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들의 석간신문_유화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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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들의 석간신문

유화자 교수/ 합신 기독교교육학

그렇게도 억수로 쏟아 붓던 긴 장마 비가 그치고 작열하던 태양이 며칠 째 
대지를 뜨겁게 달구던 여름 어느 날, 한 시골 집 뜨락에서 4-5세 되어 보이
는 꼬마 아이가 흙장난을 하며 놀고 있었다. 꼬마의 부모들은 집 앞에 딸린 
채마밭에서 한창 바쁜 일손을 놀리고 있었다. 

맨 발인 채로 시골 집 뜨락 여기 저기를 마구 뛰어다니며 흙장난에 몰두하
고 있던 이 꼬마가 어느 한 순간 분주한 발길을 멈추고 어느 한 곳을 응시하
기 시작했다. 어린 꼬마의 눈앞에 진기한 풍경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거
기에는 수 백 마리의 개미떼들이 뜨거운 태양 빛에 말라 버린 지렁이 한 마리
를 열심히 개미집으로 운반하느라 야단법석들이었다.

햇볕에 말라 버린 이 지렁이는 개미집에서 조금 먼 곳에 떨어져 있었는데 수
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개미들이 떼를 지어서 이 지렁이를 끌고 개미집
으로 이동 중이었다. 개미 동네, 아니 그 개미 도시의 모든 
개미들이 총 동원
되었음직한 많은 개미들이 이 말라버린 지렁이 한 마리를 상대로 한참 씨름
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장마 비가 걷히자 밖에 나왔다가 뜨거운 햇살을 받고 죽어서 말라버린 이 지
렁이는 개미들의 겨울 양식감으로는 최상이었을 것이다. 뜨거운 여름에 겨울 
양식을 부지런히 준비하는 개미는 부지런함의 상징이기도 하며, 성경에서 게
으른 인간을 가르치는 교훈의 대상으로도 묘사되고 있다. 어린 시절 읽었던 
부지런한 개미와 여름 내내 시원한 나무그늘에서 노래만 부르다 겨울 양식 준
비를 못한 배짱이의 재미있는 이솝이야기는 지금도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 있
다. 

겨울 양식 준비에 부지런한 개미들이 이 최상의 영양식인 마른 지렁이를 그
대로 둘 리가 없었다. 그러나 지렁이를 집으로 끌고 가는 과정에서 지렁이의 
무게 때문에 지렁이가 뒤집혀 그 속에 짓눌려 상처를 입거나 압사하는 개미
가 생기기도 하고, 또 개미들끼리 서로 부딪쳐 뒹굴면서 다치기도 하는 등, 
그야말로 총 출동이 된 개미 군단이 땀을 뻘뻘 흘리며 사력을 다 하고 있는데
도 죽은 지렁이는 거의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 
진기하고 안타까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어린 꼬마는 개미들이 측은하
고 불쌍해지기 시작했다. 

“그 까짓 말라버린 지렁이 한 마리도 못 끌고 가다니! 아이 참 그렇게도 힘
이 없나! 불쌍하기도 해라.” 

혼자 중얼거리던 어린 꼬마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뜨락 한편에 자리 잡고 있
는 싸리나무 울타리로 종종 걸음을 하더니 싸릿대 가지 하나를 꺾어 왔다. 그
리고 잠깐 동안 뒤뚱거리는 지렁이와 개미들을 지켜보았던 꼬마는 마침내 결
심한 듯이 그 싸릿대 가지를 절반으로 뚝 잘라서 나무젓가락을 만든 후 그 젓
가락으로 지렁이를 불끈 집어서 개미집 입구까지 옮겨 주었다. 

그 날 오후 개미 굴 속, 아니 개미동네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아마 
온 동네, 아니 온 도시가 지렁이 사건의 화제로 떠들썩했을 것이다. 

“어떻게 이런 놀라운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그렇게 힘이 센 분이 도대체 
누구일까! 기적이다. 기적! 기적이 일어났어!” 라고 흥분하면서 개미 도시
가 온통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 날 오후 내내 개미들의 
도시에서는 개미들이 모이는 곳마다 온통 그 화제로 시간가는 줄 몰랐을 것

다. 물론 이 ‘마른 지렁이 사건’이 그 날 저녁 개미들의 석간신문에 제1단
의 톱기사로 게재되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성경은 우리 인간들을 ‘지렁이’ 같은 존재, ‘구더기’ 같은 존재라고 여
러 곳에서 말씀하고 있다. 생명의 근원이며 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알지
도 못하고 알려고 하지 않는 무관심 속에서, 자신들이 마치 우주와 생명의 주
인인양 온갖 위세와 교만을 떨어대는 이 땅위의 개미 같은 인간들을 내려다보
시면서 하나님께서는 지금 이 순간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실까? 

세상 종말이 가까워 올수록 사람들은 자신의 책임과 의무 수행에는 등한히 
하거나 그 중요성을 망각하고 살면서, 자신의 권리와 자신이 누릴 조건 추구
에 안달하고 연연해하면서 극단적 이기주의로 치닫고 있다. 이런 세상 문화
와 풍조는 기독교계에도 확산되고 있는 추세이다. 하나님께 대한 크리스천의 
의무와 책임 수행에는 소홀히 하면서 하나님을 마치 자신의 문제 해결사나, 
자신의 인생에 대한 복의 근원쯤으로만 생각하려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는 것 
같다. 

자연계나 인간 문화 속에 나타나고 있는 여러 징후들은 
예수님의 재림이 임
박했음을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겨울 양식 준비에 여념
이 없는 이 땅 위의 개미들처럼 세상 것에 취하여 땅의 것만 추구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들에게는 혹시 오늘이라도 저 맑고 푸른 구름 속에서 장엄한 나
팔 소리와 함께 홀연히 나타나실 지도 모르는 예수님을 기다리는 마음이 있어
야 한다. 예수님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하늘을 바라보며 사는 마음 자세가 지
금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