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부함과 궁핍함’은 생각하기 나름_민경희 사모

0
10

아름다운 생각들

‘풍부함과 궁핍함’은 생각하기 나름

민경희 사모_평안교회

사학법 개정 때문에 교계에 한차례 큰 회오리바람이 분 것 같더니 이제 교회
가 세금 문제로 다시 흔들리는 것 같다. 교회가 세상의 이목을 끄는 것이 있
긴 있는 모양이다. 

세상 일 모두가 남의 일 같지 않아

미국에 있는 딸네 집에 가 있는 동안에도 몇 가정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기도할 일이 있었다. 해마다 있는 일이지만 늘 신기한 것은 그 이야기
들이 어떻게 나와 연관이 될 수 있었는가 하는 것이고, 그보다 더 신기한 
건 목회자 때문에 심령이 상한 성도를 꼭 만나게 되는 일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미안하다고 사과를 한다. 그럴 때면 사모님으로 불리는 자
리가 얼마나 부끄러운지 모른다. 사역자들이 하는 잘 못들 때문에 우는 성도
들을 위로하면서 정말 미안함을 가진다. 그 뿐인가 남편이 목사라는 직분을 
갖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지 모른다. 
성도들이 울면서 전
하는 말들은 실로 여러 가지다. 목사가 아내 아닌 다른 
여자가 있다고, 목사가 너무 많은 돈을 쓴다고, 관리비에 전화요금, 도서구
입비, 차량유지비, 자녀교육비에 판공비까지 드리는데 사모님은 목사가 받
는 사례를 어디에 쓰는지 모른다고, 예배당을 크게 지으려고 너무 큰 욕심
을 내서 짐이 무겁다고, 돈 많은 성도의 눈치를 살피고, 세상에서 힘있는 성
도와 관련된 말씀으로는 아예 설교도 못한다고…. 
30년 넘게 교회를 헌신적으로 섬겼는데 목사가 사주는 밥 한번을 못 먹어봤
다는 성도에게 점심 대접을 하고 커피까지 사주고 한 숨을 쉰다. 마주 앉아 
웃고 있지만 얼굴 근육은 아마도 울 때 쓰이는 근육일 거다. “그래요, 내
가 대신 사과하고 내가 대신 사드릴 테니 많이 먹고 힘내세요. 나중에 또 만
나면 더 맛있는 거 더 많이 사드릴게요.”
우리는 상가주택 3층 전셋집에 산다. 한동안은 전세에 얼마 월세를 보탰었
다. 그래도 행복하다. 전에 살던 집은 장마철이면 거실이며 안방에 비가 줄
줄 샜다. 플라스틱 대야며 바가지에 쓰레기통까지 동원하고도 수건이 열 개
도 넘게 필요했지만 잠시도 우리 가족의 행복을 그런 것으로 잃
지는 않았
다. 
비가 새는 건 365일 중에 겨우 10일 정도다. 성도들이 힘닿는 대로 마련해
준 안식처다. 사랑하는 가족이 함께 하는 보금자리다. 험한 모양의 전셋집이
라 이번 이사 온 집도 얼마나 큰 행복이었는지는 이미 자랑했었다. 어떤 이
들은 말한다. 사모님은 큰 집도 살아봤고 돈도 많이 써봤고 그래서 원도 없
이 이제 교회 일만 하니까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다고. 물론 그래서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50년대에 자가용으로 초등학교를 통학했던 풍부함이 혼인 이후에도 
이어졌었는데 그러나 믿음과 함께 왔던 궁핍함은 쌀이 떨어져서 아이들 저녁
을 지어 먹이고 ‘우리는 금식하라고 하시나 보다’ 하고 남편과 무릎을 맞
대고 감사 기도를 올렸지만 그것은 형제도 등을 돌리는 비천함이었다. 
내가 아는 말씀은 분명하게 말한다. 바울 사도는 학문 높은 로마인의 권세
를 누려봤기 때문에 감옥에서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일을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
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
다고, 어떤 형편에서든지 자족하
기를 배웠다고 비결을 체득한 기쁨으로 당당
하게 기뻐하라고 권면하는 것이다.

남편은 젊은 날 사업을 하면서 거듭남의 특별한 체험을 했다. 70년대 중반
에 에어컨이 달린 승용차를 기사를 두고 타고 다닐 때나 버스 값 동전을 계
산하며 아들 손을 잡고(사립학교를 보내서 동네가 아니었고, 후에 공립학교
로 전학했다) 출근하던 길이나 행복한 추억은, 아니 추억에 묻어나는 행복
한 마음은 다르지 않다. 오히려 아들 손을 잡고 대화를 나누며 가던 그 날들
이 아들과 가장 가깝고 행복했던 것 같다고 한다. 
호텔을 전전하며 맛있는 것을 찾아먹던 시절보다 오히려 우리 아이들은 기도
하고 오랜만에 먹게 된 햄버거의 추억을 더 생생하게 기억하고 행복해 한
다. 세 아이 모두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의 스쳐 지나가
는 생각까지도 감찰하신다는 것을 경험하던 그 시절을 더 행복하고 소중하
게 간직하고 있다.
풍부함이나 결핍함의 대조가 맞을 것 같은데 바울 사도는 먼저 풍부함과 비
천함이라고 대조한다. 그 두 가지 상황을 모두 접했던 사람들은 알고 있다. 
결핍한 것은 곧 비천함인 것을. 배부름과 배고픔, 풍부와 
궁핍이 우리에게 
다른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성도로서 자족하지 못하는 것이다. 일체의 비결
을 아직 터득하지 못한 것이다.
배고픔과 비천함 가운데 사역자들을 두시는 것은 그 곳을 통과하면서 자족하
는 것을 알게 되기를 원하시는 거다. ‘두고 봐라, 내가 잘 되기만 하면, 내
가 힘이 생기고 풍부하게 되기만 하면….’ 결코 그렇게 참고 견디는 기간
이 아니다. 배고픔과 비천함 가운데서 그리스도 주 예수에 대한 소망을 가지
고 그 소망에 대한 인내를 배우는 거다.
힘들어하는 성도들을 만나면 우리 부부는 ‘맛있는 거 먹자’한다. 밥을 사
는데 제일 많이 돈을 쓴다. 여러 말하지 않고 그저 따듯하고 맛있는 걸 먹
게 하고 손을 잡거나 등을 다독인다. 이미 25년 넘는 세월을 그렇게 보냈더
니 가끔 “어렵던 전도사 시절에 그 때 사주신 갈비가, 피자가… 얼마나 위
로가 되던 지요” 하며 이제는 맛있는 거 사드릴 수 있다면서 연락하는 목회
자들도 있다.

줄 수 있는 마음이 가장 큰 재산

미국까지 가서도 올해도 어김없이 밥값을 제일 많이 썼고, 선물보따리가 트
렁크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주는 것만큼 많이 가진 자이
고 줄 수 있는 자
가 부자라는 사실은 비천한 가운데서 체득한 비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