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좀 봐주세요!” _박신자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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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좀 봐주세요!”

박신자_순동교회 사모

말씀보기 

“가로되 너 보는 것을 책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세데 빌라
델비아 라오디게아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요한계시록 1:11)

크리스천들이 성경을 읽다보면 좋은 현상은 아닌데 더 손이 많이 가는 부분
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책들도 있는 것 같다. 그 주인공이 구약에서는 
레위기, 신약에서는 요한계시록일 것이다. 아마 레위기는 우리의 현실에서는 
낮선 내용들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요한계시
록 같은 경우는 좀 다른 이유가 있는 것 같은데 어떤 특별한 계시를 받은 사
람들만이 요한 계시록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소위 그 뜻을 풀 수 있을 
거라 잘못된 선입견의 영향이 아닌가 싶다. 
계시록(REVELATION)은 폭로, 비밀의 누설 된 것이란 뜻이다. 말 그대로 보여
진, 폭로된 책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책을 뭔가가 감추어진 책으로 잘못 알
고 있다. 
요한계시록을 
바로 이해하기 위한 첫 번째 상식은 요한계시록이 어떤 책인지
를 먼저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인간 세계 속에서 글이라는 매
개체를 통해서 주어졌기 때문에 자연 문학의 형식들의 영향을 받게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예를 들면 산문 형식이나 운문 형식으로 되었다든지 아니
면 시나 노래형식인 편지글 형식 등 성경 본문들에서 얼마든지 문학적 장르
의 형식들을 찾아 볼 수 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은 묵시문학의 옷을 입은 책이다. 묵시란 은연중에 뜻을 나
타내어 보여준다는 말로 그러기 때문에 묵시문학의 특징은 상징적인 것들이 
사용이 되며 또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표현하게 된다.
요한 계시록은 이러한 묵시적 문학형식으로 기록된 편지글이다. 1장 11절에 
보면 요한은 일곱 교회에 보내라는 명령을 받았다. 여기서 알 수 있는 중요
한 것은 그 내용이 당시 교회들의 사정과 형편에 꼭 필요한 내용들이라는 것
이다. 따라서 요한계시록은 현실과 다른 어떤 세계의 이야기가 아니고 하나님
의 교회가 겪고 있는 현실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우리는 예언이라고 하면 꼭 미래적에 어떻게 될 것만을 생각하는데 성경
이 말
하는 것은 그렇지 않다. 거기에는 이미 주어진 말씀을 근거로 재해석하는 것
을 말하는 것까지 포함된다. 요한 계시록에서도 적지 않은 부분들이 이에 해
당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말씀을 통해서 당시 하나님의 교회가 올바로 서
도록 촉구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 당시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요한계시록은 어떤 특별한 책이 아
니다. 이미 그들에게 상식적으로 통용되는 내용들이 등장하는 것이기 때문에 
굳이 그 뜻을 설명하지 않아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편지일 뿐이다. 그
럼 그들이 갖고있었던 요한 계시록을 이해 할 수 있었던 그 상식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 바로 구약성경을 통해서 얻어진 것들이었다. 구약 성경은 요한 계
시록을 이해 할 수 있는 중요한 열쇠들을 제공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형식을 무시한 채 이 성경을 이해하려고 하다보니 엉뚱한 방향
으로 흐르기 십상이며 또 그런걸 신령한 계시라고 따라가는 이들이 있으니 참
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우리는 요한계시록을 어떤 미래를 점치는 책으로 오
버해서는 안 된다. 
어떤 목사님은 새벽 예배 후 30번씩 요한계시록을 읽었다던데 그것은 꿈이 아

다. 얼마든지 현실이 될 수 있다. 요한 계시록을 볼 수 있는 안목을 만든다
면 그리고 시간만 낸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