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바뀐 자리_이영란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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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바뀐 자리

이영란 사모_좋은소식교회

“이 가을과 함께 주님의 마음으로 속속들이 채워주시길”

여름이 떠나고 가을이 들어오는 때에 내 안에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강아
지 한 마리 때문이었다. 폭염의 막바지 교회수련회를 앞둔 중요한 때에 한바
탕 소동이 있었고 모든 것이 엉망이 될 뻔했는데 오히려 자리가 잘 정돈되
는 계기가 되었다. 예기치 못했던 큰 수확이다.

한바탕 소통 일으킨 강아지 사건

수요일 예배 전에 한 성도가 강아지를 안고 들어왔다. 반갑게 맞으면서도 내
심 걱정이 되었다. 키우지 않을 것이라고 했지만 그녀의 마음이 심상치 않았
기 때문이었다. 어느 새 교회당에 나와 돌아다니는 강아지를 보다가 깜짝 놀
랐다. 배설물 때문이었다. 나보다 더 화들짝 놀란 그녀가 얼른 치웠다. 갑자
기 머리가 혼돈스러워졌고 강한 거부감이 들었다. 
직장에 다녀야 하고 교회에서 이틀을 자면서 새벽기도를 하는데 생각 없이 
받아온 것 같았다. 어떻게 키우겠냐고 
빨리 주라고 했다. 그녀의 형편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녀를 위한 최선의 해결이라 생각했다. 강요 아닌 강요를 했
다. 그러나 강아지는 계속 교회에 왔고 그녀의 직장에도 갔다. 그 때만 해
도 그 애정이 얼마나 큰 것인지 몰랐다. 
한번은 예배 중에 다른 성도에게 강아지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목사에
게 꾸중을 듣게 되었다. 결국 압박에(?) 못 이겨서 강아지를 주고는 다시 찾
아오는 것을 번복하다가 모욕을 당하게 되었다. 원래대로 모든 것은 돌아갔
지만 해결은 커녕 상실감과 수치가 원망으로 증폭되고 있었다. 
새벽예배 때 하나님께서는 빌립보서를 통해 자기를 비워 종이 되신 주님을 
본받으라는 말씀을 계속 하셨지만 귀에 스쳐지나갔다. 그런데 주일 오후 제
자훈련 시간에 내 생각에 전환이 일어났다. 공부 중에 갑자기 귀가 열렸고 
마치 나에게 말하는 것 같았다.
그리스도인들의 교제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진정한 교제는 
상호의존과 공감과 자비를 반드시 경험하게 되며 그것은 충고를 하거나 빠르
고 표면적인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문제는 우리가 문제를 급
하게 해결하려고 것이며 공감
이 메마르는 이유는 우리가 자신의 문제들에 사
로잡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아, 그렇다면 그녀가 아닌 내가 문제였
단 말인가!” 
그런데 바로 이어 그룹토의 시간에 그녀가 상한 감정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해받지 못한 마음을 토로하며 간섭받는 작은 교회의 피곤함까지 피력하고 
있었다. 우리교회의 가족 됨을 늘 감사하며 충성스럽게 섬기는 성도였기에 
숙연해졌다. 그 순간 이 모든 상황이 자비와 공감이 없었던 나 때문에 일어
났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다음 날,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갔다. 강아지 사랑 운운하며 깊
이 이해하지 못하고 상처를 준 나의 모습을 보게 하셨다. 오래전 남편과 사
별하고 일 때문에 자식과도 떨어져 지내는 중에 강한 애정을 느낄 수밖에 없
었다. 그것도 모르고 키울 형편도 아니면서 데리고 왔다며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것은 치명적이었다.
아무리 합리화를 하려 해도 나의 잘못을 피할 수 없었다. 주의 일을 한다면
서 책임과 분주함 속에서 정작 주님은 내안에서 멀어졌고 내가 나의 주인이 
되어 있었다. 성도를 섬겨야 할 내가 주인의식에 젖어있다는 것과 그녀를 교
회의 
일군으로서 더 비중을 두었다는 것을 정말 몰랐다. 
우리를 섬기기 위해 종으로 오신 주님이 계실 자리를 점점 내가 차지하고 있
었으니 진심으로 성도를 섬길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뒤바뀐 나의 자리
를 보게 하시니 마음을 찢는 탄식이 나왔다. 
다음 날, 나는 그녀에게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고백했다. 성령께서 우리들의 
마음을 녹여주셨고 그녀 또한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며 이전보다 더 온전
케 우리의 관계를 회복시키셨다. 나는 양 인형을 슬그머니 그녀에게 내밀었
다. 강제로 빼앗았다고 생각한 강아지 대신이 될까 싶어서였다.
이틀 뒤 우리 모두는 가평 ‘시간이 멈추는 마을’이라는 곳으로 날개를 단 
듯이 떠날 수 있었다. 힘들었던 시간을 뒤로하고 행복해 하는 그녀의 모습
을 보니 감사가 넘쳤다. 
소감을 나누는 중에 요한일서 말씀 중 ‘세상을 사랑치 말라’는 의미를 깊
이 깨달았다고 하니 ‘혹여나 자기가 강아지를 너무 사랑했다는 것을 깨달
은 것이 아닐까’ 하며 속으로 웃었다. 내년에는 2박3일을 하자고 덧붙이는 
말에 우리는 한바탕 소동만큼이나 크게, 아니 그것을 완전히 불식시키고도 
남을 만큼 한바탕 속 
시원히 웃었다. 수련회를 가지 않겠다고 하여 찬물을 
끼얹던 그녀가 아니던가!
그 소동이 잠잠해지기까지 힘들기도 했지만 오히려 내가 있어야 할 내 자리
를 되찾게 되어 정말 기쁘다. 종이 주인의 자리에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던 
여름! 여름이 자리를 내어주듯 나도 나를 비우고 주님께 자리를 내어드린
다. 하루하루 들어오는 가을과 함께 주님의 마음으로 나를 속속들이 채워주
시니 이보다 더 큰 수확이 어디 있을까!

내 자신의 마음 자리 비우는 계기돼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
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빌 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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