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연가
변세권 목사/ 강원노회장 온유한교회
깊어 가는 가을 밤! 그리운 사람을 목메어 부르는 연가는 얼마나 시리도록 아
름답고 슬플 것인가?
‘사랑이란 이렇게 한사코 당신 곁에서 뜨겁게 우는 것이다’라는 어느 시인
의 절창을 나지막이 읊조려보면 그 같은 애절함이 저절로 느껴진다. 살아온
지난날의 삶의 고뇌들을 회한과 그리움으로 긴긴 밤 내내 뒤척일 것만 같다.
코끝에 와 닿는 공기의 가을 냄새가 달라진지도 벌써 오래다. 십상하고 신선
한 날들을 며칠이나 더 볼 수 있을까…
귀뚜라미가 따뜻한 부엌 언저리를 찾아 요란하게 울 때, 마당 가운데 평상에
누워 밤하늘을 바라보며 별을 세고 있노라면, 어디에선가 구슬픈 대금소리가
들려오고, 끊어질 듯 이어지곤 하는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어느새 마음은
처량한 가을나그네로 변해 오래 전에 헤어진 친구의 얼굴이 불현듯 떠오르기
도 하고, 돌아가신 아버지의 자상하시고 푸근한 모습도 오랜만에 생생하게 그
려지기도 한다.
n아~ 모두들 잘 계시겠지.. 어떻게들 변해 있을까..’ 그리움이 솟는다. 스산
한 바람소리에 낙엽이 일고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산 위로 쟁반처럼 환한
달이 차 오를 때 나도 모르게 입을 열어 가을노래를 부르곤 했다.
바야흐로 애수의 계절이다. 원주에 온 지도 벌써 6년이 다 되어간다. 그때의
원주는 나에게 미래, 꿈, 비전을 주었다. 노란 은행잎이 깔려있는 우수에 젖
은 교회앞 거리는 수채화처럼 아름다웠었다.
그러나 지금의 마음은 착잡하기만 하다. 아무래도 교회 성장에 대한 부담이
큰 때문인 것 같다. 절망할 것은 아니지만 조용한 책임감이 자꾸 마음을 억누
른다. 교회공간 협소함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원인도 있지만, 이런저런 이
해 관계로 또는 성도들의 직장 이동 등의 원인도 찾아 볼 수 있다. 물론 목사
의 영적 리더십과 실력이 가장 큰 원인이 되겠지만 말이다. 그동안 교회에 오
신 분들만 잘 양육하고 보살폈어도 목회에 자신감이 붙었을 텐데 하나님은 한
꺼번에 그렇게 일을 하시지 않는 것 같다.
‘사람을 보고, 목사를 보고 교회를 다니면 안 된다고는 하지만 사람들이 어
디 그런가? 하여간 갈만하니
까 갔겠지…? 그걸 이제 와서 자꾸 생각하면 뭣
하나…?’ 이렇게 나 스스로를 위로한다.
사실 성경은 우리에게 작은 일에 충성하라고 요구한다. 큰 일 만을 하는 것
이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은 아닐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맡기신 일에 충
성했느냐 안 했느냐만 물으실 것이다. 그런데 세상 성공주의의 영향으로 이
작은 일에 충성하는 자세와 마음이 자꾸만 없어진다.
이 가을이 나를 깊게 만드는 것은 하나님께서 일을 시키실 때, 당장 눈에 보
이는 보상이 따르는 일은 아무에게나 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일은 아무에게나 시키시지 않으신다. 아무래도 좋은 일은 아무에게나 시
키신다. 이 환경은 내 자신과 우리 모두가 독특하게 감당해야 할 사명이다.
온유와 겸손으로 가는 길은 참으로 멀고 험하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주신 일 만 하면 된다.
아니 우리가 할 줄 아는 일만 하면 된다. ‘아~ 사치스러운 생각들은 다 집어
치우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주신 그 일을 하다 하나님 앞에 가면 됐지’
하는 속 깊은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하나님은 앞으로도 우리에게 어떤 일을
맡기실 지 모른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가 세상에서 다른 사람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을 맡기지 않으신
다. 우리가 예수그리스도의 종인 것을 증명하는 일을 맡기실 뿐이다. 우리가
하는 일은 주님을 위하여 사는 증거로 사용되어져야 할 줄로 안다. 이런 일
에 시험을 받지 않고, 이런 일에 지지 않기를 오늘도 조용히 기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