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있음은 …”_유화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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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있음은 …”

유화자 교수/ 합신 기독교교육학

사람들이 때로는 필자에게 가족이 몇 명이냐고 묻는다. 그런 때 필자는 보
통 32명이라고 대답을 한다. 그러면 질문을 던진 사람은 놀라서 눈을 크게 
뜨고 “무슨 식구들이 그렇게 많으냐?”고 다시 질문을 한다. 필자는 “대가
족이어서 그냥 그렇게 많다”라고 대답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왜 그렇게 식
구가 많은지, 그들이 누구인지에 대한 장황한 설명을 곁들일 때도 있다. 사
실은 32명이라는 가족수도 항상 일정한 것은 아니다. 

어떤 때는 식구들이 몇 명씩 늘기도 하고 또 줄어 들 때도 있다. 그러나 10
년 이상을 같은 집에서 살다 보니 집안의 크기나 구조로 보아 최대한 살 수 
있는 수가 대략 그쯤일 것으로 짐작된다. 그런데 식구가 줄어들 때는 문제
가 아닌데 식구가 늘어 날 때는 참 고민스럽다. 힘들고 짜증나는 고민이 아
닌 행복한 고민거리가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필자의 소원은 언젠가 좀더 
큰 집으로 이사를 
하여 식구를 더 불리고, 또 가능하면 체구가 큰 식구들이 
좀 입주를 했으면 하는 소원이 있다. 이 일을 위하여 필자는 계속 기도하고 
있다. 

보통 사람들이 가족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부모와 자녀 친척 등 사람들을 
의미하는 데 반하여, 이 글에서의 필자의 가족은 ‘살아 있는 생명체’를 식
구 속에 포함하여 표현하고 있다. 필자와 같이 사는 식구들은 분명히 생명
이 있고, 매일 성장하며, 또 자신들의 희로애락의 감성 표현을 어떤 방법으
로든 하고 있지만 자신이 스스로 움직이지는 못한다. 이쯤 되면 그 가족들
이 누구인지 대략 짐작하실 것이다. 그 가족들은 다름 아닌 화초들과 화분 
속에서 자라고 있는 작은 나무들이다. 

이 식구들이 처음부터 수가 그렇게 많았던 것은 아니다. 어떤 꼬마들은 너
무 귀엽고 예뻐서 책상 위에 두고 보라고 제자들이 선물로 갖다 준 것이다. 
또 어떤 것들은 화원에 갔다가 화원 한 귀퉁이에 폐기처분 당하여 버려진 속
에서 데려온 고아들도 있다. 상품으로서 가치를 상실하여 버려진 화분들 속
에서 아직 죽지 않았으니 “살려 주세요”라고 애원이라도 하듯 메마른 잎새
들 틈에서 여린 새 
순을 뾰족이 내밀고 있는 모습이 너무 애처로워 화원 주
인의 허락을 받고 입양한 고아 식구들이다. 

어느날 우리 집에서 하루 밤을 묵게 된 친척 언니는 화초 식구들에 대한 동
생의 관심이 유별스러워 보였던지 “에이 비싼 화초는 하나도 없네 …!” 라
고 말꼬리를 흐렸다. 특별히 아름답거나 희귀성을 인정받는 식물이 하나도 
없어서 그 언니의 눈에는 수고를 하면서 이들을 길러야 할 이유와 가치가 없
어 보였는지 모른다. 그러나 희귀하거나 값비싼 식물들이 아닐지라도 우리 
식구들은 모두가 각자의 아름다움과 소중성을 간직하고 있다. 여러 인연으
로 필자와 한 가족이 된 이 식구들은 필자를 별로 힘들거나 수고롭게 하지 
않으면서도 참 많은 기쁨과 감사를 필자에게 안겨 주고 또 소중하고 귀한 생
명의 진리를 깨우쳐 준다. 

이들을 위하여 필자가 하는 수고란 그들이 목마르지 않도록 가끔씩 물주는 
일, 또 햇빛을 골고루 받도록 화분을 옮겨 주는 일, 그리고 바람을 쐬도록 
때때로 베란다 문을 열어 주는 일 정도이다. 물론 몇 년씩 자라서 몸집이 커
져 버린 청소년쯤에 해당하는 화초들을 좀더 큰 화분으로 옮겨주는 일도 

다. 
식물이 사람의 생명에 필수 요소인 산소를 공급해 준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
고 있다. 또 콘크리트와 인간에게 유해한 여러 화학 자재들로 건축된 아파트
나 주택에 식물들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도 잘 알려져 있다. 그런 실리적
인 유익 이외에도 화초는 보는 이들의 마음을 즐겁고 평안하게 하여 정서적 
안정을 줄 뿐 아니라 시력보호에도 지대한 공헌을 한다고 한다. 

이런 여러 가지 고마운 사실 이외에도 필자가 이 화초 식구들을 좋아하는 이
유는 많다. 그 중에서도 이들의 ‘정직성’을 으뜸으로 꼽고 싶다. 먼저는 
계절 앞에서, 곧 하나님의 섭리 앞에서 이들은 아주 정직하고 정확하다. 꼬
마들이나 청소년쯤의 화초 모두가 이 점에서 예외가 아니다. 또 자신들을 돌
보아 주는 주인에 대한 이들의 감사의 표현은 그 설명이 어려울 정도의 기쁨
과 보람을 필자에게 안겨 준다. 이런 심정은 경험한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생
명에 대한 경외와 감격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인생을 살면서 사람들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각기 다른 성격과 생
김새,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며 사는 일은 그리 쉽지 않다. 
그 
중에서도 다른 사람들의 ‘부정직성’ 때문에 사람들은 많은 어려움을 겪는
다. 대인관계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적당히 과장을 하고, 얼마쯤은 자신을 
감추고, 또 때로는 거짓말을 하는 등 자신 나름의 인생 마스크를 쓰고 살아
가기 때문이다. 체면과 전통을 중시하는 유교 문화의 영향으로 한국 사람들
의 이중성과 부정직성의 현상은 다른 나라보다 더 심하다고 알려져 있다. 

새 봄에 정직한 우리 화초 식구들은, 아니 생명 있는 모든 자연이 하나님께
서 정하신 생명의 법칙에 따라 봄맞이 준비에 한창이다. 그런데 우리의 삶
과 영혼의 봄맞이는 어떠한가! 하나님 앞에서 ‘생명 있음의 소중함’을 생
각하면서 자신의 삶과 주변을 돌아보는 또 한번의 소중한 인생 봄맞이를 준
비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