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석포에서 온 편지
저 높은 곳을 향한 발걸음
김영자 사모_채석포교회
“산에 오를 때는 힘들지만 정상의 기쁨 누리는 법”
햇살과 볕이 많이 누그러져서인지 사람의 따뜻한 온기가 그리워지는 계절이
성큼 왔습니다. 농촌의 가을밤은 풀벌레들의 연주로 시작됩니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풀벌레소리가 싫지만은 않습니다.
가을을 알리는 풀벌레 소리
여름을 다 보내고 9월에 늦은 휴가를 다녀왔습니다. 몇 년 전에 무모하게 도
전한 대청봉의 정상에 오르지 못한 기억이 있지만 그 때보다는 시간적인 여
유를 갖고 남편과 같이 지리산 천왕봉에 오르기로 했습니다. 가장 쉽고 가까
운 길을 선택한 길이 중산리의 법계사 방향이었습니다.
급격한 경사면을 오르면서 그곳에 가기 전에 뒷산에 한번 오르지 못한 것이
후회되기도 하고 너무나 초보인 산행이라 겁도 낫습니다. 뒤따라오는 등산객
들이 성큼성큼 앞지르는 것이 부럽기도 했지만 앞만 보고 가기로 했습니다.
가끔씩 걸음을 멈추고 여유롭게 하늘을 올려다보고 감상하면서 행복감을 느
꼈습니다.
산에서는 처음 만나는 사람들끼리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나눕니다.
같이 인사를 나누면서 많은 것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인사말까지도 인색했
던 나를 발견 할 수가 있었습니다. 산에 오르며 “안녕하세요?” 하고 연습
을 해 보면서 웃었습니다.
힘들게 정상에 올랐습니다. 운무의 바다가 몰려와 온 산을 점령하였습니다.
숲도 바위도 능선도 계곡도 짙은 안개에 둘러싸여 앞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잠깐 앞이 보이기 시작하자 그 감격을 정상에 오른 사람들과 같이 나누며 즐
거워했습니다.
천왕봉 정상에 오른 기쁨을 간직하고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하산을 할 때는
장터목 방향을 선택했습니다. 정상을 향해 앞만 보고 올라 왔기 때문에 주
위 환경을 돌아 볼 수 없었으나 내려 올 때는 여유를 갖고 주변 경치를 감상
할 수 있었습니다. 나무마다 자기 색깔로 몸을 단장한 모습들은 정말 아름다
웠고 제석봉의 고사목은 신비감까지 들었습니다.
여행은 가끔씩 인습과 습관적인 삶에서의 탈출로 구태의연함과 무기력함 속
의 내 자신을 재발
견하게 만듭니다. 무리한 산행으로 인하여 불편한 걸음걸
이와 발가락 여러 개가 시퍼런 멍으로 치장을 했지만 마음은 산행의 즐거움
으로 부자가 되었습니다.
넉넉하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텔레비전을 시청하고 있을 때 모 여자 탤런트
의 자살이 보도되었습니다. 믿어져지지가 않았습니다. 드라마나 탤런트에게
관심이 없던 남편도 놀라는 표정이었습니다. 아직 젊은 나이에 더 많은 연기
를 통해 우리들에게 삶의 단편들을 보여 줄 수도 있었는데 너무나 아쉽습니
다. 더구나 악성 댓글로 인하여 마음에 상처를 입고 죽음에 이르렀다는 사실
이 우리를 분노하게 만들었습니다.
남겨진 가족과 아이들이 불쌍하다고 생각하면서 나의 지난 일들이 생각났습
니다. 나에게도 삶의 무게가 너무나 무거울 때가 있었습니다. 이웃들에게 외
면당하고 지쳐있을 때 같이 기도하며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항상 곁에서 지
켜 주며 돌보아 준 권사님이 계십니다. 신앙의 연륜은 나보다 훨씬 짧은 분
이셨지만 사랑을 실천하는 그러한 분이었습니다. 자신에게는 매우 엄하고 인
색하시지만 주머니에 돈이 있기만 하면 주위를 돌아보는 분입니다.
30대 때 몇 년 동안
같은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많은 사랑의 빚을 졌
습니다. 나보다 10년 연상이지만 소녀 같으면서 항상 미래를 꿈꾸며 사랑을
실천하며 그리스도의 향기를 아름답게 풍기는 분이십니다.
그 분을 생각하면 박꽃이 생각납니다. 밤에 모든 꽃들은 제 모습을 감추고
말지만 박꽃만은 어둠 속에서 그 자태를 드러냅니다. 순수와 소박함 속에 아
름다움이 있습니다. 나도 그 분을 닮고 싶어합니다.
70세가 가까이 오지만 크로마하프 연주단으로 여러 곳을 방문하여 봉사하고
이제는 오카리나 연주까지 하시면서 그늘진 곳과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곳
을 찾아 사랑을 전하면서 문득 내가 보고 싶다며 이곳을 찾으시는 조애자 권
사님이 그리워집니다.
그리고 또 한 분이 있습니다. 나에게 은혜를 져 버리지 않는 사람으로 일깨
워 준 부부가 있습니다. 내가 어렵다고 한마디도 안 했지만 남편 손에 고기
몇 근과 하얀 봉투를 손에 들려주면서 눈물을 글썽이던 영심 사모님, 친정
부모님들이 돌아 가셨을 때 식구들이 많이 있으니 오지 말라면서 시어머님
이 돌아가시면 가족이 없으니 같이 밤을 새우자면서 눈물을 글썽이던 그 모
습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외롭고 어려울 때 항상 혼자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이러한 분들이 내 곁에 자
리하고 있어 역경들을 견디고 지금 이 자리에 있습니다. 어떤 이는 인생은
연극이라 했습니다. 기쁨도 있고 슬픔도 있는, 태풍이 일 년 내내 부는 것
이 아니고 언젠가는 지나가듯이 우리들에게 있는 슬픔이나 고통도 지나갈 것
입니다. 그러면서 나의 입술의 찬양과 기도가 기쁨이 되어 내 삶의 흔적이
될 것입니다.
요즈음에 들려오는 뉴스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상심하고 지쳐있을 때 나
또한 지난날의 나를 돌아보며 전도자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
든 것이 헛되도다’라는 말씀이 더 이해가 됩니다.
많은 사랑을 사람들에게 받고 있지만 그 사랑을 모를 때가 많이 있었습니
다. 그리고 고난을 받을 때 나만 겪고 있다고 생각할 때도 있었습니다. 지금
은 고난을 통해 하나님께서 나에게 역사하실 그 무엇이 기대되기도 합니다.
고난중에도 하나님 역사하셔
내 인생의 여정이 다 끝날 때까지 한 걸음 한 걸음 저 높은 곳을 바라보며
묵묵히 걸어 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