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살면 됐지…” 변세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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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살면 됐지…”

변세권 목사/ 온유한교회

사랑을 하는 사람이 행복하다. 사랑을 하면 하루 하루가 달라진다. 사랑을 
하면 그 바람이 그 바람이 아니다. 그 낙엽이 그 낙엽이 아니다. 그 볕이 그
냥 그 볕이 아니다. 사랑을 하면 사랑을 하는 사람이 복을 받는다. 받는 것
이 복이 아니라 주는 것이 복이다.

신앙도 이와 비슷하다. 신앙생활은 신앙생활 하는 것 자체가 어떤 보상을 받
는 것이다. 주를 위해 거룩하게 사는 것, 그 자체가 복이다. “그렇게 살면 
됐지…” 무슨 보상을 더 받아야 할까? 탕자 비유에는 처리하기 힘든 대목
이 있다. 큰아들의 존재다. 이 비유에서 큰아들은 우리 시대를 기준으로 하
면 우리는 일시적으로 돌아온 탕자이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보면 우리가 큰아들일 수 있다. 큰아들은 극적인 사건 
없이 교회에 평화롭게 있었던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성경은 큰아들을 
등장시켜 그의 약점을 확인한다. 그의 약점은 돌아온 동생에 대한 기쁨이 결
여되어 있다
는 것이다. 형은 왜 동생이 돌아왔는 데도 기쁘지 않았을까?
그것은 동생이 돌어왔을 때 자기가 받은 것에 비해서 아버지가 동생에게 해
준 것이 더 컸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산 아이가 아니
냐? 하지만 내 것이 다 네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사실은 작은아들
을 향한 아버지의 기준은 비중이 적은 것이다. 작은아들에 관해서는 돌아오
느냐, 못 오느냐 하는 기준에서의 환영이지만, 큰아들에 대해서는 기준이 아
주 높다.

한국 교회 현실에서 중간에 예수를 믿은 사람이 간증하는 것을 보면 거기에
는 극적인 감격과 희열이 있다. 그래서 그런 것이 없이 큰아들처럼 늘 함께 
있었던 사람들은 뭔가 잘못한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이 있다. 

우리의 현실은 큰아들보다 돌아온 작은아들이 대접받는 분위기다. 아버지의 
자식답게 무덤덤하게 그러나 진실하게 살아가는 일들이 대접을 못 받고 이
런 극적인 환영을 받는 것이 칭찬되는 분위기로 흘러가는 것이 사실이다. 심
지어는 극적이지 않으면 큰일 날 것처럼 조바심을 낸다.

대형집회, 성령은사운동, 극적인 분위기로 흘러가는 분위기, 이래야만 확인
이 되
는 풍토는 사실 대단히 위험하다. 무게 중심을 가지고 충성스럽게 있었
던 사람들에게는 그만큼의 어떤 보이는 보상이 주어지는 법이다. “너, 잘한
다!”고 안 하시고 무덤덤하게 대하시는 것 같은 그것이 가장 큰 높은 차원
의 보상이다. 

하나님의 보호와 배려를 거부하고 모든 것을 자기 스스로 처리하고 싶어하
는 인간의 무지와 자가당착을 멀리해야 한다. 하나님의 복 주심과 보호하심 
아래 “내 것이 네 것이다”는 이미 받은 큰아들의 보상을 기억하며 변함없
는 마음으로 7월의 모든 교회행사를 큰아들의 성실한 자세로 임하는 모든 교
회와 성도들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