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웃집은 어떠신지 아세요?_이강숙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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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웃집은 어떠신지 아세요? 

이강숙 집사| 순천제일교회

어느새 봄은 저 멀리 떠나가고 여름이 다가 온다. 더운 5월을 맞고 보니 가
정의 달이라서 그런지 이웃에 사시는 어르신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얼마 
전, 엘리베이터 앞에서 7층에 사는 아가씨에게 말을 건넸다. 

“어째 요즘 아버님이 안 보이시네요?” “돌아가셨어요 …” “아니? 언
제?” “몇 달 되셨어요.” “아니, 세상에 …”

막막한 기분에 사로잡혀 버렸다.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 못내 자책감
으로 바뀌었다. 이렇게 무심하게 살아가고 있었단 말인가? 

그 분은 자그마한 체구와 부리부리한 눈매에 인심좋은 분이었다. 연세는 아
마 60이 넘으셨을까 할 정도로 많은 나이는 아니었다. 평소에 약주가 과하시
던 아저씨였다. 그러나 약주를 과하게 마셔도 실수를 하거나 남에게 폐를 끼
치지는 않았다. 그저 기분 좋아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말을 거는 정도였다. 
아파트에서 일하는 경비
아저씨에게는 좋은 친구였고 술벗도 가끔 되어주던 
마음 넉넉한 분이었다. 

내가 이 아파트로 이사 온 지도 12년째, 그 아저씨도 분양 받고 우리와 같
은 시기에 이사를 왔으니 12년을 수시로 만나고 인사를 나누며 안부도 묻고 
웃고 살았는데, 어느 해부터인가 얼굴색이 검게 변하고 아주머니를 뵐 때 슬
그머니 아저씨의 안부를 물으면 ‘또 입원했지 뭐’ 하며 씁쓸한 표정을 찾
곤 했었다. 그동안 병원에 입원하고 퇴원하길 여러 번 반복한 것으로 알고 
있다. 

슬하에 아들이 없어 외동딸 하나 달랑 키운다고 하면서 우리 두 아들을 보
면 아이스크림도 사 주고 천 원짜리 한 장씩을 아이들 손에 쥐어주며 과자 
사 먹어라 하기도 하였고 나를 만날 때마다 안 먹어도 배부르겠다며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시던 아저씨였는데 돌아가신 줄도 모르고 물어봤으니 어찌 
이웃이라 하겠는가? 

다음날, 엘리베이터가 7층에서 내려오면서 이삿짐을 잔뜩 싣고 내려왔다. 스
무 살이 넘은 딸이 독립을 해 나가는 표정이었지만 미안함에 물어볼 수가 없
었다. 어제의 무심한 물음이 딸 아이에게 얼마나 상처가 되었을까를 생각해 
보면 얼굴
이 붉어져 또 다른 질문을 할 수 없었다. 이렇게 나는 무심하게 하
루, 하루를 살아가고 있었으니 얼마나 딱한 일인가? 또한 우리가 이웃을 바
라보는 시선이 긍정적이라기보다는 매사에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며 살고 있
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제 일이었다. 햇살이 한여름처럼 뜨거운 한낮, 9층에 사는 할머님이 아들
네 살림을 맡아서 하시는데 음식 쓰레기 한 봉지와 일반 쓰레기를 종량제 봉
지가 아닌 일반비닐봉지에 들고 내려오는 것이 아닌가? 은근히 속에서 화가 
나기 시작했다. 

‘어디! 어떻게 버리나 봐야지? 분명 그냥 버리실 거야?’

이렇게 생각하며 눈길을 할머니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요즘 부쩍 늘어
난 일반 비닐봉지에 쓰레기를 넣어버리는 일이 많아져 시청에서 단속이 심하
기 때문이었다. 가끔 쓰레기 문제로 말싸움이 오가기도 하기에 이내 경비실
로 발길을 돌렸다. 

“아저씨! 아저씨!”

그순간 할머니의 행동이 무슨 일이나 난 사람처럼 말하기 시작하는 나를 발
견했다. 아차! 이건 아닌데 하는 마음으로 목소리를 가다듬고 경비원 아저씨
에게 말을 건넸다. 

“아저씨! 
한번 확인해 봐야겠죠?” 하면서 할머니가 다녀가신 쓰레기통을 
확인하러 다가갔다. 그러나 모든 것이 너무도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할머니는 음식쓰레기는 정해진 통에 넣으시고 일반봉지에 담아져 있던 쓰레
기는 다른 사람이 버린 종량제 쓰레기 봉지에 꽉꽉 눌러 담았던 것이다. 절
약하기 위한 방법을 생각해 낸 것이다. 맞벌이 부부인 아들네를 도우며 손자
를 알뜰살뜰 키워주시는 어머니의 모습이기도 했다. ‘죄송합니다. 할머니 
…’ 이렇게 못된 심성을 간직하며 살고 있었다니 자신을 다시금 생각하는 
날이었다. 미루어 짐작해서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후회스러움과 내 마음
에 가득한 자만심과 겸손하지 못함이 할머니를 통해 나에게 전해진 깨우침이
었다. 티끌만한 것도 절약하는 그 정신을 보니 계란 하나라도 자식에게 더 
먹이려고 아끼고 아끼던 부모님의 마음을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된다.

문득 어느 노인의 말이 생각이 난다. 사람이 눈을 뜨고 산다고는 하나 감고 
사는 것이라고 했다. 어떤 고난이나 고통을 다 이기고 자신을 다시 찾게 되
었을 때 우리가 느끼는 깨달음에서 ‘아하! 이런 것도 있었구나’ 하면서 

가지의 진리를 알게 되었을 그때가 눈을 뜨는 시기라고 했다. 우린 이렇게 
눈을 감고 살다가 매일 매일 눈을 뜨는 일이 생긴다면 열심히 뜨고 볼 일이 
아닌가? 

비록 도시의 회색벽에 묻혀 사는 현실이지만 아파트 밖에 서서 높이 하늘을 
올려다본다. 황사 바람이 불기는 해도 여전히 몇몇 집에 이부자리가 널려있
다. 그 이부자리를 중심으로 1.5리터짜리 물병이 안팎으로 걸려져 있다. 그 
물병의 무게로 인해 고층에서 바람이 불어도 떨어지지 않게 하려는 삶의 지
혜다. 

4층에 사는 우리는 거의 걸어서 오르내리기는 하지만 무거운 짐이 있거나 
할 때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하게 되는데 5층 사는 이웃이 타면 우리가 5층에
서 내려 한 층을 걸어 내려오거나, 자전거를 잘 타고 다니는 3층 할머니가 
타면 한 층을 걸어 올라가기도 한다. 작은 배려지만 공동체에 대한 절약정신
이라 생각한다. 

우리의 삶에서도 저 1.5리터의 물병처럼 중심을 잡고 잘 살려고 하는 마음
을 가지고 산다면 나만이 아닌 우리의 이웃도 생각하는 넉넉함이 베어날 것
이다. 그리고 조금 더 나아가 이웃사랑의 실천도 할 수 있으리란 기대를 해

본다. 

싱그러운 녹음이 짙어지는 5월! 우리의 마음도 푸르러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