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릴리’와 ‘예루살렘’ _장창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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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리’와 ‘예루살렘’

장창수 목사/ 러시아 선교사

공관 복음과 요한복음은 각각 예수님의 공생애의 특징을 나름대로 설명한
다. 공관 복음서들은 전반기 예수님은 갈릴리 지역에서 주로 사역하시고(마 
18장까지) 후반기 예루살렘으로 가신 것(마 19장 이후)으로 기록한다. 그러
나 요한복음은 예루살렘과 유대 지역이 예수님의 사역 중심이었음을 보인
다. 이 때문에 갈릴리라는 이름보다 이 두 지역의 이름들이 5배나 더 요한복
음에 언급된다.

갈릴리와 유대는 극적으로 대조되고 서로 비교된다. 이 당시 팔레스타인 지
역은 갈릴리, 사마리아, 유대 등 세 지역으로 나뉜다. 사마리아는 갈릴리와 
유대 사이 위치하여 이 두 지역을 서로 격리시킨다. 갈릴리 지역은 사마리아
의 북쪽에 위치하여 사마리아의 남쪽에 위치한 예루살렘 성이 있는 유대 지
역과 비교하면 촌구석이었다. 

유대 지역은 유대주의가 강한 지역으로 모든 것이 잘 발달된 곳이라면 갈릴
리 지역은 거의 이방인 지역으로 후진 벽지였
다(마 4:15). 오늘날로 말한다
면 유대는 한 나라의 중앙 지역이고 갈릴리는 중앙에서 한참 벗어난 촌구석
으로 자연 환경만이 아름다운 시골이었다.

예수님은 유대 지역 베들레헴에서 출생했다. 그러나 그는 갈릴리 지역 나사
렛 동네에서 자랐고 30년의 지상 삶을 이곳에서만 사셨다(눅 2:39-51). 3년 
동안의 공생애를 시작하면서도 예수님은 갈릴리의 가버나움으로 이전하여 이
곳을 전진 기지로 삼고(마 4:13) 예루살렘과 유대 지역으로 왕래하시면서 천
국 복음을 전하며 사역하셨다(눅 23:5). 이 덕분에 갈릴리 촌사람들은 이사
야의 예언대로(사 9:1-2) 유대 지역의 잘난 유대인들보다 먼저 예수님을 보
고 믿을 수 있었다(마 4:12-16).

그러나 갈릴리 지역은 예수님에게 또 다른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갈릴리에 자라고 사셨다. 이 때문에 어릴 때
부터 유대 지역과 그곳 사람들과 어떤 관계도 없었고 그 당시 잘못된 유대주
의의 영향에서 멀리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만약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자라고 사셨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
까? 12살부터 이미 메시아 의식을 가진(눅 2:49
) 예수님은 늘 유다 종교의 
잘못된 종교 관행과 가르침을 듣고 직접 보아 오셨다. 때문에 젊은 피가 용
솟음 치는 청년기에 이르러 예수님은 이들 유대인 지도자들을 비판하고 비난
하며 이들과 자주 부딪힐 수 있었다. 그렇게 그가 쉽게 노출된다면 하나님 
아버지가 원하는 예수님의 메시아 사역은 정치적인 것으로 변질될 뿐만 아니
라 그의 대속 죽음의 계획에까지도 차질이 발생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때
문에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을 유대 지역에서 멀리 격리된 갈릴리 지역에서 
자라고 살도록 조치했다.

율법에 따라 예수님은 12살부터 공생애가 시작되기까지 매년 3차례 예루살렘
에 올라갔다. 그러나 그는 묵묵히 명절만 지키고 고향으로 되돌아갔다. 그렇
게 그 당시 잘못된 종교 관행들을 보고 알면서도 예수님은 20년 넘게 침묵하
셨다. 이 모두 예루살렘이 아닌 갈릴리 벽촌에서 자기부정과 자기비하의 훈
련을 잘 받은 덕분이었다. 나중 그가 광야 시험에서 사탄에게 승리한 원인이
기도 했다.

흔히 우리는 갈릴리보다 예루살렘을 더 좋아한다. 그러나 소명자에게는 예루
살렘보다 갈릴리 같은 지역이 더 좋다. 그런 곳에서 
자신의 순수함을 더 잘 
유지할 수 있다. 예루살렘의 권력과 영화를 부정하는 훈련을 잘 받은 소명자
만이 나중 예루살렘을 개혁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기부정이 성화
와 목회의 최절정에 이르는 길임을 우린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