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구나무 그늘 아래서>
설날에 쓴 ‘부모님 전상서’
추둘란_수필가,홍동밀알교회
“신앙 안에서 가족 관계 새롭게 정립돼”
이번 설에 특별한 편지를 써서 친정 부모님께 드렸습니다. 마흔 살이 되도
록 부모님께 서운함을 품고 지낸 것에 대하여 용서를 비는 편지였습니다.
부모님께 용서 비는 편지 써
편지를 쓰게 된 것은 작년에 성경공부를 하면서 하나님이 내 속에 있는 뜻밖
의 ‘견고한 진’을 보게 해 주셨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로 부모님께 용서
를 빌어야 한다는 마음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부모님 앞에서 차마 말로 할 수는 없을 것 같았습니다. ‘지금까지
이런 마음을 숨기고도 잘 살아왔는데, 이걸 어떻게 이야기 하나? 이 나이에
무슨 사죄며 용서란 말인가?’ 너무 망설여져서 목원들에게 이야기했더니 말
로 못하겠으면 편지를 쓰는 것은 어떠냐고 하여 그리하게 된 것입니다.
친정에 가서, 하룻밤 잘 지내고 이틀째 밤이 되었습니다. 언니와 남
동생 식
구는 이미 각자 집으로 가버리고 우리 식구만 남았습니다. 편지를 드려야 하
는데도 그때까지 그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어떻게든 상황을 피해 보려 했
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일을 위해 기도해 온 남편이 얼른 편지를 드리라
고 강경하게 말했습니다. 이미 어머니께 넌지시 예고까지 해놓은 상태였습니
다. 할 수 없이 용기를 내어 편지를 드렸습니다.
아버지는 소리내어 편지를 읽었습니다. 옆에서 듣고 앉아 있던 내가 어느새
울고 어머니도 울고, 눈물이 그칠 줄 몰랐습니다.
편지를 다 읽고 나서 아버지가 한 첫 번째 말씀은 “고맙다”였습니다. 그리
고 “너도 나이 마흔이 되어 자식들을 키우고 있는데 이런 일로 용서를 빌
고 말고가 어디 있느냐?”고 하였습니다.
어머니도 속내를 털어놓았습니다. 절과 점집을 다니며 사주니 팔자니, 삼재
니 하면서 늘 좋지 않은 것을 이야기하던 어머니가 더 이상 그런 저주가 내
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하였습니다. 결혼 초에 “네가 지
금은 큰소리쳐도 언제든 보따리를 싸서 돌아올 테니, 미리 딴주머니를 차거
라” 하였던 어머니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알
아서 하거라. 네 말마따나 하나님이 복을 주시겠지”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어쨌거나 너는 교회에 잘 갔다. 교회에 가서 성격
도 많이 달라지고 좋아졌으니…”라며 변화된 제 모습을 인정해 주었습니
다. 어머니는, 싹싹하지 못하고 늘 풀이 죽어 있는 나의 모습을 좋아하지 않
았는데, 지금은 그런 모습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오랜만에 참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아버지의 어린 시절부
터, 우리 삼남매를 낳고 키우신 이야기까지 자세하게 이야기하였습니다.
이렇게 편지 한통 덕분에 함께 울기도 하고 아버지, 어머니의 진심어린 이야
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두 분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그동안 내 눈에 오
해의 꺼풀이 씌어져 있었는데도 그것을 모르고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
다.
어렸을 때 서운함을 품고 바라보던 아버지는 일만 알고 가족을 모르는 분이
었습니다. 경찰관이었던 아버지는 휴일도 없이 일하였고 삼남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해줄 줄 몰랐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뇌물을 써서라도 진급을 하는
데, 아버지는 그런 융통성도 없어 보였습니다. 나
그런데, 이번에 아버지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니 ‘우리 아버지
가 이렇게도 사리분별이 정확하고 가족을 향한 책임감이 강하며 매사에 정직
하실 수 있다니…’ 하고 놀라게 되었습니다. 뇌물을 줄 수도 받을 수도 있
었지만 흔들림 없이 바른 길을 걸어온 것이 사람 앞에서도 자랑할 만하지
만, 하나님 앞에서도 떳떳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 아버지를 오해하며 살아온 것이 참 부끄러웠습니다. 아마도 하나님이
‘견고한 진’에 대해 가르쳐 주지 않았다면 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도 오해와 서운함을 풀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니, 원인 모를 짜증과 분노,
자격지심, 오해와 편견이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는 채, 매사에 꼬이기만 하
는 인간관계에 힘들어하면서 스스로를 고통에 빠뜨리며 살 뻔했습니다. 성경
공부를 하면서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인도해 주신 하나님이 이번
설에는 나와 가족의 관계까지도 바르게 세워주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다음 주에 시어머니와 친정 부모님을 모시고 제주도 여행을 다녀오려 합니
다. 짧은 여행이지만 그동안 마음으로나 손발로나 제대로 섬겨 드리지 못한
데서 돌이켜서 마음을 다하여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 싶기 때
문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일도 된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직업상 순직한 동기들도 많은데 하나님은 아버지를 그런 위험에서 구해주셔
서 정년퇴직하게 해 주셨고, 어머니를 자궁경부암에서 건져주셔서 다시 건강
하게 해 주셨습니다. 이 모두가 두 분을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시간을
연장시켜 주신 게 아닌가 합니다.
부모님 기쁘게 해 드리고 싶어
열두 살 어린 내 귀에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하는 말씀을 새겨 주셨고, 그 약속대로 지금 그 일을 이루시기 위
하여 나와 남편을 사용하시는 하나님께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찬양을
올려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