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김이 오르는 목욕탕에서
김영자 사모_채석포교회
“내가 먼저 마음 열 때 행복감 느끼게 돼”
봄이 되면서 밤낮의 심한 기온 차이로 뿌연 안개가 시야를 흐리게 하지만 안
개가 걷히면서 따스한 햇살이 환하게 비추고 있습니다.
온천 풍경 이제는 익숙해져
베란다에 있는 천리향이 꽃망울을 피운지가 오래되었는데 변덕스런 날씨로
인하여 활짝 꽃을 피우지 못하고 따뜻한 볕을 기다리고 있어 나의 관심을 갖
게 되었습니다. 봄볕에 두꺼운 외투를 벗고 가벼운 옷을 입으면서 겨우내 묵
은 먼지를 털어 내기위한 청소를 해야겠다고 계획을 세워봅니다.
대동강 물도 풀린다는 우수가 지난 지금 마을에서는 고추씨를 묘판에 심어
일년 농사를 준비하고, 어부들은 봄 바다에 꿈을 갖고 출어 준비에 한창 바
쁜 나날을 보냅니다.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작년의 유류 피해의 후유증으
로 고기가 이곳 바다를 떠나고 없어서 빈 그물로 돌아오는 날이 많다고 합니
n다. 그래도 걱정을 하면서도 매일 매일 새로운 희망을 가지고 바다에 그물
을 내립니다.
직장인들에게 휴가가 있듯이 농어촌에서도 농한기 중이어서 아직은 여가를
즐기고 있습니다. 동네에서 반상회 및 여러 종류의 친목계가 있어 여기 저
기 여행을 다녀오기도 합니다. 마당발인 김 집사님께서는 제주도를 10번이
나 다녀오셨다며 환하게 웃으시기도 합니다. 교회에서는 성도들과 같이 먼
곳으로 여행은 갈 수 없지만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온천이 있어 어른들
을 모시고 가끔씩 다녀옵니다.
처음 집사님 한 분이 같이 온천을 가자고 했을 때 너무 난감했었습니다. 성
도와 같이 목욕을 한 일도 없었거니와 그 누구하고도 목욕탕에 간 일이 없었
기 때문입니다. 단체로 온천에 갈 일이 있어도 몸 상태가 안 좋다고 양해를
구하면서 피했습니다. 몸에 무슨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아는 사람들
에게 나를 보인다는 것이 부끄러워서였습니다.
채석포에 처음 왔을 때 어느 날 가까운 곳에서 야외예배를 드리고 온천에 가
기로 했습니다. 약속의 날이 되기 전에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핑계를 대자
니 성도들을 사랑한다고 말로만 하고 같
이 옷 벗는 것이 부끄럽다고 할 수
도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회개의 기도가 나왔습니다. 목욕조차도 같이 할
수 없었음이 교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약속의 날이 왔습니다. 젊은 여자 집사님들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허
리가 불편하고 관절염으로 고생하시는 연로한 집사님들을 모시고 여탕의 문
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옷을 벗고 어른들을 도와서 자리를 잡고 머리를 감
겨 드리고 앙상하게 뼈만 남은 몸을 씻겨 드리면서 회개와 기쁨의 눈물을 흘
렸습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같이 온 집사님들도 있었지만 나에게 몸을 맡긴 어른들
은 편안하고 고맙다고 몇 번씩 칭찬했습니다. 칭찬받기 위해서 한 일이 아니
고 내 자신을 깨치기 위한 행동이었는데 송구스러울 뿐이었습니다. 여러 사
람의 등을 밀어주다보니 팔이 아프고 힘이 들었지만 너무나 기뻤습니다. 그
일을 시작으로 성도들이나 아는 사람들과의 목욕이 자유로워졌습니다.
연세가 많으셔서 남의 도움을 받지 못하면 자유롭게 목욕탕에 갈 수 없는 어
머니를 찾아 갔습니다. 목욕탕 안에 있는 긴 의자에 어머니를 눕히고 몸을
돌려가며 닦아 드렸습니다. 90세가 넘
어 힘이 없으신 어머니의 휘어진 몸과
앙상한 뼈만 있는 어머니를 보며 자꾸 내 몸에 물을 뿌렸습니다. 눈물이 보
이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바쁘다는 이유로 잘 찾아뵙지도 못하고 그렇게 당당하며 건강했던 어머니께
서 야윈 몸을 딸에게 맡기고 있는 모습에서 어머니에 대한 나의 사랑이 전달
되었나 봅니다. 딸이 어머니의 몸을 닦아 드린 것이 당연한데 나에게 고맙다
며 앙상한 손으로 내 손을 잡았습니다.
어머니의 양수 속에서 열 달을 있다가 세상에 나오는 인간은 누구나 물을 좋
아한다고 합니다. 갓난아이들은 몸에 물을 묻혀 주기만 해도 잠을 잘 자는
것을 보았습니다. 남편과 나도 가끔 채석포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예산군
덕산리에 있는 온천에 갑니다.
우리가 있는 교회의 주위는 해송만이 보이는 이곳에서 계절을 느낄 수 없는
것들을 가는 길목들에서 보여 지는 초목들로 인해 봄이 오는 소리도 듣고 가
을의 황금빛 단풍을 보기도 하며 하얀 눈발을 즐기기도 합니다. 온천장 주인
인 권사님께서는 목회자와 가족들에게 온천 이용료를 수년이 흘러도 변함없
이 3000원만 받는 곳이 있습니다.
목욕을 할 때 많은 것을 생
각하게 합니다. 대부분의 여자들은 이태리 타올
로 몸을 문질러 때를 벗깁니다. 몸의 때를 벗기면 시원하고 개운 하듯이 내
영혼의 때도 다 벗겨지기를 원하면서 기도를 합니다. 나의 말 한마디로 인하
여 상처 받았을 영혼들과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게으른 삶을 살았던 그 모든
것들을 낱낱이 토설해 보기도 합니다.
목욕할 때는 자유와 평등을 느낍니다. 젊은 사람들의 몸을 보며 나의 젊은
날을 돌아보기도 하고 구부러진 허리와 앙상한 어른들에게서 나의 미래를 보
기도 합니다. 누구에게도 방해 받지 않는 그 곳에서 일장춘몽 같은 많은 계
획과 도전도 꿈꾸어 봅니다.
손이 닿는 곳은 때를 벗길 수가 있는데 손이 닿지 않는 등이 문제입니다. 마
트에서 혼자 등을 밀 수 있는 효자손 같은 것을 샀지만 어딘가 모르게 부족
했습니다. 그날 이후로 나의 굳어진 입을 열기 시작하여 혼자 오신 분을 찾
아가 “등 좀 같이 밀까요?” 하고 먼저 등을 닦아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혼자서 열심히 때를 다 밀고 등을 밀지 않으면 개운치가 않았는데 내가 먼
저 입을 여니까 상대방과 내가 기뻤습니다. 내가 조금 힘들어도 남의 등을
밀어 주고 온
날은 뿌듯함으로 행복했습니다. 사모세미나와 총 동문회에서
많은 말씀을 듣고 부질없는 것에 연연하지 않고 내가 하나님 앞에서 올바르
게 살고 있는지 내 신앙을 반추해보며 더 가까이 하나님을 사랑하겠다고 다
짐도 해봅니다.
효자손만으로는 2% 모자라
요즈음 같이 하루 종일 안개로 인하여 햇빛보기 힘든 날에는 몸도 찌뿌드드
하고 기분이 우울할 때면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목욕탕에 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