어머
니께서 내 진면목을 보시며 실망하셨
다고 생각될 때마다 앞으로 어떻게 해
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아! 내 노력으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구나, 은혜가 아니면 이 삶은 위선
과 형식일 수밖에 없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엎드리는 중에 믿음으로 시
댁가족에 대한 미래의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어머니를 생각하며는 아련해지고 가끔 회개의 눈물이 맺혔다.
룻의 시모에 대한 애정이 나에게도 싹트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께서 “나도 맏며느리는 일을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더구
나.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하시는 것이 아닌가! 내가 룻과
나오미를 융판에 붙였듯이 하나님께서 앞으로 하실 이야기를 위해 마음이 하
나된 어머니와 나를 붙이시는 순간이었던 같다.
6남매 모두 결혼하고 자손들이 장성하기까지 작고 큰 풍파들이 있었고 그때
마다 어머니와 나는 함께 기도했다. 믿음을 멀리 떠나 살던 가정들이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며 다시금 신앙의 아름다운 가정으로 세워져
갔다. 하나님은 측량할 수 없는 은혜를 베푸셨고 점차로 하나님을 섬기는 대
가족을 이루게 하셨다.
그런데 올해 큰 변화
가 생겼다. 내게 며느리가 생긴 것이다. 일찍 결혼한 아
들 덕에 빨리 시어머니가 된 것이다. 명절을 맞아 어린 며느리를 데리고 장
을 보아 시댁에 가는데 그 느낌을 무엇이라 형용할 수 없었다. 이제 겨우 며
느리가 어떤 것인가 깨닫기 시작했는데 시어머니가 되었으니 어찌 담담할
수 있을까!
어린 며느리가 내가 가르쳐주는 대로 송편을 열심히 만드는 것을 보면서 25
년 전 바로 이 자리에서 있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송편 하나는 잘 만드
는구나!” 하며 칭찬인지 책망인지 깜짝 놀라셨던 어머니 생각이 났다. 너무
도 부족했던 며느리였는데 여기까지 오다니…
넓은 마당에는 큰 보름달이 걸렸고 수많은 별들이 하늘에 매달렸다. 막내 시
동생은 장작불 위에 고기를 구우니 아이들이 젓가락을 들고 몰려든다. 둘째
는 천체망원경을 조립해서 달을 따다가 애어른 할 것 없이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목사의 길을 꿈꾸는 나의 아들은 어느새 아이가 되어 조카들을 리드하
며 마당에서 뛰논다. 그 순간 지난 세월이 영화처럼 스치며 “아!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라는 고백이 보름달만큼이나 내안에 가득 차올
랐다.
아
들도 기쁨이 넘쳤나보다. 갑자기 전등을 비춰주며 “모두 나와 춤추세
요!” 하는 것이 아닌가. 리듬을 맞추어 주는 아들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일
을 멈추고 춤을 추었다. 아랫동서가 따라나와 나보다 더 신나게 추었다. 두
목사 사모의 얼굴이 달빛아래서 더욱 충만했다. “형수님, 그런 모습 처음
봤어요!” 하는 시동생 목사가 크게 웃는다. 절구질을 하시는 어머니도 춤추
시는 듯 했다. 아이들 얼굴에도 웃음꽃이 번졌다.
다음 날 우리 가족의 추수감사 예배를 드렸다. 남편은 시편 말씀을 통하여
감사로 제사를 드리자며 모두 한 가지씩 감사를 나누자고 했다. 맨 마지막으
로 사랑하는 나의 어머니는 무릎을 꿇은 채 “나는 지금 너희들의 이 모습
이 그 무엇보다도 감사하다!”고 하셨다.
평생 무릎으로 사신 그분의 감사의 내용은 놀랍게도 20여 년 전에 은혜를 구
하며 믿음으로 그린 우리 가족의 그림이었다. 그것은 우리 가족이 하나님께
감사하는 그의 경건한 백성으로 세워져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이삭을 주워 살던 나오미와 룻이 속량자 보아스를 만나게 하시고 그 후손을
통하여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질 왕조시대
가 열리게 하셨다. 하나님의 마음
에 가장 합했던 다윗 왕이 그리고 우리를 속량하신 진정한 왕 예수그리스도
께서 오셨다.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 왕을 낳
으니라.’ 그리고 그 족보의 마지막에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
라’고 기록하고 있다(마 1:5,6,16).
설교를 마친 후에 오히려 나는 그 은혜의 세계에 더 빠져들었다. 그 두 여인
의 이야기는 끝난 것이 아니라 이미 어머니와 나의 삶속에서 이어져왔고 앞
으로도 계속된다는 것이 믿어졌기 때문이었다.
두 여인 이야기로 마음 설레어
부모와 고향을 떠나 온 룻과 같은 나의 외국인 며느리와 나를 상상 속에서
융판에 붙여본다. 그리고 앞으로 펼쳐질 은혜의 이야기를 그려보며 다시금
마음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