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잎에 쓴 편지(31)
너무 외로워서
Mrs. Daisy Sung_미국 포들랜드 한인 문화방송실
매 시간마다 매 채널마다 버지니아 공대 총격 사건의 보도로 가득 시간을 메
우는 날이 며칠 째이다. “하나님 맙소사”란 탄식이 나오기도 전에 난감하
여 어디다 초점을 두어야 좋을지 모를 TV 화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어 안타
까움만 가득할 따름이다.
연일 보도되고 있는 총격 사건
건강한 청년, 처음 집을 떠나 기숙사에서 기거하던 아직 젖 냄새가 가시지
않았을 듯한 대학 초년생. 귀한 젊은이들의 사진들이 화면에 지나가는 것을
보니 실감나지 않다. 이번에 희생된 생물학을 전공한 어느 학생은 고등학교
때부터 촉망받으며 댄스팀에 멤버로 활동했고, 또 다른 미국 흑인 학생은 기
숙사 대표였다고 한다. 모든 이들에게 사랑 받던 웃음 가득한 잘생긴 얼굴
의 사진들은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을 말해주고 있다.
미국에 대부분의 큰 대학들은 세계 각국의 학생들이 함께 모여 연구하고 공
부하며 미래의 지도자로 길러내는 학문의 장이다. 바로 이 대학교는 2만 6
천 명의 학생과 7천명의 임직원만으로 작은 시골 도시를 차지하고 있는 워싱
턴 D.C. 가 있는 버지니아 주에 있다.
월요일 아침 일찍 기숙사에 한 여학생과 남학생을 쏘아 죽이고 2시간 이상
기다렸다 수업이 진행되고 있는 건물 2층에 올라가 한달 전과 일주일 전에
산 두 개의 권총으로 그렇게 아주 쉽게 아무 제재 없이 마음먹은 대로 다해
버린 모양이다. 학교는 그 상처의 회복을 위해 이번 주 내내 수업을 취소하
고 얼떨떨한 슬픔을 서로들 위로하며 인터뷰에 임하고 있다.
어떤 부모는 감정을 조절하며 편안한 태도로 “어떻게 화난 마음이나 복수
의 감정이 없느냐?”는 반대 질문에조차 “남의 잘못에 이제 내가 할 바는
아무것도 없다”고 답변한다. 가슴 끓이는 그 범인 생각에 억울해 분통을 터
트리기보다 생전의 딸과의 좋은 기억과 예쁜 모습을 가슴에 간직하고 싶다
는 말이다. 딸을 마지막 한번 또 보게 될 때 그에게 입을 맞추어 주겠노라
고 말을 맺는다.
물론 모두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통곡하며 혼절하는 그런 모습으로 화면
에 비춰지는 일 없
는 담담한 모습은 의아함을 자아낸다. 마음을 추스르고 바
꿔질 수 없는 상황을 빨리 받아들이는 그런 태도는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범인을 생각하기 전에 앞으로 살아갈 날이 남아있는 그 부모들이 안쓰럽다.
부모에 대해 이민 후, 세탁소를 운영하며 중류층으로 사는 한인 이민 가족이
라며 병원으로 입원했다는 말이 잠깐 나오더니 그 가족이 대대적으로 언급되
지 않으니 다행이다. 앞으로 어떻게 살라고… 아무도, 아무의 위로의 말도
할 수 없는 입장이다.
필자는 이러한 문제에는 사회적 책임이 크다고 본다. 물론 개인의 특성과 유
아시절 가정 교육에 영향이 있었음은 부정 못하지만 그는 8살에 세상을 채
알기도 전에 낯선 세계에 던져졌다. 노랑머리들 틈에 혼자 영어를 익혀가며
자신은 남들과 다르다는 인식 속에 어리둥절한 까만 머리의 아이는 많은 혼
동 속에 지냈을 것이다.
생활 전선에 부모는 바빴고 관심과 사랑을 줄 시간도 없이 몇 년이 지나면
서 부모가 배운 영어보다 자신이 더 잘하는 영어로 고립은 이미 시작되었을
것이다. 부모와는 단순한 한국말로만 주고받고, 학교에서도 외톨이가 되는
그런 환경이 주어졌다고
본다. 그와 친구해 줄, 마음을 열고 청소년의 고민
을 듣고 나눠줄 그 누군가가 없었다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이 사회는 내가 발붙일 곳도 없고 나와는 상관없는 온통 모순 덩어리인 세상
이 차라리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을 것이다. 자신보다 잘 나가고 인기
있는 그들끼리만 서로 친구가 되고 어울리며 살지만 자신을 알아 줄 이는 아
무도 없었다. 혹 가끔 손을 내밀어 주는 이도 있었겠지만 이미 병적인 정신
상태에 전문의가 급히 필요한 것을 주변에서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렇게 고립된 이들은 영혼 깊은 곳에 외로움이 크다. 너무 외로워 그런 외
로움을 차라리 자신의 안식처로 삼아 계속 스스로를 더욱 고립시킨다. 암흑
세계, 검은 영과 통하는 정신 세계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주변의 집중적인
관심과 하나님 식의 사랑만이 이들을 치료 할 수 있다. 의사의 처방약이나
상담만이 아니라 실생활에 공동 관심으로 물리적인 실제의 도움과 영적 치료
가 동반되어야 한다.
주목할 것은 어느 사회나 지금도 이와 같이 신음하며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
들이 많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간과할 일이 아니다. 정신차리고 주변의
이
웃들을 살펴보며 특별한 새 제도가 마련되어야 이와 같은 비극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주변 이웃들부터 보살펴 주어야
빈부격차가 심해지는 이때 범인이 돈 있는 사람들을 겨냥하여 적개심을 표현
했듯이 가진 사람들일수록 더욱 각성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