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전한 삶’, 한계부터 인식하자 _장창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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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전한 삶’, 한계부터 인식하자

장창수 목사/ 러시아선교사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과 처음으로 만난 장소인 게네사렛 호수 가에서 제
자들과 해후하며 그들을 사도들로 다시 세우셨다(요 21:15-17). 그후 오순
절 성령 강림에 의해 이 땅에 교회가 출생하였다(행 2:1-4). 예수님의 부활
과 성령 강림이라는 구속사에 있어 획기적인 사건들을 염두에 두고 사도 바
울은 부활 주이며 승천 주이신 예수님이 지상 교회에 몇몇 제직들을 세우셨
다고 말했다(엡 4:7-11). 제직을 세운 목적은 종국적으로 교회의 성장을 위
함이라고 설명한 후(엡 4:12) 이 성장이 언제까지 계속되어야 함에 대해 그
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
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엡 
4:13). 
그에 의하면 교회의 모든 지체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
나가 될 때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
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게 되며 그 결과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제대로 세워진다. 이렇게 성
도 개개인의 신앙의 질적 성장은 너무나 중요하다.

성도의 신앙 성장 중요해

개개인 성도의 질적 성장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목회자의 최우선 목표임을 
바울은 우리에게 말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양적 성장론자들은 질적 차원
에서 말한 사도 바울의 교회 성장론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사도 바울에 의
하면 예수님을 믿는 것과 아는 것은 불가분하다. 이 둘이 하나 되어야 신앙
의 성숙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사도 비울에 의하면 ‘믿음’이란 단어는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영접하는 
행위와 그를 전적으로 믿고 사는 신뢰 행위를 뜻한다. 그리고 지식이란 단어
는 예수님을 아는 것을 뜻한다. 그렇다면 이 둘은 실제적으로 서로 분리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 둘을 나누어 설명했다. 논리적으로 이 
둘을 나누어 본 것이다. 그러고 실제적으로는 믿음과 지식은 서로 병행하기 
때문이다.
구원 이전 예수님을 아는 구체적인 지식보다 믿음이 먼저 앞선다. 반면 구
원 이후 믿음은 지식에 의해 보완된다. 그렇지 않으면 
믿음은 부실해진다. 
이렇게 믿음과 지식은 늘 하나여야 한다고 사도 바울은 주장한다.

믿음과 지식은 하나

그러나 인간 자체의 한계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 아는 것에 하
나 되는 것이 그리 쉽지 않다. 인간은 예수님을 아는 대로 믿지 못하기 때문
이다. 역으로 예수님을 잘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그를 잘 모르는 일도 흔하
다. 믿음과 지식 사이 이런 간극은 평생 신자를 괴롭힌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우선 하나님의 아들을 100% 아는 일에 인간의 인식 능
력상 한계가 나타난다. 사도 바울은 이 한계를 둘로 나누어 설명했다. 인간
은 마치 어린 아이와 같아 어린 아이처럼 깨닫고 말한다(고전 13:11). 사람
들은 세상의 초등 학문에 따라 말하고 생각하기 때문이다(갈 4:3; 골 2:8). 
그리고 인간 인식 능력의 한계로 구리 거울을 보듯이 모든 것을 희미하게 보
며 그리고 부분적으로 안다(고전 13:12). 이것은 주지적 목회의 한계를 잘 
지적한다.
그리고 이 위에 인간은 이성(理性)보다 감성(感性)에 의해 곧 잘 좌우된다. 
그 결과 미움이나 증오 감정이 인간의 지식 행위를 방해한다. 그러므로 인간
이 안다고 주장하
지만 모두 그리고 정확히 안다고 볼 수 없다. 여기 세상 철
인들의 잘못과 실수가 어디 있는지 잘 지적된다. 이것 또한 주지적 목회의 
한계를 지적한다.

이성보다 감성이 앞서는 인간

인간은 신(神)이 아니기 때문에 습득한 지식대로 100% 실천하며 살지 못한
다. 즉 지식과 믿음 그리고 행함, 이들 셋 사이 간극이 생긴다. 인간이 인식
의 한계와 아울러 윤리적인 한계를 갖는다는 뜻이다. 이 때도 인간의 호오
(好惡) 감정이 윤리적 한계를 더 깊게 만든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성경은 말한다. 그렇지만 인간은 쉽게 지
식만을 자랑한다. 야고보는 이렇게 말한다.
“누구든지 도를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
는 사람과 같으니…” (약 1:23).
인간 자체의 이런 한계를 늘 인식하며 소명자는 스스로 낮아져서 하나님의 
아들을 더 잘 알려고 하늘 지식을 사모해야 한다. 이 때 하나님은 성령을 통
해 그를 알도록 돕고 그 지식대로 믿을 수 있는 능력을 더 해 주신다(고전 
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