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계대지 않는 꽃 _추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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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계대지 않는 꽃

추둘란_수필가, 홍동밀알교회

이른 아침 된서리가 내리는 날에 사람은 아무도 봄을 느끼지 못하는데 수선
화는 땅속에서도 봄바람을 느끼는지 푸른 잎을 뾰족뾰족 내밉니다. 아무 것
도 없던 곳에 다소곳이 솟아오른 푸른 잎을 보면서 ‘이제 봄 맞을 준비를 
해도 되겠구나’ 생각합니다. 

봄소식 가져 온 수선화

교회 마당에도 해마다 수선화가 핍니다. 다른 꽃보다 먼저 잎을 피우고 꽃
을 피우기에 더 반갑고 살가운 눈길을 보내곤 합니다. 수선화를 줄지어 심어
둔 곳은 교회 지붕을 따라 연결되어 있는 빗물받이 홈통 아래입니다. 빗물
이 내려가는 곳이 따로 있건만 홈통의 가운데 부분이 낡아 녹이 슬자 약하
고 느슨해진 부분으로 빗물이 고여 떨어졌습니다. 
수선화가 있는 자리는 빗물이 떨어지는 자리보다 조금 더 안쪽이라 별 피해
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비가 올 때마다 같은 자리에 계속해서 빗물이 떨어지
다 보니 어느새 흙이 패이기 시작했고 조금씩 경계선이 무너지나 싶
더니 이
내 수선화 알뿌리가 밖으로 나올 정도가 되었습니다.
위험해 보인다 싶어 꽃봉오리가 올라오기 전에 안전한 곳으로 옮겨 주었습니
다. 그런데 미처 옮기지 못한 알뿌리 하나가 빗물에 씻겨 내려갔는지 원래
의 자리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있었습니다. 알뿌리는 바깥에 그대로 나와 있
고 실뿌리는 겨우겨우 흙을 붙잡고 있는데 줄기는 휘어지고 비틀어져 어떻게
든 햇빛을 받아보겠다는 자세였습니다. 그런 자세에서 꽃봉오리를 올리고 노
란 꽃잎을 터뜨릴 채비를 하고 있다는 것이 기적처럼 보였습니다. 불편하고 
힘겨운 그 모습에 마음이 아릴 정도여서 얼른 다른 곳으로 옮겨 주었습니다.
비슷한 일이 한 번 더 있었습니다. 아침에 출근을 하다가 대문 밖에서 이상
한 잎을 발견하였습니다. 감자와 고구마 썩은 것을 내다버리는 곳에 낯선 잎
이 줄지어 피어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흔하게 보는 잡풀도 아니요 그렇다고 
야생화 잎도 아닌 것 같은데, 넓고도 짙푸른 잎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가까
이 가서 들여다보고 그만 입이 떡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튤립이었습니다.
작년 봄 화분에 심었던 튤립의 알뿌리를 캐내어 말리느라고 윗채 마루에 

쳐놓았습니다. 거두어들인다 하면서도 미루기만 하였는데 어느 날 남편이 흔
적도 없이 치워버렸습니다. 알뿌리가 부실해서 이듬해에 꽃을 피울 것 같지 
않았다고 합니다. 틀린 말도 아니다 싶어 되찾을 생각을 안했고 튤립에 대해
서는 까마득히 잊어버렸습니다. 
그렇게 가을이 가고 겨울이 가고 올 봄이 되었으니, 비도 숱하게 맞았을 것
이고 눈과 서리에도 파묻혔을 것이며 꽁꽁 얼기도 하였을 것인데…. 찬찬히 
살펴보니 줄기 속에 봉긋한 꽃봉오리까지 숨어 있었습니다. 놀라움과 기쁨
의 감탄이 한꺼번에 튀어나왔습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핑계대지 아니하고 제 할 일을 해낸 수선화와 튤립을 보
게 된 일이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부활절을 맞이하고 나서야 알았습
니다. 이 꽃들을 통하여 하나님은 잊어버릴 수 없는 비유를 나의 마음속에 
심어 주셨습니다.
고난주간은 특별 새벽기도 기간이었습니다. 평소에 이유가 있어 새벽기도에 
못 나온 성도들도 꼭 나와서 부활절을 기도로 준비하자고 목사님은 말씀하였
습니다. 그러나 나는 핑계부터 찾았습니다. 새벽 기도 갈 시간이면 어김없
이 일어나 엄마를 찾는 둘째 녀석이 
첫 번째 핑계요, 직장을 다녀 피곤하다
는 것이 두 번째 핑계였습니다. 그리고 내 사정을 다 아시는 하나님께 죄송
하다고 말씀드리면 그만한 것은 다 이해를 해주시리라 나름대로 결론을 내
린 것이 세 번째 핑계였습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 구석으로는 하나님한테 벌을 받지 않을까 조마조마한 마
음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상처가 나지 않을까, 아픈 데가 생기지 않을
까, 생각지 못한 어떤 사건이 터지지 않을까 하며 미리 하나님의 징계를 예
상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고난 주간에는 아무런 사고도 사건도 없었습니다. 하다 못해 남
편과 작은 말다툼조차 없었습니다. 그제야 알았습니다. 주님이 택하신 방법
은 징계가 아님을, 수선화와 튤립을 통한 비유임을…. 
“어려운 것 잘 안다. 그러나 핑계대지 아니하고 그 어려움 가운데서도 순종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더라면 내가 얼마나 기뻤을 것이냐? 네가 수선화와 튤
립을 안전한 곳으로 옮겨 심었을진대 나는 어떠하였겠느냐?” 
성경에 나오는 많은 비유들이 묵상을 거듭할수록 참 절묘하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았습니다. 이번에 주님이 나에게 주신 비유도 그러합니다. 해마다 고
r
난주간은 있을 것이요 수선화와 튤립도 꽃봉오리를 피워 올릴 것인데, 내가 
그것들을 볼 때마다 올해 주님이 주신 비유를 어찌 잊어버릴 수 있겠습니
까? 아니 고난주간이 아니더라도 잡지에서든 TV에서든 수선화와 튤립 사진
을 볼 때 주님의 음성이 어찌 기억나지 않겠습니까? 

해마다 변명할 수 없게 돼

실수와 실패의 순간에도 찾아오셔서 잘못을 깨닫게 하시되 징계치 아니하시
고 지혜를 주사 다시 일으키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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