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이 통하는(?) 세상_조석민 목사

0
9

거짓말이 통하는(?) 세상

 

 

< 조석민 목사, 에스라성경대학원대학교 신약학교수 >

 

 

“누구나 쉽게 거짓말에 농락당하게 된다는 사실 명심해야”

 

 

우리 사회는 거짓을 말해도 별 문제없이 통하는 사회처럼 인식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거짓을 말하거나 다른 사람을 눈속임하여 행동하여도 그 실체가 거짓으로 들어나기 전까지는 진실로 포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황우석 사건을 통해서 거짓에 대한 윤리 도덕적 판단과 기준이 어느 정도 확립되었으리라 믿었지만 이것은 지나친 기대인가보다. 아직도 거짓이 난무하는 우리 사회를 보면 거짓 불감증에 걸린 병든 사회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이와 함께 거짓말로 병든 사회 속에 존재하는 교회의 모습은 어떤지 매우 궁금하다. 정말 교회는 거짓이 없는 순결을 유지하며 그리스도인들이 살아가고 있을까? 비록 어렵고 힘들지만 거짓을 말하지 않고 사람의 눈속임을 하지 않으며 있는 그대로 자신을 드러내고 거짓과 불의에 항거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거짓말이 통하는 사회가 되었다면 그 사회 속에 존재하는 교회의 역할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서 거짓말이 통하는 세상을 보면 교회 공동체와 그리스도인들이 거짓을 말하는 사회와 그 속에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에게 아무런 영향력을 주지 못했다는 결론이다.

 

며칠 전에 이명박 정부 인사의 도덕성과 업무 수행 능력을 검증하기 위한 인사청문회가 국회에서 끝났다.

 

이번 청문회에서도 예전과 다르지 않게 업무 수행 능력 보다는 도덕성을 검증하는 도덕성 검증 청문회가 되고 말았다. 청문회에서 드러난 후보자들의 불법, 탈법, 위장전입, 투기적인 만행들은 일반 시민이라면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인 것을 보면서 역시 우리 사회는 아직도 힘 있는 자들만의 세상이란 생각이 저절로 든다.

 

청와대는 고위 공직의 후보자로 지명할 때 도덕적으로 흠결이 없는 사람을 우선적으로 선택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도 모두 도덕적으로 문제투성이의 사람들을 후보자로 내세웠다. 후보자에 대한 최종 지명권자의 도덕적 수준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더욱이 이미 밝혀진 후보자들의 도덕적인 문제를 인지하고도 고위 공직자 후보로 지명을 하였다면 최종 인사 지명권자의 도덕성은 후보자와 동일하거나 오히려 더 낮은 도덕적 수준과 기준을 갖고 있음이 분명하다.

 

청문회 후에 결국 총리 후보자와 두 사람의 장관 후보자가 스스로 퇴진하는 결과를 낳았다. 가장 문제가 되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총리 후보자의 거짓 증언이었다. 그나마 본인이 스스로 후보 자리를 사퇴하였기에 불행 중 다행이었다.

 

최근 국새(國璽) 제작과 관련하여 불거진 민홍규씨의 전통 기술 보유 여부가 논란에 휩싸였다. 국새란 나라를 대표하는 도장을 뜻하는데, 역사적으로는 국권의 상징으로 국가적인 문서에 사용하던 임금의 도장을 뜻한다. 왕정시대가 끝난 현재 국새는 국가 문서의 중심에 낙관을 찍어 나라가 공증한다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제4대 국새를 제작한 민씨는 의혹이 제기되자 자신이 국새를 제작하는 전통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고 힘주어 항변했다. 하지만 며칠 못가서 모든 것이 거짓이라고 밝혀졌다. 모든 것이 거짓으로 판명되기 전까지 거짓을 진실로 포장하여 거짓이 통하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결국 시간이 문제이지 모든 거짓은 분명히 밝혀진다. 아직도 논란 중에 있는 오은선씨의 히말라야의 카첸중가 등정 문제가 거짓으로 드러나지 않기를 기대한다.

 

이런 사회 속에서 오늘날 한국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얼마나 깨끗한 것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한 사회가 거짓말로 병들어 가고 있는데, 그 병든 사회 속에 존재하는 교회 공동체가 건강하게 살아남아 있다는 것은 어쩌면 기적에 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속이 썩어가고 있다면 이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교회 문제가 작은 거짓말에서 출발한 것을 보면 거짓을 말하고, 거짓으로 행동하는 것이 결국 작은 불씨 같아서 결국 전체 교회 공동체를 큰 불로 삼켜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거짓말에 대한 성서의 교훈은 너무도 분명하다. 시편 기자는 “생명을 사모하고 연수를 사랑하여 복 받기를 원하는 사람이 누구뇨 네 혀를 악에서 금하며 네 입술을 거짓말에서 금할지어다”(시 34:12-13)라고 교훈한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조차 때때로 거짓을 입에 달고 사는 경우를 본다. 그 사람이 평범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를 대표하거나 인도하는 지도자라면 문제는 더욱 커진다.

 

거짓말이 통하는 사회 속에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거짓을 말하지 않고 거짓된 행동을 진실이라는 포장지로 포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순수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결코 쉽지 않은 문제이다. 이상(理想)은 좋지만 때때로 좋은 거짓말(white lie)도 필요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는 신념 때문에 다른 사람이 상처를 입고, 피해를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나에게 불이익이 있어도 거짓을 말하면 안 된다는 굳은 신념이 없으면 누구든지 쉽게 거짓말에 농락당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사소한 한 가지의 거짓말은 그것을 포장하기 위한 또 다른 거짓말이 필요하고 이런 상황은 끊임없이 계속되어 나중에는 결국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시간이 지나면 만천하에 들어나게 될 일을 잠시 덮어 두려는 어리석음을 보게 된다. 시편 기자가 하나님께서 “거짓말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시리이다”(시 5:6)라고 말한 것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