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이면(17)
유화자 교수/ 합신 기독교육학
어느 겨울 날 한밤중에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빗소리에 잠이 깬 한 50대쯤
의 주부가 깜짝 놀라서 잠옷 위에 코트를 아무렇게나 걸친 뒤 우산을 챙겨
들고 급하게 집을 나서고 있었다. 곁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현관 문 여닫
히는 소리에 잠을 깬 남편이 황급히 잠바를 걸치고 아내를 뒤쫓고 있었다.
승용차 시동을 걸고 어디론가 막 떠나려는 아내에게 황급히 달려간 이 남자
는 급하게 자동차 문을 열고 아내를 껴안으며 그녀를 달래고 있었다.
“여보, 제발 이러지 말아요. 지금은 한 밤중이에요! 운전하고 산에 갈 수
없어요. 당신이 이렇게 쫓아가지 않아도 진철이는 엄마가 진철이를 사랑하
고 걱정하고 있다는 것 다 알고 있어요. 엄마가 이 추운 밤에 자기를 찾아오
다 쓰려져서 또 병원에 실려 가는 것을 진철이는 절대로 원하지 않아요. 겨
울비를 맞으며 쓰러지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가슴 아파하고 있을 우리 진
철이의 마음을 당
신은 왜 헤아리지 못해요! 내일 날이 밝는 대로 우리 함께
진철이 만나러 갑시다!”
슬픔과 추위에 떨면서 흐느끼는 아내를 겨우 달래어 어깨를 감싸 안고 집으
로 돌아 온 남편은 따뜻한 침대에 아내를 눕히고 뜨거운 차를 준비하고 있었
다. 아내를 달래며 설득하느라 안간힘을 쓰던 그의 눈에서도 뜨거운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비 오는 날이면 아내의 방황과 불면으로 계속되는 어느 가정
의 안타까운 모습이었다.
특히 겨울비가 오는 날이면 이 부인은 “우리 아들 비 맞으면 안돼! 우산
갖다 줄거야! 빗물이 몸 속에 들어가면 감기 들어! 우리 진철이 추워서 어떻
게 해”! 라고 울부짖으면서 거의 예외 없이 우산을 챙겨 들고 집을 뛰쳐나
가곤 하였다.
한국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외국 유학 길에 올랐던 이 부부
의 아들 진철이가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은 것은 벌써 한참 전의 일이었
다. 서울의 부유층 가정의 외아들로 태어난 진철이는 어려서부터 공부도 잘
하였고, 여러 면에서 많은 사람들의 칭찬과 기대를 모았던 우수한 학생이었
다. 좋은 고등학교와 일류대학을 나온 진철이는 부모와 주위 사람
들의 기대
와 촉망을 받으면서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고, 어렵다는 의과대학을 마칠 무
렵까지만 해도 그는 많은 사람들의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그러던 그가 고속
도로에서 사고를 당하여 생명을 잃는 비극을 겪게 된 것은 의사고시를 위하
여 장거리 운전 중에 일어난 사고 때문이었다.
이 아들은 그동안 과중한 수업과 실습하고 있는 병원의 밀려드는 업무 그리
고 의사고시 준비에 항상 잠이 부족했다고 한다. 그러다 혼자 장거리 운전
중 쏟아지는 잠을 이기지 못하여 고속도로에서 졸다가 사고로 그만 생명을
잃게 된 것이다. 외아들의 비보를 접한 한국의 부모들은 아들의 시신을 수습
하여 한국으로 돌아왔고, 서울 근교에 묻힌 이 아들을 잊지 못하는 이 부부
는 자신들의 인생이 고스란히 무너져 내리는 절망감과 슬픔을 겪고 있었다.
아들이 좋아하던 탐스러운 빨간 사과 한 알만 보아도 목이 메이고, 알맞게
따뜻한 욕실의 목욕물만 보아도 아들 생각에 뜨거운 눈물이 흐르며, 그 아들
이 잘 먹던 음식이나 즐겨 입던 티셔츠 등, 아들과 연관되는 것 그 무엇 하
나에도 가슴이 에이는 이 부모에게는 하루하루가 슬픔과 고통의 나
날이었
다.
그런 중에도 비 오는 날은 이 부인에게 참으로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다. 외
아들을 잃은 이 어머니는 ‘비 오는 날이면’ 아들의 몸이 빗물에 젖는다고
발을 동동이면서 밤낮 없이 우산을 챙겨들고 무덤을 찾는 일을 계속하고 있
었다. 아들이 비에 젖어 땅 속에서 추워 떨고 있는데 어찌 따뜻한 집에서 혼
자 편안히 지낼 수 있느냐는 이 어머니의 몸부림은 참으로 주위 사람들을 안
타깝게 하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우주 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셨을 때 살아 있는 생명체(living
creature)에게 활동과 휴식의 복을 함께 주셨다. 동식물 모두에게 이 생명
의 원리(the principle of life)는 동일하게 적용된다. 그 중에서도 하나님
의 형상(God’s image)과 모양(God’s likeness)대로 지음 받은 우주의 관리자
인 사람은 밤에 잠자면서 휴식을 취하도록 하셨으며,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신다고 하셨다. 휴식과 수면은 인간에게 주신 하나님의 최
대 복 중의 일부이다.
반면에 성경은 우리가 영적 잠에 빠져서는 안 되는 중요성과 필연성에 대하
여 많은 곳에서 경고하고 있다(막 13:32, 37). 잠들지
말고 깨어 있어야 할
때 잠을 자다가 인생의 파멸을 맞은 많은 사람들을 우리는 성경과 역사 속에
서 발견하게 된다. 삶의 여정 속에서 우리의 건강을 위하여 휴식과 수면의
바른 생활 리듬이 필요하듯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우리의 영적 생활 리듬
이 잘 지켜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점검해 보아야 한다.
세계 도처에서 최근 빈번히 발생되고 있는 자연 재해들과, 인류의 다양한
부정적 문화 현상들(various phenomena of human culture)이 예수님의 재림
(The Doomsday)의 임박성을 우리에게 일깨워 주고 있다. 지금은 마땅히 영적
으로 깨어 있어야 할 때임을 자각하면서 우리의 영적 생활 리듬을 다시 한
번 살펴보아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