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로 지켜주시는 하나님_추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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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로 지켜주시는 하나님

추둘란_수필가, 홍동밀알교회

설날, 친정에 다니러 간 김에 일부러 짬을 내어 친구 한 명을 만났습니다. 
20년 만에 만나는 친구입니다. 학생회 고등부 때 친구는 회계를, 나는 부회
계를 맡아 일했습니다. 수련회, 야유회, 성가발표회 때면 우리 두 사람은 바
지런하게 움직이곤 하였습니다. 

20년 만에 만난 친구

그런가 하면 여덟 명의 남녀 학생으로 꾸려진 고등부 중창단에서 친구는 소
프라노였고 나는 알토였는데 성량이 풍부한 친구 덕택에 나 또한 흔들리지 
않는 음정을 낼 수 있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일찌감치 십대의 나이에 친구
와 나를 사용하신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우리 두 사람의 입술로 드리는 찬양
뿐 아니라 손과 발, 심지어 우리들의 삶 자체로 하나님께 아름다운 하모니
를 올려드리기를 원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스무 살, 서른 살 그리고 마흔 살을 코앞에 둔 나이가 될 때까지 
친구와 나의 삶이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고 서로에게 향기를 
내었냐면 전혀 
그렇지 못했습니다. 친구는 집안 형편으로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고 거기서 
친구와 나의 연결고리는 끊어졌습니다. 대학도 가고 대학원에도 진학했던 나
는 도시에서 새 친구들을 만나고 새 생활에 적응해 가느라고 고향의 친구를 
찾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그 즈음의 나는 하나님을 떠나 마음에 좋을 대로 
살고 있었기에 공통의 관심사가 없는 친구를 찾을 까닭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눈앞의 삶만 바라보며 살아가던 시기에 하나님은 각자에게 합당한 광
야의 체험을 주셨습니다. 내게는 장애아의 엄마라는 십자가를 주셨고 친구에
게는 남편과의 별거라는 아픔을 주셨습니다. 아마도 서른 초반에 우리 두 사
람이 하나님께 올려드렸던 것이 있다면 눈물로 범벅된 불평이었을 것입니
다. 그래도 하나님은 그 불협화음이 언젠가는 아름답게 성숙된 삶의 하모니
로 바뀔 것을 이미 알고 계셨을 것입니다.
10미터 떨어진 곳에서도 친구를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둘 다 인사로 건넨 
첫 마디가 “그대로네”였습니다. ‘그대로’라는 말이 얼마나 따뜻한 말인
지 그날 새삼 알았습니다. 햇살 잘 드는 찻집 창가에 앉아 친구 얼굴을 찬찬
히 
들여다보니 그대로일 수가 없는데 친구는 20년 전의 나를 대하듯 ‘그대
로’ 대해주었습니다. 나 또한 20년의 시간을 끊어내 버리고 기억 속의 친
구 모습 ‘그대로’를 만나고 있었습니다. 말하는 짬짬이 십대 적의 장난기
어린 어투와 표정이 언뜻언뜻 스쳐 지나가는데 그제서야 하나님이 친구와 나
를 ‘그대로’ 지켜주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가장 옳은 판단만 내렸고, 가장 좋은 것만 선택했고, 가장 잘 살기 위해 발
버둥쳤지만, 그러느라고 우리의 얼굴에는 자잘한 주름마저 잡혔지만 그 모
든 것이 양처럼 어리석게 제 갈 길로 간 것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길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은 우리들의 어리석은 모습을 보고 오해
도 하고 상처도 주었지만 하나님만이 우리를 아시고 우리 속에 들어있는 가
장 순수한 것을 잃지 않게 하셔서 제자리로 돌아오게 해 주셨다는 것을 알았
습니다.
친구와 내가 정말 다행스럽게 생각하며 좋아한 것이 있습니다. 둘 다 큐티
로 하나님께 개인 예배를 드리고 있고 좋은 목회자를 만나 건강하게 양육 받
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내게 주신 은혜를 친구도 동일하게 누리고 있는 
것이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비록 같은 교회는 아니지만 주일이면 각자에게 허락된 성가대석에 앉아 하나
님을 찬양하고 있음도 감사했습니다. 입술로만 드리는 찬양이 아니라 우리
의 삶으로도 이제는 불협화음의 수준은 벗어난 듯합니다. 친구는 남편과 다
시 만나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습니다. 회계라는 직분을 감당했던 그 손발
로 교회의 사무를 맡고 있습니다. 나는 장애아를 주신 것에 감사할 수 있게 
되었고 다른 장애아들을 섬길 수 있는 비전을 받아 하나님께서 열어주실 길
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비록 경상도와 충청도에서 따로 올려드리는 기도, 개인예배, 성가대 찬양, 
섬김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한 곳에서 울려나오는 이중창으로 듣고 계실 것
을 확신합니다. 세상 풍파 속에서도 친구와 나를 하나님의 자녀로 ‘그대
로’ 지켜주신 하나님만이 그 이중창이 얼마나 진실한지도 아십니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친구에게 계속해서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초등학교 5
학년 큰아들의 전화였습니다. 대화를 자꾸 끊어놓았지만 나는 그것이 귀찮거
나 싫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렇게 자상하게 전화를 받아주는 엄마가 되어 
있는 친구를 
보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습니다. 엄마라는 직분으로 우리 두 사
람은 하나님에게서 받은 사랑의 만분지 일이라도 흉내내며 자식들에게 사랑
을 퍼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상한 엄마 모습 보여줘

친구와 나는 기도제목을 나누고 헤어졌습니다. 언제 다시 만날지 기약하지 
않았으나 천국 백성으로 이 땅에서 하나님 은혜 먹으며 살 것을 의심하지 않
기에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손을 흔들 수 있었습니다. 이후로도 친구와 나
를 지켜주실 하나님은 그 손인사의 의미도 다 아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